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스키 극장의 매점

by 히다이드

마린스키 극장에서 본 공연은 환상적이었지만 극장 매점에서 겪은 불쾌한 경험은 잊을 수 없다. 공연 중에 쉬는 시간이 있었다. 물을 사려고 매점에 갔는데 여직원에게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물 한 병”이라고 말하자 직원의 얼굴이 벌게지더니 자기들 말로 뭐라고 하면서 물을 계산대 위에 쾅 내려놓는 것이다.


나는 내심 자기들 말까지 공부해 온 동양인 여행자에게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물을 건네주는 걸 기대했었는데 황당하기도 하고 왜 화를 내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이러는 거냐는 표정으로 옆에 있던 남자 직원을 쳐다봤는데 그 사람 역시 바닥을 내려다보며 내 시선을 외면해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 어떤 행동이 이 사람들을 화나게 한 거 같은데 그걸 러시아어로 물어볼 실력은 안 되고 그저 잠시 미안한 표정으로 서 있다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공연을 마치고 극장을 나설 때까지도 여직원이 화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뒤로 여행하는 동안 가끔 그때 일을 떠올리며 여직원이 왜 화를 냈던 건지를 따져보곤 했는데, 여행의 중반을 훨씬 지나고 유럽 사람들의 문화에 점점 익숙해지던 어느 날 여직원이 왜 화를 냈고 뭐가 불쾌했던 건지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됐다. “물 한 병”이라고 얘기할 때 러시아어로 ‘제발’을 의미하는 ‘빠좔루스따’라는 단어를 안 붙인 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유럽에서 사람들이 예의를 갖춰 말할 때 ‘제발’에 해당하는 ‘please’와 같은 단어를 꼭 붙이고 단어 선택도 격식을 갖춘 단어들을 사용하는데 나는 그 여직원에게 반말로 “물 한 병”이라고 얘기한 것이다. 정중하게 물 한 병을 달라고 얘기해줄 것을 기대했던 여직원은 한 동양인이 던진 반말에 불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20210913_마린스키극장의_매점에서.JPG


이전 05화백조의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