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여행, 대륙 횡단
이른 아침 옥스퍼드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고요한 아침 햇살을 머금고 하루의 시작을 기다리는 캠퍼스를 보고 싶어 일찍 일어나 제대로 씻지도 않고 숙소를 나왔다. 차가 다니는 대로를 따라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이긴 했지만, 칼리지 건물 주변은 예상했던 대로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조용했다. 이른 아침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왔는데 아무도 없는 느낌이었다. 약간 서늘한 공기를 쐬며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앞 넓은 잔디밭이 햇빛으로 빛나는 모습을 바라보다 옆에 있는 다른 칼리지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일찍 학교에 도착한 진짜 옥스퍼드 대학생과 마주쳤는데, 스쳐가는데도 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몇몇 칼리지 건물들을 지나 구시가지 중심의 원형 도서관이 있는 곳에 이르자 이른 아침 조깅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나타났다. 나도 아침 조깅을 하는 기분으로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옥스퍼드 탐방은 숙소에서 호스트가 준비해 주는 아침을 먹고 나와서 시작할 계획이었다. 숙소까지 가면서 간밤에 봤던 칼리지 건물들도 지나갔는데 이른 아침의 선명한 색과 함께 보는 모습은 어두컴컴한 밤에 보던 것과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에 내려가는데, 어떻게 호스트와 화해를 할지 고민이 됐다. 나는 서먹한 분위기를 풀고 싶었지만 호스트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하룻밤만 자고 가는 이 매너 없는 사람과 굳이 화해할 필요는 없다고 결정했을 수도 있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기로 했다. 식당에는 다른 외국인 부부가 먼저 도착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탁이 하나다 보니 그분들과 같이 먹어야 했다. 자리에 앉자 아주머니가 식사를 차려주기 위해 다가왔는데 "I apologize for..."라며 지난밤의 일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하려고 말을 꺼내는 순간, "It's OK"라며 아주머니가 얘기를 끊어버리셨다.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 개운하지는 않았지만 "OK"라고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존심이 센 분 같아 보였는데 그분도 나름대로 좋게 마무리하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았다.
같이 식사하게 된 외국인 부부는 캐나다에서 온 분들로 기억한다. 아주머니와 나의 짧은 대화가 끝나는 것을 지켜본 부부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 물어보시고, 여행 중이라고 말씀드리자 그동안의 여정에 대해 물어보셔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온 과정과 앞으로 남은 여행지들에 대해 간략히 말씀드렸다. 좋은 분들이었다. 내 영어 실력이 상당히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두 원어민 부부는 내 얘기에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들어주셨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를 나왔다. 이제 사람들로 붐비는 시끌벅적한 캠퍼스를 즐기러 갈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