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 졸업 후.
개업을 할까. 취직을 할까. 선택의 귀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개업도 어렵고 취직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개업에 더 쏠려있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와 미래의 꿈을 가지고 저만의 그림을 그려가면서 완성해보고 싶었습니다.
1. 저는 개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제 한의원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 취직하고 늘 조직에 매여있는 생활을 했습니다. 직장 생활은 그렇다 치더라도 짜여진 체계 속에서 사유재산의 취득이 허용되지 않았던 사회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남한에 왔으니 내 소유인 것 같은 개인 한의원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주인이 된 공간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내걸고 한의원을 개원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업운영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하고, 직원들을 통솔할 수 있는 리더십이 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장소를 임대하고 인테리어 해서 환자 치료가 가능한 형태를 갖추려면 '돈'이 있어야 했습니다.
대한민국 땅에 친인척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혈혈단신 제게,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징표는 오직 "한의사 면허증" 뿐이었습니다. 전문직 면허가 있으면 은행에서 돈 빌리는 것이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과연 빌릴 수 있을지, 또 얼마나 빌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은행에 가서 사정해야 할 판입니다.
면허증을 가지고 어떤 은행으로 갔습니다. 당시 그곳 은행장은 여성분이었고 어찌어찌하여 은행장님 앞에 섰습니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이 은행이, 은행의 책임자인 이 은행장님이 저를 최대한 신뢰할 수 있게 설득했습니다.
" 북한에서 의사였고 한국에 와서 한의대 졸업했고 한의원을 개원하려고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북한에서 가지고 있던 경험을 살려서 이러저러한 한의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첫 3년, 다음 5년, 다시 10년, 그리고 20년 될 때는 이런 모습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저와 함께 해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감성으로 지점장님의 마음을 움직여보고자 개인사까지도 주저리주저리 말씀드렸습니다.
6살 된 아들을 북한에 두고 왔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꼭 성공해서 아들을 데려오고 싶습니다.
아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지만 참으면서 학업에 매진했고 이제 그 열매를 맺기 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ㅎㅎㅎ
너무나도 절절했을까요?
마침 여성지점장님이셔서 그러셨을까요. 아들 두 분을 두셨고 그중 한 명은 해외 유학 중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유학 중인 아들이 너무 보고 싶은데... 6살 된 아들을 북한에 두고 오셨으니 얼마나 보고 싶겠냐고.
인간적으로 마음을 열어 주셨습니다. 결국 저는 대출을 받았고 첫 개원을 합니다.
전문가라는 증표의 면허증 한 장이 가진 힘!! 실감했습니다.
2. 드디어 개업했습니다. 나의 한의원입니다.
"나의 한의원"이라는 표현이 조금은 성실하지 못한 표현임을 압니다. 제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증을 냈다고 해도 한의원이 전적으로 나 개인의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함께 일하는 직원 모두의 한의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다른 직원분들은 저와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죠. ㅎㅎ
이 부분은 나중에 다른 파트에서 열어보기로 하죠.~
개업을 하면 보통 처음부터 홍보를 하죠. 한국에서는 거의 정설로 되어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의원 개업 후 홍보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홍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개원했을 때 주변의 많은 분들이 조언을 주셨습니다.
홍보를 하라고, 해야 한다고요. 한국에서는 개업 첫 시작에 홍보로 많이 알려져야 그 사업이 성공한다고요.
그렇지만 저는 고집을 부렸고 그 흔한 전단지 하나 뿌리지 않고 개업했습니다
그리고 개업 첫날 환자는 딱 " 7 명"이었습니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반드시 정답일 수는 없겠지만 당시의 저의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제가 홍보를 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첫째로 :
언감생심, 혼자서 김치 국물을 마시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환자가 너무 많이 오면 큰일 나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시스템을 잘 모릅니다. 한의원을 찾아오게 될 한국 환자분들의 성향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사업체를 운영해본 경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제 실력이 확실하게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소심했고, 두려웠고, 허둥거리는 제 모습이 그려져서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많은 환자들이 내원하게 되면 준비 안된 저 자신 때문에 오히려 환자들이 실망하게 되고 나중에 오시던 분들까지도 떨어지게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었거든요.
차분하게, 느긋하게 준비하고, 파악하고,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하. 하. 하.
이거 너무 어리석은 생각 일가요?
저의 한의원에 환자가 막 몰려오게 될 것이라는 교만한 생각 일가요?
제가 홍보를 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둘째로 :
의료가 왜 상업화되어야 하지?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환자가 아프면 병원에 오는 거고, 어느 병원을 가든 그건 그냥 환자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명을 걸고 하는 일에, 그 고귀함과 신성함에 대한 행위를
내가 왜 상업적인 광고로 흐리게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의료는 인술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광고 같은 건 필요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한국의 의료인들이 의료에서 사람을 기본으로 놓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므로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당시의 심리상태를 표현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제가 한국에서 적응해가는 과정 중의 어떤 상황을 돌아보는 글입니다.)
다분히 북한에서 가졌던 사고방식이 많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죠.
개업 초기 어떤 인터뷰에 이 내용이 실렸었고 곧 한의사들의 커뮤니티에도 누군가가 내용을 올려놓았더라고요.
댓글들을 보니 별로 반응이 좋지 않더군요.
잘난 체하는? /
언제까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는? /
한국사회가 녹녹지 않는 사회임을 곧 알게 될걸? /
ㅎㅎ 두루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당사자인 제가 느끼기에는 조금 비꼬는 느낌처럼 받아들여지더군요.~^^~
** 10년도 넘은 이야기 입니다. **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