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나고 사람들 속에 섞여 극장 밖으로 나왔다. 마린스키 극장 앞의 도로는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다들 일행과 함께 어딘가로 바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극장에 오면서 미리 봐 뒀던 골목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낮에 한적하고 안전해 보여서 골랐던 골목이 밤에 보니까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고 조명도 어두워서 으쓱한 뒷골목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또각대는 소리가 골목 전체에 울려 퍼졌는데 가슴이 두근거려서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차들이 다니는 큰 도로에 이르러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멀리 다리가 보였다.
다리 위에서 본 운하의 모습이 기억난다. 밤늦은 시간이어서 운행하는 배도 없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은은한 빛이 수로를 비추고 있었는데 검은빛의 강물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니까 쿵쾅대던 마음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수로 위로 부는 바람은 굉장히 차가웠다. 와이셔츠 위에 정장 재킷만 걸치고 덜덜 떨면서도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다리 위에 서서 찬찬히 주변을 돌아보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는 성 이삭 성당이 보였다. 낮에 마린스키 극장으로 오면서 봤을 때도 황금색 돔 때문에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밤에 조명을 받아 빛나는 성당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한참 동안 다리 위에 머물며 주변을 둘러보다 옆에서 혼자 사진을 찍고 있던 사람에게 부탁해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