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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Oct 22. 2024

시어머니와 나의 의식

이제 세상은 모두 내편이 되어가는 걸까(24.9.26)

조석으로 서늘해지던 기운마저 밀어내여름이  끝자락을 붙잡은 채 몸살을 앓고 있다. 계절이 거꾸로 가는 것인지 아침부터 후덥지근하지만 또 하나의 의식을 시작해 본다. 이미 며칠 전에 희끗해진 긴 머리의 뿌리 부분을 진갈색으로 입혀주었기에 꼼꼼히 샤워를 하고 길어진 손발톱 정리에 나섰다. 너무 짧지 않게 동그스름하게 손톱을 잘라주고, 여름초입에 칠해준 발톱젤이 절반을 벗어난 발톱도 잘라주며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다듬어 주었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밤늦게 홀로 밤산책을 나섰다. 풀벌레 소리만이 간간히 들릴뿐 정적만이 가득한 아파트의 밤은 고독하기만 하다. 주문을 외우듯이 오늘밤만은 푹 잘 자야 한다며 걷고 뛰기를 반복했지만 밤새 뒤척이며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비가 내리는 아침을 맞이했다. 위내시경시술을 하고 치료를 끝낸 지 1년이 되어 위내시경검사를 하러 가는 날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씻고 팩을 하고 얼굴에 기초제품과 선크림을 바른 후 비어있는 눈썹만  그려주고 촉촉한 립밤으로 마무리했다.


어머니께서도 노인정에 가실 때마다 그러셨다. 아침을 드시고 나면 식전에 세수하신 얼굴에 스킨로션을 바르시고 흐릿하게 남아있는 눈썹문신 위로 살짝 분칠을 하고 분홍빛 립스틱을 바르셨다. 손톱도 내가 사다 놓은 연분홍빛이나 투명 매니큐어를 바르시고 주기마다 새하얘진 머리를 검은색으로 물을 들이곤 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수건에는 검정물이 그대로 묻어나고 꼼꼼히 지우지 못한 파운데이션이 수건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어머니도 여자이기에 흐려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그 일만큼은 한동안 놓지 못하셨다. 그래도 차마 그 의식 같은 어머니의 루틴을 그만하라 할 수가 없었다.


다행이라 하기에는 그렇지만 귀도 안 들리시는데 눈까지 많이 나빠지시면서 수건에 묻었던 검정물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화장은 기저귀를 하신 채 요양원에 가시기 전까지도 의식처럼 계속되었다. 면회를 갈 때마다 어쩌다 몸이 안 좋으신 날 까칠한 모습으로 나오신 어머니를  때면 그 모습들이 스치며 세월의 무상함에 눈앞이 흐려지곤 한다. 그렇게 고운 것을, 가꾸시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가는 세월 앞에서는 그 무엇도 의미가 없음에 나도 언젠가는 어머니처럼 그런 의식들에서 멀어져 가겠지 싶다.




어머니께서 요양병원에 입원하시면서 경관식이법을 결정하고 눈물을 쏟으며 내시경시술 결과를 들으러 가던 날의 글을 발행하고 출발했다. 그날(23.7.4)처럼 오늘(24.9.12)도 비가 내린다. 암은 아니었지만 시술을 하고 무엇인가 획기적으로 나아질 줄 알았다. 세상일이 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술하고 약을 먹었음에도 내내 병원을 들락거린 지도 년이 더 지났다. 다행히 어머니의 시간들은 멈추었는지 건강을 잘 유지하고 계시다.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음에 잠을 설치고 목마취에 들어가며 어느 결에 잠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 시간이 너무 고요하여 깨어나고 싶지 않음에도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비몽사몽 잠결에 조직검사에 들어갔으니 추가수납을 하라는 간호사님의 말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2주가 지났다.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섰다. 1년 만에 마주하는 낯익은 진료실에서 어떤 결과를 듣게 될는지 두렵기만 했다.  굳이 조직검사까지 들어갔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런데 일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전히 바쁘신 의사 선생님의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가는 세월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장사가 없다더니 세월이 내려앉은 의사 선생님 모습이 사뭇 낯설게 느껴졌다. 대형병원의 권위 있는 커리어우먼으로서 그렇게 멋져 보이던 모습은 어디 가고 오후진료여서인지 오늘따라 그런 건지 더 적어진 머리숱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의사 선생님을 감히 부실한 내가 걱정하고 있었다. 누가 누굴 걱정한단 말인가 그 와중에도 오지랖이라니.


결과는 며칠 밤잠 못 자며 염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시술했던 부위가 깨끗해지고 많이 좋아졌다 한다. 그간 병원을 다니고 불편했던 모든 것들은 도대체 뭐였을까. 불안했던 마음과는 달리 좋다는 결과가 믿어지지 않았. 불편하지 않을 앞으로의 날들이 기대가 된다. 그렇게 위는 좋아졌다지만 장이 또 말썽이다. 며칠 고생하다 아직도 통증이 남아있는 배를 부여잡고 비보험인 약값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돈만원이면 족할 줄 알았던 약값이 몇십만 원이나 하는데도 그 누구도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따지거나 먹을 수도 없겠지만 잠시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약국직원도 많은 약값에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쩌겠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결재를 하보따리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도 매달 요양원비와 별도로 약값을 지불해야 한다. 지금은 의보체계가 달라져서인지 나이가 드셔서인지 몰라도 아주 적은 금액을 내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매달 촉탁비에 약값이 몇만 원 이상씩 나가고 와상환자가 되기 전에는 팬티기저귀값도 따로 내야 해서 그것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한 달로 따지면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쌓이면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그보다도 그 약들이 어머니께 모두 필요한 건지 드시기는 하는 건지 알 길이 없기에 답답하기도 했지만 무조건 믿어야 마음이 편하기에 단 한 번도 그것에 대해 거론해 본 적은 없다. 이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직접 돌보지 못하면서 의문을 가지고 따지고, 신뢰하지 못하면 나 자신만 힘들어진다. 어쨌든 그 모든 것들을 믿듯이 가져온 비싼 약들을 열심히 먹고 나아지면서 몸무게도 늘리고, 씩씩해져 또 어머니를 만나러 가야겠다. 세상이 모두 내편이 되어가는 것 같아 행복한 밤이다.


24. 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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