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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05. 2024

식사를 거부하시는 시어머니

문상을 다녀온 후 드는 생각(23.6.1)

유월의 첫날이다. 아직도 장미는 오월에 이어 유월의 터널을 지키고 있다. 나 역시 며칠 전의 일로 오늘도 아니 몇 날 며칠을 무거운 마음을 떨쳐내지 못한 채, 저 장미송이처럼 매달려 있는 것만 같다. 떠나야 할 때 떠나고, 시간이 흐르면 잊혀져야 하는데, 나의 끝나지 않는 죄스러움은 지난밤을 불면의 시간들로 채웠다.


며칠 전부터 어머니 면회일정으로 둘째 시누이와 통화를 했다. 본인들이 알아서 해도 되련만 왜? 꼭! 모든 일들을 내게 전가하려는 걸까.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면 서로 마음 상할 것이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었다 해도 손위 시누이그런 일로 투정 부리고 싶지 않다. 아니 더 이상 내가 살아온 세월에 비수를 꽂으며, 내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큰 시누이 일만으로도 충분하다. 잘 해내고 있다가도 가끔 이렇게 유난히 마음이 뾰족해지는 날이 있다.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형제들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었다. 주보호자로서 지켜야 할 사항들만 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었다. 일부지만 그간의 일들을 나열하며 그렇게 참고 닫아두었던 판도라상자를 열고 말았다. 그것이 큰 파장을 일으키며 천하에 없는 죽일*이 되었다. 며느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는데 생색 아닌 생색이 되어 나를 외롭게 했다. 그 일로 불같은 성정의 큰 시누이는 인연을 끊었다. 지나고 보니 어차피 참아온 세월 조금만 더 참으면 될 일이거늘 그러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로 남았다.


가끔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로 요양원에 계신 어머님의 안부를 묻곤 한다, 귀가 어두워 잘 듣지는 못하셔도 내 목소리라도 들려드리며, 당신을 기억하고 있음을 알려드린다. 이러한 일들이 어머니께 얼마큼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함께 살아온 세월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한다. 당신을 그곳에 둔 나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이기적인 행위할지라해명할 길은 없다.




5월 초 면회에서 식사를 못하신다 하셔서 걱정을 한가득 안고 돌아왔었다. 몇 번의 통화로 다행히 식욕촉진제를 드시고 나아지셨다고 했었다. 하지만 또 어제부터 식사를 거부하신다 하니 속 타는 며느리의 심정을 어머니는 아시려나. 그러지 않아도 소식을 하시는 편이라 조금이라도 안 드시면 금세 몸이 축나신다. 또 식욕촉진제를 드리는 길밖에는 없어 애가 탈뿐이다. 


오전에 요양원 면회예약을 하고 난 후, 함께 상담봉사활동을 했던 선생님 시모께서 돌아가셨다는 문자가 왔다. 요즘 계속 문상 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어둠의 그림자가 점점 가까이 조여져 오는 느낌이다. 언젠가는 겪어야 될 일이지만 친정엄마가 가신지 몇 달도 되지 않았는데, 연속되는 그런 자리가 편치만은 않다.


어제도 선생님잠시 요양원에 계시던 93세이신 시모님을 보내드리며, 막내며느리임에도 못내 죄송한 마음이 든다며 눈가를 적셨다. 그럼 나는 어쩌란 말인가. 30여 년이 넘는 시간들을 한집에서 부대끼며 살다 이제 97세가 되신 시어머니를 6년이나 요양원에 모신  맏며느리는 어떤 마음이 들어야 할까. 편치 못한 마음에 혼자만의 괜한 트집으로 자신 헤집고 다.




어머님의 물건들이 남아있는 주인 없는 빈방을 걸레질하며 이제 저 물건들을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생각은 하면서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불편한 다리를 의지하며 노인정 가실 때마다 밀고 다니셨던 어르신 유모차. 요양원에 보내고도 옷장에 걸려있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알록달록한 옷들. 철철이 입으실 옷들을 가져다 드리며, 지난 계절의 옷들은 집으로 가져와 몽땅 다시 세탁해서 가져다 드리곤 했었다.


오래 계시다 보니 이제 그런 일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계절옷 모두 요양원에서 관리하다 보니 번거로움이라 할 수도 있는 일마저도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부디 기도해 본다!

이번달 면회에서도 활짝 웃으시는 모습으로 찍은 사진들이 톡방으로 올라오기를. 사람이 오고 가는 것에는 순서가 없고 그 누구도 가는 때를 모른다 하여도, 비록 내 집이 아닌 다른 곳에 계셔도, 오늘만큼은 식사 잘하시고 다음 달 면회에서는 어머니의 환한 웃음과 마주할 수 있기를.


2023.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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