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문에서 내려와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루브르 박물관으로 걸어갔다. 오늘 더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자 멀리 대리석 계단 위에 늠름하게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날개를 펴고 내려앉은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잠시 같이 시간을 보낸 후에 박물관의 다른 작품들을 구경하다 저녁 무렵이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내 방에서 쉬고 있는데, 누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숙소에 갇혀 있던 나를 구해준 금발의 남자가 다시 들어오는 건가 싶어 나가 보니, 호스트 여주인이 들어오고 있었다. 바로 뒤를 그녀의 남편이 캐리어 가방을 들고 들어왔는데, 내가 인사를 하자 여주인만 건성으로 받아주고 남자는 아무 대꾸도 없이 거실 소파에 앉아 버렸다. 캐리어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올라오는 게 힘들었던지 남자는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우리가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호스트 부부가 들어온 후부터 집안에 흐르는 냉기는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자기들도 휴가를 간다고 했었는데, 이상한 사람이 게스트로 와 있다고 집이 걱정돼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휴가지에서 원래 계획했던 일정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중간에 짐을 챙겨서 왔으니 화가 나는 게 당연했다. 다만 집의 문을 여는 방법이 독특하니 문을 여는 방법을 미리 공유해 줬다면 서로 편했을 것이다. 나도 할 말이 많았지만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아 다시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 덕분에 조명을 받아 빛나는 센 강을 감상하며 천천히 저녁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방에서 외출 준비를 하는데 고양이가, 내 방 침대밑을 화장실로 사용하는 그 귀여운 고양이가 방문을 밀며 들어왔다. 전날만 해도 어림없는 일이었다. 내 방으로 들어오려는 낌새만 보여도 바로 못 들어오게 막아섰지만 오늘은 얘기가 달랐다. 내 방 맞은편 부엌에서 호스트 아주머니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실에서는 무섭게 생긴 남편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발로 고양이를 쓱 밀어내는 모습을 들키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녀석이 방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내 방으로 들어온 고양이가 바로 보란 듯이 시원하게 볼일을 볼 줄 알았는데, 다행히 고양이는 볼일을 보지 않고 내 방에 있는 작은 탁자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외출 준비하는 모습을 구경하듯 올려다봤는데 눈빛이 상당히 도전적이었다. 그 모습마저 귀여워서 쓰다듬어 주려고 다가가는 순간 고양이는 너와는 볼 일이 없다고 얘기하듯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버렸다. 그래, 너희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