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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10. 2024

시어머니께서 요양병원에 입원하시던 날

어디 가니?(24.6.26)

매일매일 시시각각 조여드는 어둠의 그림자. 그렇게 새하얗새벽을 달리다 고개 들어 먼 하늘을 본다. 시어머니와 내가 가깝지도 지도 않은 언제나 똑같은 그 자리에서 서로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다.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아니 태곳적부터였던 것처럼.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날들 속에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날이 갈수록 야위어지시고 식사를 거부하시는 날들이 늘어만 다. 전화기 넘어 간호팀장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또 내 가슴을 철렁 이게 한다. 언젠가는 그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시때때로 밀려드 불안감. 이번에는 눈다래끼가 났는데 진료가 필요한 것 같다며 안과에 다녀왔으면 는 전화다.


이런 일들은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언제나 부르면 바로 달려가야 한다. 왜 왔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반가워 손을 흔드시며 좋아라 하시는 어머니. 휠체어를 트렁크에 싣고, 차에 올라타니 "어디 가니?" 실낱같은 희망을 얹은 그 물음에 순간 멈칫해진다. 헐떡이며 달려왔지만 무슨 대답을 하리오. 술렁이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태연한 척 안과에 간다고 잘 듣지도 못하시는 어머니 귓가에 큰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역시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여기가 가렵다며 눈가를 또 만지신다.


어머니도 나도 안다. 그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만 금기어처럼 서로 말하지 않을 뿐이다. 6년째 주인 없는 그 방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청결하지 못한 손으로 만지면 안 된다고 아무리 일러도, 단 몇 초도 안되어 다시 비벼대니 시뻘겋게 부어오른 눈꺼풀. 터트려 염증을 치료해야 하지만 가만히 계실리 없다며 일단 약과 연고만 처방해 주었다.


급히 가느라 요구르트 한병도 준비하지 못했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여드리며 다음 주 월요일에 또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바쁜데 뭐 하러 또 오냐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시는 어머니.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신다. 병원에 가기 위해서였지만 잠시라도 보여준 자식얼굴에 저리도 좋으실까. 애잔함에 가슴이 미어진다. 




월요일 또다시 안과에 모시고 다녀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말 한마디 없으시고 손을 덜덜 떠시며 기운이 없으시다. 가녀린 손을 잡아본다. 뼈만 남은 앙상함만이 내 손안에 들어온다. 요구르트와 호두과자를 드렸더니 단숨에 다 드셔 버렸다. 식혜도 한잔 드시더니 더 이상은 안 드시겠단다. 왜 기운이 없으시냐 했더니 졸리시단다.


이미 90이 넘으시면서 아기처럼 부쩍 잠이 많아지신 어머니셨다. 아침식사 후에도 한잠 주무시고, 점심식사 후에도 또 주무셨다. 초저녁부터 또 주무시고는 새벽에 깨셔서 거실에 나와 딱! 딱! 딱! 아일랜드식탁을 쳐대시는 통에 소리에 예민한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후부터 날이 갈수록 수면시간이 늘어갔을 것이니 6년이 지나 97세가 되신 지금은 아마도 더 주무시는 시간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그럴진대 아침 10시부터 와서는 오전잠을 방해했으니 안 졸리실 수가 있겠나. 더구나 관절염약에 고혈압약, 치매약에 안과 항생제까지 드시니 더 힘드신 것 같다. 오늘도 기는 좀 내렸지만 염증부위가 좀 더 작아져야 한다며 약만 처방해 주시고 다음 주에 또 오란다. 다시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 우리 부부는 늘 말이 없다. 또 여기에 다시 모셔다 드리고 손을 흔드는 어머니를 남겨두고 떠나야 함에.  6년이나 겪으면서도 여전히 미안함에 마음이 더 무거워지곤 한다.




한주가 지나고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를 했다. 오늘은 안과에서 염증덩어리를 완전히 제거해 주시려나 기대하며 요양원 간호팀장님께 문자를 했다. 어머니께서 바로 병원에 가실 수 있도록 준비를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남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안과가 문제가 아니라 주말 동안 식욕촉진제를 드셨음에도 식사를 안 하시고, 혈압도 높아지고, 떨림도 심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려했던 일이 너무 빨리 다가왔


결국 서둘러 요양원으로 달려가 어머니 상황을 확인하고 결정을 해야 했다. 의논 끝에 일단 2년 전에도 갑작스레 저혈압으로 입원하여 수혈을 받았던 요양원 연계병원인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래야 어느 정도 회복되시면 바로 요양원으로 다시 돌아오실 수 있기에 집에서 좀 거리가 있어도 그렇게 결정했다.


지난주보다도 부쩍 야위어지신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또 복잡한 절차에 사인을 하고는 필요한 물품들을 사다 드리고 돌아왔다. 그러지 않아도 심난한데 어머니일까지 겹쳐지고 말았다. 바로 내일이 대학병원에서 암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안고 위내시경 시술을 받는 날이다. 겉으로는 별거 아닐 거야 괜찮을 거야 하면서도  불안감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별일 없을 거라고, 아무리 잘 될 거라고 이 정도면 멋지게 살아왔잖아 애써 토닥여봐도 인생이 참 버겁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202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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