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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담 Feb 18. 2024

06. 새 집을 채우는 즐거움

#파니팡 마이룸 꾸미기 게임(네이버 블로그)


어릴 때 주니어네이버에 들어가면 파니룸 꾸미기라는 게임을 할 수가 있었다. 지금의 동물의 숲이나 심즈처럼 캐릭터와 방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게임이었는데, 어릴 때는 이 게임이 왜 그리 재미있었는지.


한두 시간씩 공들여 인테리어를 하곤, 지우기가 아까워 스크린샷으로 저장하고 폴더별로 정리해뒀던 기억이 난다.


인테리어에 대한 열망은 그때부터 시작됐었던 걸까. 공간을 꾸미는 즐거움을 일찍이 알고는 있었지만 실현시킬 기회가 없어 주어진 대로 살던 이십여 년을 뒤로 하고, 드디어 내 꿈을 펼칠 기회가 온 것이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고대하며 기다리던 집 공사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에 끝이 났다. 나는 공사가 끝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부동산에 가 1월 중으로 계약을 했다.


집에 어떤 물건을 들일지에 대한 고민은 그때부터였다. 이미 옵션으로 에어컨, 세탁기 겸 건조기, 냉장고, 가스레인지, 텔레비전, 그리고 공간을 나눌 수 있는 파티션 역할의 수납함은 갖추어져 있는 상태였다.


흔히들 말한다. 자취할 때는 당근 거래나 중고로 아무거나 사서 쓰고, 신혼 혼수 장만할 때 좋은 가전, 가구 맞춰서 들어가라고. 혼자 사는데 그렇게 좋은 물건 갖다놓고 쓸 이유가 뭐가 있냐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 자취는 편하게 말해 ‘자취’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던 거지, 엄밀히 말하면 경제적으로 독립한 딸이 정식으로 1인 가구를 이루기 위해 공간적으로도 독립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생 자취라고 해서 그 살림이 허술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타협이 싫었다. 인생의 다음 스텝을 밟기 전에 어쩔 수 없이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내 독립 생활의 첫 시작을 함께 하는 소중한 공간으로서 집을 대하고 싶었다.


다음 집에도 가져가고 싶은가?


안에 들일 물건도 임시로 들여놓을 것들이 아닌, 이사를 다니면서도 나와 함께 갈 좋은 물건, 손에 감기는 물건들로 채우고 싶었다. 그게 내가 인테리어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였다.






우선 집에 놓을 가구와 가전, 소품을 군더더기 없이 뻐른 시일 내에 들여놓으려면 실측이 필수로 선행되어야 했다. 필기구와 줄자를 챙겨 집 안의 벽면과 창문의 가로와 세로 길이, 콘센트와 바닥까지의 거리 등을 최대한 꼼꼼하게 측정했다.




가구의 경우 일반 배송이 아니라 화물 배송으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최소 2주 전에는 주문을 해 놓아야 원하는 날에 받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방 안에 들일 물건을 최대한 빨리 선별하고 주문해야 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 어떻게 하면 가구와 가전을 미리 짜 넣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해결해준 게 바로 오늘의 집 3D 인테리어 기능이었다. 방 치수를 입력하면 3D로 방이 만들어진다. 마치 심즈처럼. 그럼 그 안에 오늘의 집에서 실제로 판매하고 있는 물건들을 배치시켜 볼 수가 있다.


모든 제품이 있는 건 아닌 듯 했지만 내가 살 큼직큼직한 것들은 대부분 인기순위 상위권 제품들이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렌더링을 돌려본 인테리어 모습이다. 이렇게 꾸미는 과정 자체가 무척 설레고 기뻤다. 뭐니뭐니해도 대학생 자취와 직장인 자취의 차이점은 소득의 유무 아닐까. 박봉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 박봉도 몇 달치를 모으면 그럴듯한 세간살이를 마련할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었다. 만 원, 이만 원이 아깝던 대학생 때와는 씀씀이가 달랐다.


결국 ‘이때 아니면 못 산다!’ 하는 마음으로 꽤나 과감하게 오늘의 집 장바구니를 채우고 동네 소품샵을 돌아다녔다.


‘대충, 잠깐 쓸’ 그런 마음으로 고른 것은 없었다. 다 내 몸에 꼭 맞고 쓰기 편한 것들로 구비해두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렇다고 비싼 것만 골라서 샀다는 얘기는 아니다. 후기를 살펴보며 꼼꼼하게 장바구니를 채우다보니 대부분이 오늘의 집에서 사람들이 무난하게 많이 구매하는 것들이었다.


그 과정이 귀찮기도,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기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너무 행복했다.


내 방도 아닌 무려 집이 생기는데, 그게 새 집이라 그 안에 들어갈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내 취향껏 고르고 넣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불현듯 가슴이 벅차고 모든 게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가상으로 인테리어한 제품들을 실제로 구입해서 입주 날부터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들은 사진으로 정리해보았다.



#입주 둘째 날. 테이블, 의자, 스탠드가 들어왔다. 의자가 빨리 와서 일하면서 쉴 수 있어 좋았다!



#입주 셋째 날. 침대가 들아왔다.(아빠 찬조..ㅋㅋ)




#주문 제작형 블라인드 직접 설치하던 날. 너무 힘들었지만 다 설치하고 나니 너무 뿌듯..! 아직까지도 잘 쓰고 있다.




#소품샵 나들이 다녀 온 날. 온라인으로는 턱턱 담고 결제까지 망설임이 없었는데, 오프라인에서 물건 고르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신발장 옆 공간 활용해서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놓았다.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딱 맞는 쓰임을 찾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부엌이야말로 효율이 중요한 공간이라 생각했다.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 용품을 마련해서 착착 채워넣었다.




#문에 걸 수 있는 것들은 걸어서 공간을 활용했다.




#어쩔 수 없이 미관을 해치는 완강기에는 조화 식물을 걸어두어 투박함을 조금이라도 중화(?)시키려 했다.



#꽤 큰 현관문은 그 자체로도 좋은 수납공간이 된다. 자석 수납함을 붙여놓았더니 요긴하게 쓰인다.





#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친구들을 초대해서 맛있는 것도 먹었다.





#이렇게 해서 짠, 완성본 우리 집! 벽면에 거는 그림이나 엽서, 베개커버가 바뀌기도 하지만 현재까지 크게 변화 없이 유지 중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파란색 이불도 깔고 그림도 바꿔 걸었다.






이렇게 정리해두고 산 지 만으로 1년이 되었다. 이때 만큼의 열정(과 돈..)은 사그라들어 이제는 예쁜 소품이 눈에 보인다고, 후라이팬 코팅이 벗겨졌다고 덥석 새 물건을 들이지는 않는다.


물건에는 정해진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정리전문가 곤도 마리에의 말에 공감해서 집 안의 모든 물건에 다 자기 자리를 미련해 줬기에, 그 자리가 비지 않는 이상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가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들인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손길이 가고 마음이 간다.


특히 인테리어, 즉 내가 살 공간을 기획하고 디자인한다는 것은 몰랐던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해서, 물건을 고르는 과정에서 내 취향을 고집스럽게 들여다보고 자문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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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고 푸른 색, 그리고 패턴이 있는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것.

아크릴이나 플라스틱보다 스틸과 가죽이 주는 느낌을 더 선호한다는 것.

멋지게 진열해놓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잘 정리해서 넣어두는 쪽이 깔끔하다고 느껴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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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다시 이사를 가게 된다면 이 정도의 마음과 정성으로 집을 꾸밀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모든 걸 다 쏟아본 사람만이 미련 없이 다음 걸음을 할 수 있듯이, 돈도 시간도 인테리어에 아낌없이 쏟아본 경험을 가져봤기에, 다음 집에서 힘을 더 빼고도 내 취향껏 꾸밀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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