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앞에서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 누군지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대학 때 알고 지내던 후배가 다른 한국인과 얘기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이름을 부르니 그 후배도 깜짝 놀라서 돌아봤다. 외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파리에 있을 줄은 몰랐다. 미리 연락하지 않고 파리에 여행을 왔는데 우연히 에펠탑 앞에서 지인을 마주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문을 열지 못해서 갇혀 있던 시간이 십몇초라도 짧거나 길었더라면, 오르세 미술관에서 봤던 그림들 중 하나를 그냥 지나치거나 대충 보고 지나친 그림들 중 하나를 좀 더 들여다봤더라면, 에펠탑 계단을 걸을 때의 속도가 아주 조금이라도 느리거나 빨랐다면 이렇게 마주치지 못했을 것이다.
후배와 서로 신기해하며 같이 사진을 찍고 즉석에서 며칠 후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만나기로 한 날 저녁에 후배에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오래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후배가 한식 도시락을 파는 가게에 데려다줘서 오랜만에 든든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대학생 시절을 생각해 보면 주변에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이 완벽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 그래도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내 옆에 있던 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선배들에게는 반발심 가득한 무례한 후배였고, 동기들에게는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운 괴팍한 존재였다. 후배들에게는 착한 건 알겠는데 저 사람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때 그 사람들, 그렇게 부족한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이해하려고 했던 그 사람들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