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성당 근처의 거리 벤치에 앉아 햄버거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 뮤지엄 패스를 사기 위해 한 번 방문했었지만 그때는 입구의 티켓 박스에서 패스만 사고 안에 들어가진 않았었다. 조금이라도 먼저 맛을 보면 안 될 것 같아 아껴두고 있던 것을 마침내 포장을 뜯고 한입 베어 물게 된 것이다. 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인류가 긴 시간을 들여 쌓아 온 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말로만 듣고, 방송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것들을 실제로 보니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내 초점은 오직 하나,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에 맞춰져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 오기로 결정한 날부터 난 모나리자의 앞에 서서 그 오묘한 미소와 마주하는 것만을 상상하고 있었다.
수많은 명화와 조각들을 감상하며 그녀를 찾아 걷고 있었는데, 한 계단에서 승리의 여신과 마주치자 다리가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비록 머리가 없었지만 위엄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펴고 뱃머리에 내려앉아 늠름하게 선 채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냐며 묻는 그녀 앞에서, 나는 곧 벌어질 전투를 앞두고 겁에 질려 떨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여신을 멍하니 올려다보는 병사들 중의 하나가 되어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옷 밑으로 살짝 보이는 여인의 아름다운 실루엣을 보며 나는 수천 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따뜻한 태양이 빛나는 에게해의 한 섬에 도착했다. 누군가 돌을 다듬는 것을 마치고 혼을 불어넣자 수천 년이 지나도 죽지 않고 존재할 백옥의 피부를 가진 생명체가 눈을 뜨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어서 나는 이 날 후로 몇 번이나 오직 승리의 여신을 만나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을 찾아, 그녀가 서있는 대리석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숙소로 돌아오곤 했다.
승리의 여신 앞에서 물러나 다시 모나리자가 있는 방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모나리자는 큰 방의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사람들을 헤치고 모나리자의 앞에 가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는데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처럼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가웠다. 이 미소를 마주하기 위해 꽤 먼 거리를 와야 했다. 여태껏 살면서 직접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실제 보니 이렇게 와서 만나는 것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니었다. 모나리자를 바라보며 그녀의 뒤편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풍경도 살펴봤다. 그 속에 뭔가 신비한 사건이 감춰져 있지는 않은지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특별한 뭔가가 보이진 않았다. 그저 그림 안으로 들어가 모나리자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른한 늦은 오후의 중세 시대를 걸어보고 싶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