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나도 멋쟁이 프리랜서가 될 수 있을까?

남들처럼 나도 할 수 있을까?

by 다이앤

2015년 여름에 서울의 한 대학에서 학사모를 썼다. 2016년 봄에 첫 직장을 갖게 되었다. 부산의 한 방송국이었다. 웬일로 라디오DJ 공채가 진행되었고, 백 몇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나는 내 이름을 건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심야 프로그램 진행자였다가 저녁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가 아침 프로그램까지 진행했다. 그렇게 대략 6년, 꼭 2000회째 방송이 되었을 때 나는 DJ석에서 내려왔다. 다음 계획이 확실히 서있진 않았다. '서울로 가서 뭐든 도전해 보자.'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서 다시 시작된다.

2022년 1월, 서울에 오자마자 새 직장 면접을 보고 합격해 그 다음주부터 바로 한 방송국으로 출퇴근했다. 공중파 방송국의 기획PD로서 유튜브 채널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유튜브 생태계에서 대중의 관심을 '후킹'하는 것과는 내 스타일이 거리가 좀 있어 석 달의 계약만 채우고 나오게 되었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던 일에 도전해 보지도 않았다면 아마 미련이 남았을 것 같다. 그렇게 미련 리스트 중 하나를 지웠다. PD일은 어릴 때부터 동경했던 꿈이었어서 DJ로 일하면서도 3, 4년 정도는 언론고시 시험에 응시했을 정도였다. 지금은 전혀 미련이 없다(아마).


서울에 오고 맞이하는 첫 여름, 그렇게 또 다시 기로에 놓였다. "다희씨, 재계약은 어려울 것 같아요."라는 말과 함께 이렇게 금방 기로에 놓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 다른 곳에 또 면접을 봐야 하나? 고민이 깊었다. 생활비가 바닥 나고 있었다. 프리랜서 마켓을 통해 내레이션 녹음을 하고, 보이스 트레이닝이나 스피치 수업을 하면서 돈을 조금씩 벌었다. 이만 원, 사만 원, 오만 원... 하루 벌어 하루 쓰는 식이었지만, 어찌됐든 내 한 몸은 겨우 겨우 건사했다.


그렇게 대충 살아지니 취직 준비를 하거나 프리랜서 PD 혹은 방송인으로 다시 면접을 볼 마음이 뚝 사라졌다. 대책 없는 마음이지만 '이렇게 살아 봐도... 뭐...?'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많아진 만큼 기존에 갖고 있던 유튜브 채널에 조금 더 공을 들였다. 일주일에 1-2편씩 유튜브를 꾸준히 발행하고, 블로그도 활성화시키고, 수업하고, 녹음하고... 이런 사이클로 하루하루가 돌아갔다. 그러니까 어영부영 상사 없이, 눈치 보게 되는 동료 없이 오롯이 나 혼자서 일하고 혼자 벌어 혼자 부양하는 완전 1인 프리랜서 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사실 그간 나는, 나와 사이가 가깝지 않은 편이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을 아주 힘들어 하는 편이었다. 외롭고 심심한 것과는 거리가 먼 감각이다. 남들하고 있으면 남들을 살피느라 온 에너지를 쏟고, 집에 와서는 내면이 공허해지는 그런 타입이었다. 그 빈 구멍으로는 불안과 우울이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밀려드는 불안이 벅차 도파민에 뇌를 절이거나, 아니면 나가서 활동하다가 소진이 되곤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치 않고 자아가 탄탄하지 않다 보니, 일상 생활 습관이 좋지 않았다. 늦잠도 잦고, 요리 해 먹는 것도 들쭉 날쭉, 운동 등록했다가 꾸준히 나가는 것도 힘들어 했다. 감정 기복에 따라 생활 패턴이 좌우되었다. 내가 바로 서 있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24시간 나 홀로 집에서 일하고 있는 마당에 계속 혼자 있는 시간을 불편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평생 이렇게 살 순 없지 않은가?'까지 생각이 미쳤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나 스스로와 친해지고 나와의 시간이 편해지는 것, 내 일상을 잘 챙기는 것. 지금까지는 이걸 들여다 볼 여유가 없고 기회가 없어, 늘 후순위로 미뤄왔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이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이 중요한 문제를 문제인지조차 모른 채로 계속 방치해 둔 것도 약한 수준의 자학이었다고 본다.


그제서야 나는 이 목표물을 정확히 겨누게 되었다. 내가 나인 게 편안해짐으로써 혼자인 시간에 자연스러워지고 내 일상을 잘 꾸려주는 것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내 삶의 청년기에서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 오래 + 매일 + 그것도 내게 큰 영향을 미치는 누군가 없이 보낼 수 있는 시기가 또 올까? 다신 없을 기회였다.


그렇게 나는 내면의 집을 한번 제대로 지어보기로 했다. 땅부터 다지고 바닥부터 벽돌을 쌓는 것이다.


물론 모를 일이다. 마음 한 편엔 취직의 버거움이나 귀찮음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대충 살아지니 이렇게 좋게 좋게 대충 가자!"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모르는 척 넘어간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속임수에 넘어간 거라 해도, 프리랜서로서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며 온전히 내 힘으로 내 커리어를 쌓아가는 건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 아닐까? 삶에서 무슨 일을 하고,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스스로와 친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이 사실은 가장 중요한 기반일 테다.


막연히 '유튜브 열심히 해서 유튜버로 성공하고, 수업 열심히 해서 언젠간 나만의 사업도 해봐야지!' 이런 생각으로 하루 하루 그래도 성실히 임했다. 당연히 7~8할은 힘들었다. "이 나이면 얼마 정도는 모아놔야지.", "집 살 준비도 하고 결혼도 준비하고 그래야지.",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해외 여행도 시켜드리고 해야지."이런 외부의 기준들이 이미 잔뜩 내면화된 상황이라 문득 아침에 눈을 뜨면 영영 일어나고 싶지 않았고, 밤이 되면 마음이 역시나 불안해졌다.


그래도 족적을 남길수록 조금씩 아주 미세하게나마 내 활동 반경이 넓혀지는 게 보이고, 내 수업에 만족하는 분이 늘어나고, 내레이션 재주문을 해주는 클라이언트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힘을 내었다. 직장에서 남의 기대나 기준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고민해 짠 나의 교안으로, 내가 노력해 만든 나의 목소리로 돈을 벌면서 오랫동안 비어있는 내면의 중심부가 조금씩 채워졌다. 정부 지원으로 상담도 받았다. 대인 관계 이슈를 다루면서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문제를 알아차렸다. 때때로 명상도 하며 마음도 잘 돌보아주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지금 나는 삼시세끼 스스로에게 건강하게 밥을 차려주고, 산책을 일상화하고, 러닝도 하고 수영도 하고, 요가도 하고... 낯선 사람들과도 함께 편하게 어울리고, 주 1~2회 정도 적정한 정도로 친구들과 재미난 시간도 가지며 일상을 성실히 채워나가고 있다. 작은 일이 또 다른 일로 이어지는 그물망이 만들어지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도 전보다는 나아졌다. 갑작스레 불안이 찾아올 때는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면 나아질지를 안다.


남들 다하는데 왜 나만 힘들까


이 고민은 내 친구나 다름 없다. 다른 프리랜서들 보면 인스타도 잘 운영하고, 블로그 포스팅도 매일 하고, 유튜브도 대세에 맞게 잘 만들고, 욕심 내서 착착착 잘만 커리어를 쌓아가는데 나는 왜 그런 것들이 안 될까. 인스타는 아이콘만 봐도 한숨이 나오고, 유튜브를 한다고 하면서 겁나서 다른 사람 채널은 잘 들어가 보지도 못한다. 책을 내야지, 뭘 해야지 계획은 있으면서 어영부영 한 달 두 달 시간을 그냥 흘러보낸다. 다른 사람 일에는 참견하고 싶어하면서 내 일에는 통 의욕이 안 생긴다. 나는 왜 이럴까?


그런데 몇 년 전을 돌아 보니 '왜 나만 이럴까?'의 대상 행동들이 더 많았던 거 같다. 왜 나는 회식에서도 마음이 불편하고, 다른 사람들 얘기하고 있으면 끼는 게 힘들고, 방송에서 나를 드러내는 게 불편할까? 대인 관계뿐만이 아니다. 왜 나는 운동을 꾸준히 못할까? 왜 먹는 거 조절이 안 될까? 왜 혼자 있는 시간에 휴식을 못할까? 그런데 이 부분들은 이제 꽤 해결이 된 듯하다. 이젠 이런 것들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매슬로우 욕구 위계 같은 피라미드를 한번 떠올려주시라. 어쩌면 나는 기초 공사가 덜 돼 있던 상황에서 그 다음 다음 과정에 대해 조급해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아직 땅도 안 다졌는데 '왜 나는 벽지를 잘 못 바를까?', '장작은 무슨 나무 장작을 할까?' 같은 시기 적절하지 않은 고민들로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내가 바로 서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편안해야 사실 내 일과 내 커리어에도 집중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러니 셀프 브랜딩이니, 커리어니 하는, '남들 다하는데 왜 나만 힘들까'하며 한숨 푹푹 쉬었던 항목들은 그때가 아니라 지금 다룰 것들이 아닌가 한다. 마음의 힘이 키워졌으니, 이제 그 힘을 활용해 내 외연을 확장할 때가 온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다짐이다. 그 동안 '왜 나만................' 무한소수처럼 끝없이 땅굴을 파던 나를 청산하고 이제 준비가 얼추 되었으니 하나 하나 제대로 해보자! 나도 멋쟁이 프리랜서로 거듭나리라 선언하려 한다. 사람 생겨먹은 게 어딜 가진 않으니, 남들보다 훨씬 느릴 거다. 제자리걸음도 많이 하고 자주 머뭇거릴 테니까. 그래도 남들 꽁무니에서 걸음은 멈추지 않으려 한다. 러닝 크루에도 꼴찌가 필요한 법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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