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침에 벌떡 일어날 수 있을까?

나도 남들처럼 할 수 있을까?

by 다이앤

정신 없이 바쁜 게 지나가면 마치 큰 도화지 하나가 눈 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다. 외부 일정의 방해 없이 오롯이 내 길을 스스로 그려 나가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그러면 어김 없이 아침잠이 많아진다. 회피하고, 회피한다. 과수면을 하고 늑장을 부리다 보면 하루 하루 직면한 스케줄만 딱 쳐낼 수 있는 정도로만 내게 시간이 주어진다. 수업하고, 외주 일을 하고 그렇게 하루가 간다. 내가 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여전히 진행이 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책 내용을 다 쓰고 출간 계획서까지 마무리한 지 한 달도 넘었는데, 아직도 출판사에 메일링을 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안해서이다. 투고를 하는 게 마치 산속 골짜기 계곡에 고여 머물러있다가 갑자기 대양으로 나가는 것만 같다. 투고 결과가 안 좋으면 상처가 될 텐데, 내 글에 안 좋은 피드백이 오면 내가 또 큰 타격을 입을 텐데... 마음 깊은 곳 연한 부분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결과가 안 좋더라도 일단 도전을 하고, 안 좋은 피드백이 오면 이를 거름 삼아 다시 다음에 재도전하면 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내 무의식의 불안이 점점 부풀어올라 이성과의 대결에서 매번 이길 뿐.


심지어 어제는 수업을 직전에 취소했다. 도무지 자리에서 일어날 힘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늦게나마 겨우 몸을 일으켜 음식을 배달해 먹고, 불안을 밀어내려는 듯 너무 음식을 욱여넣어버려 답답한 속을 부여잡고 또 몇 시간 소파에 누워 드라마를 보고 비몽사몽한 상태로 낮잠을 잔다. 해야할 일을 쳐낼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만 남을 때까지 잔다. 기가 막히게 또 그 타이밍을 안다. 오후 늦게 몸을 일으켜 일을 하고 수업을 한다. 학생들을 만나며 조금 기운이 올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컨디션이 안 좋다. 어플을 보니 배란기이다. 이번엔 환절기 영향 때문인지 호르몬의 직격탄을 맞았나 보다. 몸 구석 구석이 아프고 마음은 더 힘이 없다.


이 흐름대로 오늘도 늦잠을 잤다. 악몽까지 꿨다. 안 좋은 일을 당하는데 심지어 그게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꿈이었다. 유심히 생각해 보니 지금 유튜브 새 콘텐츠를 기획 중인데 이에 따른 불안이 또 커졌나 보다. 반응이 좋을까? 어떤 반응이 올까? 기대를 크게 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부정적인 결과나 피드백에 아직도 취약하다.


이 취약함은 스스로 '무가치하다'라고 생각하는 데서 기인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는 무가치하기에 나의 가치를 성취나 성공, 좋은 모습으로 입증을 해야 한다, 애를 써야만 그나마 타인들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사랑받을 만해진다고 마음 깊은 곳에서 철썩같이 믿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고 나를 달래고 있지만 호르몬과 불안함의 협주로 마음밭이 엉망이 됐을 때는 무의식이 승기를 잡고 만다.


오늘 요가를 하면서 이 마음에 집중해 봤다. 새 유튜브 콘텐츠, 투고를 앞두고 불안이 비대해진 그 마음에 들어가 봤다. 그랬더니 내 내면 세계의 상징적인 모습 하나가 떠올랐다. 냉장고에 등을 붙이고 웅크리고 있는 열 네 살의 나다. 초등학교 졸업식 직전이니 아마 2월쯤. 수업은 없어 삼삼오오 모여 떠들기만 하는 시기에 나는 친구 관계가 조금 불편했고, 그날따라 몸도 안 좋아 엄마에게 아파서 결석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몸이 아픈 것도 있지만 마음이 좀 지친상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친밀감에 서툰 나이기에 이런 자투리 시간을 더 힘들어 했다. 몇 번 요청하니 엄마는 그러라고 하곤 학교에 전화했다. 그러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누우셨다.나는 홀로 남겨져 냉장고에 등을 대고 웅크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분명 같은 집 안에 있었는데도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않았다.


곁에 누가 있더라도 도움을 받을 순 없다는 깊은 좌절감, 혼자라는 고독감, 감정을 이해받고 수용받지 못한 데서 오는 무가치함과 무기력감. 내 마음 깊은 곳에 화석처럼 남겨져 있는 핵심 정서들이다. 몇 번 떠올리고 이 내면 아이를 달래주는 시간을 거쳤는데도 아직도 작은 다희는 차가운 분위기를 느끼며 냉장고에 기대어 있고, 윙윙거리는 소리만 귀에 의미 없이 전달될 뿐이다.


그런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마치 소년 만화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에게 주변 동료들이 한 마디씩 응원을 전하는 것처럼, 내 소중한 이들이 어린 나에게 한 마디씩 건네주었다. "다희야, 괜찮아.", "다희야, 아이구 많이 힘들지...", "다이는 늘 멋져.", "다희는 할 수 있어.", "힘들어도 괜찮아.", "사랑해." 그런 말들을 하며 나를 꼭 포개어 안아주는 거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몇 겹의 포옹. 앞으로도 종종 친구들을 동원해 그렇게 나를 안아줘야겠다.


근력 운동을 단단히 해서인지, 내면의 불안을 안아줘서 그런지 요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살아갈 의욕이 좀 더 생겼다. 내가 왜 불안한지 이해가 되면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크고 흰 도화지를 앞두고 불안하겠지만, 대양으로 나아가기에 앞서 막막하겠지만, 네 곁엔 도와줄 사람들이 많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 넌 썩 괜찮은 사람이고, 하나씩 하다 보면 해낼 수 있을 거야.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그저 하루하루 피하듯이 보내는 게 아니라, 꾹꾹 발을 눌러 족적을 남기듯 살자. 순간 순간에 집중하자. 정말 애쓰고 있어. 사랑한다, 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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