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담 Feb 11. 2024

05.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독립을 해야겠어.


엄마와 같은 방을 공유한 지 1년이 넘어가던 때였나,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독립을 해야겠다, 하는.


언젠가 본가를 떠나 나 혼자 자취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은 늘 가슴 속에 품어 왔었다. 그런 생각이 수면 위로 퐁- 떠올라 내가 거부할 수 없는 계시처럼 와 닿은 것은 그저 여느 때처럼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본능적인 욕구가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었다.


나는 내 방이 없는 삶에 적응해나가고 있다고, 그다지 불편할 것도 딱히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거였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모든 시간들을 참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참아왔던 감정들은 저 수면 아래에서 어느덧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엄마. 나 독립하고 싶어. 집을 알아볼게.


2023년 봄이었다. 부모님께 그렇게 말씀드리곤 곧장 방을 알아봤다. 크게 모아놓은 돈은 없었지만 그래도 직장을 이삼 년 다니던 터라 소득이 잡히니 대출이 나올 것이고, 융통할수 있는 자금 범위 내에서 열 평 남짓한 방 하나 쯤은 구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는 틈이 날 때마다 직방과 다방을 구경하며 본가와 직장 근처의 원룸, 투룸 매물을 살폈다. 당시 내가 원하던 조건은 이랬다.


1. 8평 이상일 것
2. 채광이 좋을 것 (정남향 선호!)
3. 깔끔하고 단정한 집일 것
4. 버팀목 전세 자금 대출 조건에 부합할 것 (= 융자를 많이 끼지 않고, 전세가가 1억 이하일 것)


당연히 네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집은 쉬이 찾을 수가 없었다. 집이 좀 넓은가 하면 인테리어나 전세가가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 했고, 채광도 좋고 단정한 집은 보통 7평 이하로 평수가 아쉬웠다. 1, 2, 3을 다 만족한다 하더라도 융자를 많이 끼고 있거나 전세가가 1억이 넘는 물건은 대출이 나오지 않으니 애초에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가 못 됐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에서 확인해본 매물이 그럭저럭 괜찮아 부동산에 연락을 취해보면, '버팀목 전세 자금 대출'이라는 조건에서 곤란한다는 답변을 보내오기가 부지기수였다. 알아보기 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나라에서 취급하는 상품이다 보니 깐깐하게 심사를 해서 집주인이 꺼려 한다는 사실을 부동산으로부터 전해들었다.


그렇게 몇 번 유선 상으로 방들을 알아보다가, 분명 플랫폼에 올라오지 않은 알짜배기 매물들도 찾아보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느 날씨 좋고 따사롭던 주말, 부모님을 대동하고 꽃구경이 아닌 '방구경'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우선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대학로 근처라, 저렴하고 학생들이 살기에 좋은 원룸 쪽으로 먼저 알아보았다. 대부분 전세가도 생각보다 훨씬 저렴하고 관리비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하나 걸리는 것은 방의 크기였는데, 대부분이 6평 내지 7평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크지 않았다.


그래도 실제로 보면 뭔가 다를 수도 있으니까, 구경이라도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소개받은 몇 군데를 둘러봤다. 대부분이 집 근처를 왔다갔다 하면서 한번쯤 본 적이 있는 건물들이었다.


그런데 평소에는 눈여겨 보지 못 했지만 내가 살 집이라고 생각하고 둘러보니 눈에 밟히는 부분들이 여럿 있었다. 우선 건물 주변으로 정리가 하나도 되지 않은 각종 쓰레기들이 펼쳐져 있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따로 분리배출하는 곳이 없어보였다.


건물 근처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몇 명이 잠옷 바람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간 방문 너머로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좁은 방이 나타났다.


싱글 사이즈 침대 하나와 책걸상. 신발 두어 개만 벗을 수 있을 법한 작은 현관. 그게 그 방의 전부였다. 몇 명의 대학생들이 묵다 나갔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 연식이 있어 보이는 방이었다.


방을 보자마자 더 볼 것 없이 나가자고 그랬다. 내가 직장인이라서가 아니라, 대학생이었어도 계약하지 않았을 거라는 견적이 바로 나왔다. 부동산 소장님이 좀, 그렇죠? 머쓱하게 말씀하시며 다른 곳을 보여주시겠다 했다. 비슷한 방을 몇 군데 더 확인했지만 처음 본 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로 주변의 원룸 탐방은 '그 정도로 좁을까' 싶은 방들을, '이 정도로 좁구나'하고 확인받는 과정이었다. 서울의 번화한 대학로였다면 선택지도 더 많고 전세가도 더 비쌌겠지만, 지방의 작은 대학로에서는 방들도 다 비슷했고(적어도 내가 살펴본 근방은 그랬다), 오천 만원 남짓하는 전세가를 듣고 혹해서 방문하면 다 그 가격인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는 수순이었기에 대학로에서 방을 구하고자 하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는 아예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인근 대형마트 근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처에 빌라도 몇 개 있는데, 깔끔하고 신식인 원룸이 있다고 해서였다.


확실히 그 동네에 살면 치안도 좋고, 마트와의 접근성도 좋을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드나들던 마트라 근처 동네가 다 친근하기도 했다.


이윽고 차를 끌고 당도한 빌라 건물은 지은 지 오래 되지 않아 깔끔해보였다. 한껏 기대를 하고 들어간 1층 원룸 방은 7평이라는 공간에 맞게 매우 컴팩트했다. 옵션으로 구비된 가전도 새 것 같고 집이 화이트톤이라 깔끔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앞에서 본 원룸들에 비해서 여러 면에서 괜찮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뭔가 '살고 싶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조건에 크게 어긋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느낌이라는 게, 집 구할 때 참 무시 못 할 요소였다.


굳이 아닌 이유를 꼽자면, 집 자체는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이었지만 채광이 좋은 편은 아니라 집 자체가 밝은 느낌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융자를 많이 낀 집이라 대출이 나올지 안 나올지도 불분명했다고 한다. 구십 퍼센트의 비율이 다 빚이라고.



이쯤에서 잠깐, 전세를 구하는 일의 불안함에 대해 말해보자면...

전세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사람은 알겠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1년 전인 2023년도 초반에는 한창 전세 사기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뉴스에는 전세 사기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들이 하루 걸러 나왔었다. 그렇게 사기를 당한 연령층이 나와 비슷한 이삼십 대라는 점도 마음이 아팠다.


상황이 그랬으니 여유가 안 돼 전세를 살긴 해야겠는데, 조금이라도 불안한 집은 아무리 방이 깨끗하고 예뻐도 계약을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연준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이 어느 정도 잠잠해져서 금리를 올리려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시중 은행의 변동 금리 상품으로 전세 대출을 받는 것도 부담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니 가뜩이나 방 구하기도 힘든데, 전세인 데다 조건이 맞아 대출도 나오는 집들을 추리는 것이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 필터링을 해서 거르다 보면 볼 수 있는 집이 대여섯 채밖에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현실의 씁쓸함을 알고 있긴 했지만 실제 부동산을 눈으로 확인해보며 느낀 현실의 벽은 예상보다 더 높았다.




마땅한 집이 없던 차에 하나만 마지막으로 보자 해서 찾아간 곳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바로 옆에 두고 있는 전세 구천 짜리 미니투룸이었다. 건물도 신식이고, 방 자체도 12평으로 다른 곳보다 널찍해서 공간 분리도 잘 되어 있었다.


앞서 본 집들 중에서는 제일 나았지만 마찬가지로 '이거다!'하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일단 집이 북향이라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한낮에 방문했는데도 집에 어두운 기운이 있었고, 불을 켜면 쨍한 백색등이 눈에 거슬렸다. 몰딩이나 도배도 세련되긴 했으나 블랙, 그레이가 섞여 묘하게 어두운 톤이었다.


이 집도 계약하지 못 한 채 부동산 소장님께는 좋은 집이 나오면 알려달라, 부탁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당차게 부모님까지 대동해서 확실하게 집을 구하겠다, 마음 먹었던 기세는 온데간데 사라졌다. 그럭저럭 만족스럽기라도 한 집도 찾을 수가 없었고, 대부분이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마음에 안 차는 집들이라 더 실망스러웠다.


차라리 한끗 차이로 별로였다면 다음을 기약해볼 수 있었을 텐데. 집들이 모두 기대보다 한참 밑인데도 전세가가 생각보다 높다는 사실 또한 충격이었다. 결국 내가 바랐던 자취의 꿈이 사실은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의 허황된 꿈이었나, 하는 의문마저 들 정도였다.


처음에 독립한다고 했을 때는 굳이 뭐하러 나가냐, 하던 부모님께서도 딸내미 좋은 방 얻어 나가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부동산을 둘러보셨을 텐데, 다 보고 집에 와서는 그러셨다.


집들이 다 너무 서글프더라. 독립은 조금만 미루는 게 어떻냐.


별다른 선택지가 없던 내게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독립이 아무리 절실하다 한들 그건 내 사정이고, 현실이 따라와주지 않으니 결국 독립이라는 꿈은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다시금 익숙한 일상을 살아가기에 바빠졌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도 심심하면 직방과 다방을 살펴보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물론 매일 보는 집이 그 집이고, 좀 괜찮다 싶어 문의해보면 '버팀목 대출은 어려워요.'라는 대답만 메아리처럼 돌아오곤 했다. 아직 독립은 많이 이른가보다, 사실상 포기해가고 있던 때였다.


어느 여름 날, 대학교 원룸 투어를 할 때 같이 돌아봐주셨던 부동산 소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희담 씨, 지금 괜찮은 오피스텔 하나 지어지고 있는데 가계약.. 걸어볼래요?


오피스텔? 내가 사는 지역이 기업이나 회사가 마땅히 없어 잘 없던 물건이었다. 아파트는 매물이 없고, 빌라 원룸은 성에 차지 않았으니 마땅히 반길 일이었다. 오피스텔이면 딱 좋지..!


네, 소장님. 연락주셔서 감사해요. 방은 어떻게 나왔나요?

9평 남짓에 풀옵션이에요. 엘레베이터랑 주차장도 있고요. 근데 공사 중이라 방을 볼 수가 없네. 사장님이 지어놓은 다른 오피스텔이라도 볼래요?


그렇게 해서 현재 오피스텔을 짓고 계신 업자 분의 다른 건물을 눈으로 확인해 볼 기회가 있었다. 일반 원룸을 본 게 아니라 꼭대기 층 펜트하우스를 봤는데도 업자 분의 센스와 스타일이 확 느껴져서 단번에 신뢰가 갔다.


우선 건물의 외관부터가 깔끔하고 고급스러워 보였고, 집 안의 수납장, 매립등, 문 손잡이, 몰딩, 도배 하나하나가 모두 빠짐 없이 깔끔하고 세련되며 실용적이었다.


지금 짓고 있을 오피스텔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겠거니 짐작이 되자, 가계약을 걸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근처에서 비슷한 컨디션의 다른 물건을 찾기란 어려울 거라는 확신 또한 강하게 들었다.


결국 방을 그렇게 보고도 내리지 못 하던 결단을, 실물 한번 눈으로 본 적 없이 내리게 된 것이었다. 부모님께도 이러저러한 집이 있는데 가계약을 하고 싶다고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 전에 같이 집을 보러 다니지 않았더라면 만류하셨을지도 모른다. 한번 보지도 못한 집을 그렇게 쉽게 계약할 수 있겠냐, 하며 말이다.


그러나 함께 그 수많은, (부모님 피셜) '서글픈' 집들을 들여다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내가 마음 먹었다면 그럴 만하겠거니 생각해주셨던 모양이다. 두 분 다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다.






그때가 7월이었나, 8월이었나 그랬다. 겨울에 들어가게 될 집을 여름에 선점해두고는 그 이후로 계속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잊을 만 하면 '내 집은 잘 지어지고 있을까?'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다.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라 궁금해하기만 하다가, 가끔 소장님이 진행 상황을 사진으로 알려주시면 그 사진을 보고 또 보고 했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일 때의 사진



그러나 완공되기 전에도 단 하나 확신했던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채광이었다.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에 소장님과 함께 들른 적이 있다. 어느 층의 어느 방을 계약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정하기 위함이었다. 5층 짜리 건물이었는데 5층은 펜트하우스로 사용될 예정이라, 2층에서 4층 사이 방들 중에서 내가 원하는 곳을 고를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높은 방이 햇볕도 더 잘 들고 좋을 것 같다는 소장님의 말씀을 참고해서 4층의 정남향 방으로 정했다. 정리가 안 된 모래와 시멘트 가루를 밟아가며 방에 딱 도착했는데, 벽에 나란히 나있는 두 개의 창으로 햇빛이 막힘 없이 내려쬐는 모습이 보였다.


도배라고는 일절 되어 있지 않은 공사 현장이었는데 그 덕에 환했다. 그게 내게 확신을 줬다.

다른 건 어찌 되더라도 이 햇빛만 있다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 말이다.


집을 보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여러 집을 다니다 보니 햇빛과 채광이 내게 그 정도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런 경험을 통해서야 알았다.






공사가 거의 다 끝나갈 무렵의 사진


그렇게 12월이 되어 위와 같은 사진을 더 받게 되었다. 공사가 거의 다 끝이 났고, 방 안에 옵션으로 주어지는 가전만 채우면 모두 끝이 난다는 메세지와 함께 말이다.


도배와 타일까지 마친 방 사진을 보고 있으니 너무 설레고 이사할 날이 기다려졌다. 군더더기 없이 화이트로 도배한 것도, 부엌의 벽 타일도, 현관문의 중문도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어느 가구를 놓고, 어떻게 배치를 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상상했고, 준공 승인을 기다려 대출까지 성공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내 집도 아니고 전세로 들어가는 집인데도 그랬다.




모든 공사와 입주 청소가 끝난 방의 모습


본격적으로 계약도 하고, 완성된 방의 모습도 둘러보게 됐다. 업자 분께서 방마다 입주 청소까지 싹 해주셔서 바로 몸만 들어가면 되는 방 상태였다.


이사를 하게 되면 바로 가구 배치부터 마치고 싶어서 서둘러 이사일 전에 소장님과 방에 들러 줄자로 실측부터 했다. 오늘의 집에서 실제로 구입할 것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인테리어와 정리 책을 정독하기도 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이 모든 준비의 과정을 너무나 기껍고 즐겁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너무 잘 풀리기만 해서 묘하게 불안하기까지 했던 마음과 이미 머물고 있는 집에서 마음이 떠서 부모님을 서운하게 했던 순간들까지도.




다시 생각해보니, 많은 행운이 내게 따라주었다. 나를 기억하고 미리 알려주신 부동산 소장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매물 몇 개 없는 전세 계약을 하지 못 했을 거고, 버팀목 대출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준 친구가 아니었으면 내 조건으로 대출이 될지 확신을 가지지 못 했을 거고, 흔쾌히 독립을 허락해주고 도와주신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홀가분하게 그 집을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행운들에, 그리고 지금도 내가 앉아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나와 1년을 함께 해준 이 집에 진심으로 고맙다.


언젠가 다른 집으로 이사가더라도 계약부터 인테리어까지 처음 내 손으로 해낸 이 집을 잊을 수가 없겠지.


아직 남은 계약 기간 1년을 채우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지, 계약을 연장하고 여기에 더 머무를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함께 하는 앞으로의 날들 동안, 잘 부탁해!

이전 04화 04. 누군가에게 집을 보여준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