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경을 넘다

by 히다이드

‘럭스 익스프레스’ 사의 버스가 ‘에코라인’ 사의 버스보다 더 비쌌는데 확실히 훨씬 고급스러웠다. 버스에 올라타자 목 받침대 뒤에 있는 터치스크린부터 눈에 들어왔다. 화면에 있는 아이콘들을 눌러봤는데 돈을 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영화도 볼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었는데,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무료로 원두커피를 내려마실 수 있는 커피 머신도 있었는데 나중에 마셔보니 커피 맛도 좋았다.


오보드니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를 지나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모습만 보고 있었다. 따뜻한 햇볕이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3일 동안 있으면서 미처 와보지 못했던 곳들이 스쳐 지나가는데 고향을 떠나는 느낌이 들었다. 첫 여행지였고 여행 전에 제일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준비했던 도시였다. 돌아오는 길에 꼭 다시 들르고 싶었다.


도시 외곽을 벗어나자 광활한 들판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보는 끝없이 펼쳐진 숲과 들판이었다. 멀리서 비구름이 비를 뿌리는 게 보였는데 어느 순간 내가 탄 버스에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두둑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포장이 안 된 도로를 달렸는데, 덜덜덜 요란하게 엉덩이를 들썩이는 내 모습이 왜 그렇게 웃겼는지 모르겠다.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러시아를 벗어나면 마주하게 될 여정이 기대도 되고 약간 흥분도 됐다.


한참 동안 빗길을 달려서 러시아 국경 검문소에 도착했다. 버스가 멈추더니 기사님이 마이크로 안내 방송을 했고 그러자 승객들이 전부 일어나서 내리기 시작했다.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검문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위압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다. 무서워 보이는 여자분이 한 명씩 심사를 하고 여권에 도장을 찍어줬는데 나한테는 여행 목적만 물어보고 도장을 찍어줬다. 자동차가 그려져 있고 가운데 ‘2704179’, 아랫줄에 ‘이반고라드’라고 적혀있었다. 사실 별 게 아닌데 참 힘들게 그 도장을 받았다.


러시아 검문소에서 모든 사람들의 검문이 끝나자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를 타고 조금 더 가다 이번엔 에스토니아 검문소에서 내렸다. 제복을 입은 날카로운 이미지의 여자가 여행 목적을 물어보더니 도장을 찍어줬다. 이제 에스토니아의 나르바였다. 검문을 마치고 버스가 나르바 시내로 들어섰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한적해 보였다. 간간히 아파트 같은 건물들이 보였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고 음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도시 외곽 지역을 지나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도시를 빠져나갈 때까지 계속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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