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크루아상

by 히다이드

파리를 떠나는 날 아침, 마지막으로 할 일이 하나 있었다. 거리의 테이블에 앉아 커피와 크루아상으로 하루를 열어보겠다고 첫날부터 다짐하고 있었는데, 도착하고 맞이했던 첫 아침에 숙소에 갇혀 오전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바람에 기회를 놓친 후로 아침을 커피와 크루아상으로 열 일이 없었다. 크루아상 말고도 빵집에서 파는 빵과 샌드위치들이 너무 맛있어서 일주일간 있었음에도 다 못 먹어봤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이 아침이 아니면 파리의 거리에 앉아 커피와 크루아상으로 하루를 여는 일은 죽을 때까지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생 말로’로 가는 기차가 점심 무렵에 출발해서 시간 여유가 있었다.


숙소 근처 카페를 찾아가 커피 한잔과 크루아상, 그리고 오렌지 주스와 바게트처럼 보이는 빵 하나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출근하는 시간대를 살짝 비켜난 한산한 거리에서 센강을 바라보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크루아상을 베어무는 순간, “다 이루었다”는 울림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게 느껴졌다. 같이 주문했던 속에 아무것도 안 들어있는 바게트와 비슷한 빵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파리에 와서 이런 심심해 보이는 빵들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처음 경험했던 것 같다. 천천히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체크아웃을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집주인 부부는 개인 사업을 하는지 출근하지 않고 집에 남아있었다. 며칠 동안 서먹하게 지내야 했지만 그래도 떠나는 날인데 화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에서 짐을 챙겨 나오며 인사를 건넸는데 두 사람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서로 작별 인사를 건네며 남자의 표정을 봤는데, 남자의 얼굴이 많이 풀어진 걸 보니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생 말로 행 기차를 타려면 몽파르나스 타워에 있는 역까지 가야 했다. 숙소를 나와 몽파르나스 타워까지 캐리어가방을 밀며 걸었는데, 이날은 처음 파리에 도착했던 날처럼 겁이 나지는 않았다. 내게 익숙한 고향 동네를 떠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리의 모습을 천천히 음미하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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