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전에 한통 담가 놓으려고 벼르다가 이제야 마음이 바빠져 아침부터 배추를 절였습니다. 마침 대형 마트여서인지 배추값도 무값도 저렴하네요. 요즘 양념이래야 갓도 없으니 미나리와 쪽파, 양파, 마늘, 새우젓 등을 넣고 버무려 놓으니 새빨가니 먹음직스럽네요.
6, 7월 장마가 가고 나면 찌는 더위에 배추는 거뭇거뭇 점박이가 생기고, 이파리는 녹아서 맛도 덜해지는데 가격은 또 확 오릅니다. 무도 싱이 생겨서 질겨지고, 단맛도 부족한 데다 작고 못생겨지더라고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장마 전에 김치를 담가둡니다.
사람에 입맛이란 간사하기 이를 데 없어요. 지난겨울 김장 담글 때는 김치 맛있다고 요란 떨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는 역시 새로 담근 김치가 맛있다고, 시간만 되면 담가대는 통에 아이들의 눈총을 받습니다. 그래봐야 지네들도 맛있다고 잘도 가져다 먹을 거면서 말입니다....ㅎ 다 알지요. 행여 힘들게 담그다가 엄마가 병이라도 날까 염려되어 그런다는 걸요.
그래도 여전히 손을 놓지 못합니다. 더 늦기 전에 오이지를 담갔지요. 오이 중간크기 50개, 국그릇 대접으로 소금 1, 설탕 1. 식초 1, 소주 1, 물 1 녹여서 그냥 부으면 되니 어렵지 않아요. 오래 두고 드실 거면 일주일쯤 후에 오이가 노릇노릇 해지면, 국물만 따라서 팔팔 끓여 식혀서 부어 냉장고에 보관하시면 1년은 거뜬합니다.
오이소박이도 담가서 먹고, 요즘 무가 가을무처럼 달지는 않아도 아삭하니 먹을만해요. 소금과 설탕으로 절였다가 깍두기를 담그니 맛있다네요. 너는 매워서 먹지도 못하는 김치를 허구한 날 해대느냐고 언니는 난리입니다. 몸도 성치 않으면서 도대체가 손발을 그냥 두지 않는다고 성화이고요. 빌빌거리는 여동생 걱정하는 마음 모를 리가 있나요. 그래도 시집와서 주부로서 배운 게 이것이다 보니, 야채만 보면 잘 먹어줄 식구들을 생각하면 담그고 싶어 지니 어쩐대요
이른 봄부터 담가 먹던 열무가 야들야들하니 먹음직스럽다더라고요. 그냥 지나칠 수가 있나요. 얼갈이배추까지 1단 사서 맛있게 담갔지요. 삼삼하니 맛있게 잘 익었네요. 내편도 맛있다며 국물까지 들이켭니다. 열무국수말이를 해줬더니 후루룩 후루룩 숨도 안 쉬고 맛있게도 먹어줍니다. 이러는데 어떻게 안 담글 수가 있나요.
배추도 오이도, 깍두기도, 열무김치 등도 우리 집은 모두 내손이 가야 담글 수 있습니다. 그냥 생각 없이 아무거나 넣는다고 맛이 있을리가요. 정성 들여 다듬고 절이고 씻어서 각종 양념에 사랑(♡)이라는 제 마음까지 듬뿍 넣어 버무려야 제맛이 나겠지요...ㅎ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담그자니 벌써 흐뭇함에 입가에 미소까지 번집니다. 알맞게 익은 김치를 맛있게 먹어줄 식구들을 생각하면 벌써 신이 나기 때문이지요.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이 김치를 먹으며, 우리 가족들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층 더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사랑을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