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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Jul 02. 2023

가장 호사스러운 날

발젤을 하던 날

본격적인 장마인 걸까. 아침부터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작정하고 후두두둑 푸르른 이파리들을 사정없이 두드려댄다. 며칠을 올 듯 말 듯 더위만 흩뿌려대며 찐득함으로 온몸을 휘감더니 이제야 제대로 살풀이라도 하듯 부산스럽게 내린다.


그렇게 내리던 비도 꺼끔해지고 꽃무늬우산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샌들사이로 밀려드는 빗물이 질척거려 대도 아랑곳없이 네일숍을 향해 걸어갔다. 빗물보다는 발젤을 한다는 설렘이 더 컸나 보다. 예전에는 특별한 사람들만의 사치인 줄 알았는데, 요즘은 너나없이 화려함은 더해져만 간다. 칠하는 것도 모자라 길게 붙이고 올려서 붙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끝없이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일 년 중에 딱 한번 내 발톱이 호사를 누리는 날이다. 코로나 후에는 여름즈음이면 한 번가는 불량손님인지라 미안함에 빵 몇 봉지를 사들고 갔다. 친구딸이 운영하는 이기에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처자들이다. 작년에는 파란색으로 했으니 올해는 쨍! 한 초록색으로 골랐다. 샌들사이로 초록빛에 가지런한 발톱들이 싱그러움을 안겨준다. 올여름도 초록둥이들에 반짝이는 활약을 기대해 본다.


코로나 전에는 매년 해외여행을 다녔었다. 그때마다 해외여행준비 중에 꼭 포함되는 것이 손톱발톱이다. 멀리 가면 10여 일도 넘는 기간 밥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여행보다도 더 신나는 일이다. 그 기간 동안 남이 해주는 밥을 먹으며 귀한 손님이 되는 손톱에게 마음껏 화려한 옷을 입혀주었다. 낯선 거리를 누비고 다닐 귀한 발톱에게도 빠짐없이 고운 색을 선물했었다. 내 기준으로는 큰맘 먹고 하는 사치였다.


하지만 요즘 티브이 속에 나오는 연예인들에 손톱, 발톱은 화려함에 극치를 넘어 작품으로 태어나며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색을 칠하는 것은 기본이요. 그 작은 공간은 창작에 캔버스가 되기도 한다. 그뿐이랴 짧은 손톱은 길게 덧붙이고. 온갖 장식들로 쌓아 올리며, 어느새 네일숍은 남성들마저도 찾는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아파트 주변에도 우후죽순 네일숍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물론 아름다움에는 그에 못지않은 부작용이 있기도 다. 딸의 경우 발젤을 제거하면 발톱위부분이 하얗게 들뜨며 떨어져 나가는 조갑박리증으로 인해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 심한 편은 아니지만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리므로 아쉽지만 나 혼자만의 호사가 되었다.


손톱은 매일같이 음식을 해야 하므로 당연히 못하지만, 다행히 발톱은 건강하여 매년 여름의 이 사치는, 자신에게 소중한 선물이 되는 시간이다. 여러 가지로 마음이 편치 않은 요즈음 무엇을 해서라도 나에 텐션을 유지해야 한다. 세상살이가 갈수록 버거워진다면 어느 것이든 한 번쯤은 나 자신에게 기꺼이 선물을 내어주고 토닥이며, 무더위가 찾아오는 이 여름 모두가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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