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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Apr 27. 2023

가장 천진했던 그 시절

언니의 눈물로 간 중학교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학생들로 가득 찬 버스는 더 이상 태울 자리가 없기에 그냥 지나쳐 버렸다. 아~ 이제 지각을 면하려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한꺼번에 몰려드는 학생들로 언제나 만원인 한대뿐인 시골버스는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별수 없이 달려야 한다. 40분 동안 숨이 턱에 닿도록 달리면 겨우 교문 앞에서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6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중학교에 함께 진학하는 옥이와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며 넘어지기를 수없이 하면서도 나보다 더 큰 낡은 자전거에 깔리면서도 배워야 했다. 버스를 타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하고, 버스요금도 부담이니 해가 넘어가도록 연습을 했다. 그렇게 넘어지기를 수십 번, 무릎이 깨지고 나서야 드디어 자전거의 주인이 되었다.


한 학기 정도만 지나면 모두가 자전거 타기 달인이 된다. 두 손을 놓고 타는가 하면 자유자재로 요리조리 재주를 부리고 장난치며 학교 가는 길은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비가 오면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러 갔다가 버스도 놓치고 우중의 마라톤을 했었다. 그래도 우리들은 언제나 까르르~~ 철없이 즐겁기만 했다.




태양이 뜨겁게 지면을 달구던 여름날 하굣길에서 우리들은 자전거를 일렬로 세워놓고 구멍가게로 들어간다. 아침에 언니가 몰래 손에 쥐어 준 백 원으로 하드를 사 먹었다.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는지 시원한 그 맛에 땀이 범벅인 것도 잊곤 했다. 아주 가끔 자전거가 망가져서 버스를 타고 간 날에는 학교 앞 가게에서 라면을 사 먹었다. 생전 처음 사 먹었던 그 라면맛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꼬들한 면발에 MSG가 듬뿍 들어간 국물의 조합은 천상에 맛이었다.


우리 동네 또래 여자애들은 모두 12명이었지만 6명만이 중학교에 진학했다. 이유는 모두 같다. 가난해서다. 나 역시 우여곡절 끝에 입학했지만 꿈도 희망도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학교만 다녔던 천진난만하기만 했던 시절이다. 물론 공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국민학교에서는 곧잘 했었지만 읍내로 나가보니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고 친구들은 과외라는 것도 했다.




중학교2학년 나의 짝꿍 이름은 *순기였다. 남자이름 같지만 여중에 다녔으니 당연히 여학생으로 지금도 아픈 이름으로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순기는 마음이 아픈 친구였다.


민방공훈련이 있던 날 운동장 구석에서 비닐을 뒤집어쓰고 네가 말했지. 상처가 있는 손목을 내게 보여주며 나는 엄마가 없다고. 그런데 아빠가 새엄마를 데려왔다고, 그래서 슬프다고. 그때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듣기만 했었지. 그렇게 우리 둘만에 비밀이 생겼고, 그리고 얼마 후 너는 또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 또 시간이 흐르고 너는 마음이 아픈 얼굴로 나타났고, 우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냈지만 또다시 네가 보이지 않았고,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이었지. 부디 어딘가에서 아픈 상처 토닥이며 건재하기를 바라본다. 친구야!




아버지께서는 오빠, 남동생까지 가르치려면 여자인 나까지 중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하셨다. 교복을 입고 중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던 언니는 여동생만큼은 보내달라고 아버지를 붙잡고 애원을 했었다. 그렇게 언니의 눈물로 들어간 중학교였지만 별다른 추억도 없이 무의미하게 보내고 말았다. 중학교에 들어간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인데, 고등학교에 간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기에 공부를 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천진스럽게 언니의 눈물이 무색하게 여중시절을 보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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