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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Oct 27. 2022

불확실성이라는 파도를 즐기기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나는 도저히 잠이 안 올 때 책을 읽어.
책을 읽다 보면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지면서 절로 잠이 들더라고. 
이때 '책을 읽는데도 왜 잠이 안 오지?'
하기보다 그저 즐기면서 읽는 게 중요해.








지난 화요일은 일찍 일어나기에 성공한 날이었다. 5시 30분에 일어나 씻고 버스를 타고 요가원에 갔다. 드디어 아침 수련을 하겠구나 하는 설렘도 잠시, 입구의 두터운 회색 철문이 나를 반겼다. 아뿔싸! 요가원 휴무일이었다. 내가 수련하는 아쉬탕가 요가에는 한 달에 두어 번씩 '문데이(Moon day)' 휴강을 한다. 달이 차올랐을 때와 차오르기 시작할 때 이틀을 쉰다. 공지를 확인하지 않았던 터라 휴일임을 몰랐다. 일찍 잠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지난밤이 떠오르며 이상야릇한 기분에 휩싸였다. 약간 허무하긴 했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적당히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햇살 가득한 거리를 걸었다. 10월 중순의 아침 7시.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간절했다. 자칭 콩나물 국밥 러버로써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아침 일찍 먹는 콩나물 국밥이라. 콧노래를 부르며 단골집으로 향했다. 


아침 7시에 홀로 즐기는 콩나물 국밥과 수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널찍한 홀 안에 텅 빈 테이블이 가득했다. 첫 손님의 위엄을 떨치며 당당히 1번 메뉴 '전주식 맑은 콩나물 국밥'을 시켰다. 수란에 따뜻한 국물을 끼얹어 입 안에 넣자 고소한 계란 내음이 가득 퍼졌다. 시원한 국물을 밥과 함께 들이켜기를 한참, 뭔가 허전한 느낌에 손을 들었다. "이모, 여기 밥 좀 더 주세요." 주방 이모가 공깃밥 한 그릇을 가져다주셨다. 콩나물 국밥집은 으레 추가 밥이 셀프로 제공되게 마련인데 막 오픈한 터라 밥솥에 밥이 준비되지 않아 공깃밥으로 주는 모양이었다. 김에 싸서 마지막 밥 한 톨까지 알차게 긁어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영어 회화 스터디에 가기 위해서였다. 


스터디룸에 도착하니 8시였다. 모임이 시작되는 10시까지 두 시간이나 남아 여유로웠다. 넓은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서 브런치 매거진이며 기사 등을 읽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나머지 시간에는 영작을 했다. 스터디에서 발표할 내용이었다. 주제는 불규칙적인 수면 패턴에 관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잠을 잘 자는 일은 매우 힘들다. 그것은 바이오리듬과 나를 둘러싼 상황에 달려있다. 나는 잠을 조절할 수 없다. 잠을 잘 잔 날은 매우 운이 좋은 날처럼 느껴진다. 나의 '수면'은 소음, 빛, 섭취한 음식 그리고 그날의 생각과 감정에 의해 좌우된다. 마음속에 찜찜함이 남아 있다면 쉽게 잠들 수 없다. 잠자는 시간도 문제가 된다. 8시나 9시쯤 아주 일찍 잠자리에 들면 새벽 2시쯤에 깰 때가 많다. 그리고 한 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한다.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마찬가지다. 새벽 2시쯤에 자려고 누우면 5시는 되어야 잠이 든다. 하지만 10시처럼 적당한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고 해도, 잘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나는 자기 시작한 지 2시간 만에 깰 때가 많다. 어떨 때는 자던 와중에 갑자기 깨기도 한다. 다음날 아침 외출 계획이 있는 경우 더 쉽게 깨고, 잠에 빠져드는 것이 더 어렵다. 아마도 그런 상황에 압박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이 글을 발표하자 스터디 모임의 선생님이 위와 같은 조언을 해주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책을 읽되 '왜 책을 읽는데도 잠이 오지 않지?'라는 생각을 하지 말 것. 오로지 책 내용에 집중하며 즐길 것. 







이 세상에는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많다.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밤새 울기 바쁜 까다로운 아기였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성장기에도 갖가지 이유로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많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공상에-주로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와 같은 종류의- 늦은 밤까지 홀로 깨어 있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한창 키가 자랄 무렵에는 다리가 아파서 잠들지 못했다. 다 큰 후에도 창가를 때리는 빗소리가 시끄러워 잠에서 깨곤 했다. 자기 전에 슬프거나 끔찍한 뉴스를 읽으면 휘몰아치는 감정에 휩싸여 뜬 눈으로 밤을 새기도 했다. 그 밖에도 너무 배가 고파서 깨거나 혹은 별 이유 없이 갑자기 번쩍 눈이 뜨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다음날 몰려올 피로감이라는 후폭풍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이를 악 물었다. 


한편으로 지나치게 잠을 잘 자는 날도 있었다. 12시간씩을 내리 자고도 모자라 낮잠까지 자기도 했다. 이처럼 '수면'이란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지만 어느 날은 슬쩍 한 걸음 다가왔다가 또 어느 날은 눈만 마주쳐도 내빼는 동네 길고양이 같은 놈이었다. 녀석을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굴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틀림없이 삶이 달라질 터였다. 


불행히도, '잘 자지 않는 까탈스러운 아기'는 타고난 모습 그대로 자라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30년을 넘게 이렇게 살아왔음에도 늘, 변함없이 규칙적으로 잠을 잘 자는 사람이 되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말로 미루어보아 타고난 체질일 가능성이 많음에도, 노력이 부족해서 일뿐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나 '잠 잘 자기'는 목표가 될 수 없었다. 시도는 해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운에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잘 자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어제는 빛을 발했다가도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통하지 않기도 했다. 필시 스스로 인식조차 하지 못한 온갖 요소들에 영향을 받아 수면의 질이 결정되는 것이리라. 아침 일찍 일어나기에 성공했다고 해서 문데이가 비켜가지 않듯 잠이 오고 안 오고는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님이 자명했다. 그렇다면 이제 그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영어 선생님의 조언을 들으며 나는 콩나물 국밥을 떠올렸다.

비록 요가는 하지 못했지만 일찍 일어난 덕분에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콩나물 국밥을 먹을 수 있었고 가게의 첫 손님이 되어 원하는 좌석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으며 2시간 일찍 스터디 룸에 도착한 덕에 발표문을 쓰는 등의 여유를 아무런 마음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이 모두가 요가 수련을 하겠다는 계획이 무산된 덕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이란 때때로 이처럼 즐겁게 마련이다. 유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만 먹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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