버밍엄에서 출발한 열차는 밤이 되어 옥스퍼드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봤던 대학가 근처 역은 학생들로 시끌벅적했었는데, 옥스퍼드 역 앞의 대로는 문을 연 상점도 없었고 주택가처럼 조용했다. 늦은 밤 집으로 귀가하는 학생들과 함께 호스트의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중세시대부터 존재했던 대학도시다웠다. 이따금 보이는 음식점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전체적으로 거리는 조용했다. 호스트와 약속한 체크인 시간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잃어버린 시간을 보충하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걷다 보니 호스트와 약속한 시간을 한참 넘겨 밤 10 시를 훨씬 넘어서야 호스트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밤중에 숙소 안내를 하게 된 호스트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 퉁명스러운 말투 속에서 굉장히 화가 나고 불쾌한 상태라는 걸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원래 오후에 오기로 했던 것을 저녁에 갈 거 같다고 양해를 구한 것인데, 그마저도 어기고 한밤중에 들어온 것이니 화가 나는 게 당연했다. 잠자코 호스트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숙소 가이드는 금방 끝났다. 호스트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방에 짐을 내려놓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캠퍼스에서 지는 해를 감상하지 못했으니 한밤중 옥스퍼드의 모습이라도 봐야 했다. 거리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 가는 대로 걸었다. 그러다 대학 건물을 지나게 되면 담장의 쇠창살에 달라붙어 안에 있는 뭐라도 볼 수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렸지만, 늦은 밤이라 건물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고즈넉한 조명이 비추고 있는 마당만 바라보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곤 했는데 마침내 불이 켜져 있는 건물을 발견했다. 도서관인 것 같았다. 중세시대 건물이 아닌 깔끔한 현대식 건물이었는데, 11 시가 훨씬 넘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는 열람실에 몇몇 학생들이 앉아 공부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것이 바로 옥스퍼드 대학의 심장이자 영혼, 가장 내밀한 모습이었다. 길 건너편에 서서 열람실의 모습을 바라보며, 형광등의 열기와 사람들이 내쉬는 숨으로 탁해진 열람실에서 건조한 조명 아래 책장을 넘기던 나의 대학 시절이 느껴졌다. 불이 켜져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그 일원이 될 수는 없었다. 밖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있다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