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통 상환 프로젝트 6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계획을 너무 빡빡하게 세우거나 반드시 실행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은 아니에요. 여행갈 때도 항공권 발권 후 호텔만 정해 두고 일정은 대충 정해서 갑니다. 정해진 날짜에 꼭 해야 하는 일정은 한국에서 티켓이며 이동편까지 예약해 가지만, 그렇지 않은 일정은 알아만 본 후 현지에서 예약하기도 하고요. 여행지 시그니쳐 활동이나 관광지 방문 한두 개는 놓칠 수 없지만, 그 외에 계획한 활동은 모두 소화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고요. 큰 일 없이 다녀오면 되는 게 여행이고, 여권과 신용카드, 핸드폰만 챙기면 왠만한 일은 다 해결된다는 생각입니다. 빡빡하게 계획짜고 그 도시의 모든 명소는 다 가봤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느슨해졌습니다. 조금은 느긋한 배우자를 만나서 인지, 제 마음대로는 절대 안되는 아이를 만나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요.
가계부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세운 예산은 혼신의 힘을 다해 절약해야만 하는 계획도 아니고 실행이 되지 않았을 때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 계획이죠. 촘촘한 계획보다는 가이드라인 개념으로 예산을 짜다 보니 스트레스는 덜 받아요. 항목별 융통성도 커지고요. 단점이라면 자주, 예산보다 많이 쓰게 된다는 점이에요. 그래도 가이드라인이 있다 보니 지출액이 예산에 가까워지면 나름 덜 쓰려고, 가급적 총액은 많이 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마이너스 통장 상환 기간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월별 수입과 지출을 맞추어 마이너스 통장 잔액이 늘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워낙 쓰던 가닥이 있다보니, 가족들에게는 스트레스 주지 않으려고 혼자 하다 보니, 마이너스 통장 잔액이 늘어나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때도 많았습니다.
첫 달 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12월 말에 연가보상비가 나왔어요. 1년 동안 휴가도 많이 쓰지 못하고 열심히도 일했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에 몰아넣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이 한도까지 차고 매달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저희는 또다시 연말 극성수기에 또다시 해외여행을 다녀왔거든요. 연말에 해외에서 쓴 카드 대금을 결제해야 합니다. 길고 긴 아이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방학특강도 몇 개 등록했고요. 연가보상비로 마이너스 통장 갚기는 실패했습니다.
조금 지나니 설 상여금이 나옵니다. 양가 부모님 용돈 조금 챙기고, 세뱃돈 챙기고, 몇 군데 선물 챙기고 나니 생각보다 많이 남지는 않네요. 저는 설과 추석 때면 양가에 큰 선물 보따리가 아닌 소액의 용돈 봉투를 준비합니다. 저희 세대야 명절이라고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부모님들은 명절 준비하신다고 여러 모로 돈 쓸 곳이 많으실 것 같아서요. 인사하고 싶은 지인들께는 먹음직해 보이는 과일 한박스 정도씩 들고 가 인사 나누고요. 받는 입장에서 보면 소소할 수 있지만, 드리는 입장에서는 모아놓고 보면 상당한 비용이지요. 그래도 이런 날에는 행복한 마음으로 나눕니다. 설 명절을 기쁜 마음으로 지내는 비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마이너스 통장을 상환했습니다. 절반의 성공.
조금 지나니 성과급이 나옵니다. 성과급 나오는 달은 세금을 왜 이리 많이 떼는지요. 1년 동안 고생한 배우자에게 용돈통장으로 백만 원 넣어준다고 했더니 마이너스 통장 먼저 갚자고 합니다. 제가 은근 압박을 줬었나 뜨끔하면서도 고맙다고 얘기하고 백만 원까지 합쳐서 마이너스 통장에 넣어봅니다. 성공.
이어서 연초 수입 릴레이 마지막 주자인 연말정산 환급 차례입니다. 돌려받자니 1년 동안 돈을 이렇게 많이 썼나 싶어 씁쓸하고, 더 내자니 받았다 뺏기는 기분이어서 연말정산은 매번 씁쓸합니다. 배우자와 저는 각각 연말정산을 함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돌려받았습니다. 금액도 상당(?)해서 내년 연말정산을 위해 연금저축이나 퇴직연금(IRP)에 넣을까도 고민했지만, 꾹 참고 급한 불부터 끄기로 합니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그대로 이체합니다. 성공.
1년 중 가장 큰 목돈인 성과급과 유독 풍족하게 돌려받은 연말정산까지 마이너스 통장에 밀어넣었더니, 마이너스 통장 잔액이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8자리 숫자였던 3천만 원에서 7자리 숫자로 내려왔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것 같아서 두근두근하며 조바심이 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