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담 Jan 28. 2024

02. 기숙사로의 도피

남동생과 나는 3년 터울이다. 작은 방에서 티격태격하면서도 잘 지냈던 우리지만, 둘 모두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게 됐다. 내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동생이 초등학생이어서 어떻게든 부대끼며 살 수 있었는데 둘 모두가 2차 성징을 겪게 되면서 그게 버거워졌다. 동생과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나만의 공간’이라는 문제에서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게 내가 기숙사가 있는 학교를 지망한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당시 우리 집과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사실 기숙사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친구들이 그랬다.


“너는 기숙사 왜 다녀?”

“아, 나 공부에 집중하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는 공간에서 공부가 쉽게 될 리 없으니까. 그때부터 3년 동안 네 명이서 한 방에서 기숙 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copyright. pixabay


방 안에는 2개의 2층 침대와 캐비넷만 자리해 있었고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좁은 방에서 4명이 함께 지낸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설렜기 때문이다. 2층 침대이긴 하지만 오로지 나만의 매트리스에, 나 혼자 누워 잘 수 있다는 것이 해방처럼 느껴졌다. 집에서는 늘 이불을 깔고 동생과 나란히 누워 함께 잠들었기 때문이다.


3년 동안 주중에는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즐겁게 생화하고, 주말에만 집에 가서 가족들과 보내는 일상을 반복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 때 내가 기숙사에 들어간 것이 부모님께도, 동생에게도 반가운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러던 우리 가족도 드디어 부모님 명의의 집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내가 대학교 2학년일 때였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생애최초' 주택 구입이었다. 그간 많은 돈을 모아서는 아니였다. 그저 어느 정도 빚을 갚은 상황이었고 추가로 대출을 내서 작은 아파트에는 들어갈 여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 집에 꽤 높은 비율로 대출을 받아 힘겹게 들어갔다. 브랜드 있는 아파트도, 넓은 평형도, 좋은 입지도 아니었지만 당시 우리 가족에게는 드디어 이사를 가지 않고 진득하게 엉덩이 붙여 살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새로 집을 보러 갔을 때 엄마가 아이처럼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작긴 하지만 방도 3개여서 부모님이 쓰실 방과 나와 동생 방이 각각 생기기도 했다. 그 전까지는 침대 없이 와식 생활을 하다가 처음 ‘내 침대’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을 때,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잠을 잘 때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을 수 있다니!


4명이 앉기엔 좀 좁았지만 거실에는 나무도 된 식탁도 하나 두고, 내 방에는 책상과 화장대를 뒀다. 뭔가 방이 방 같고 집이 집 같은 구색을 갖추게 되어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고,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하나 둘 친구들을 초대해 커피와 간식을 대접했었다. 소박하게 꾸며진 집안 곳곳을 뿌듯하게 소개하면서.




그렇게 ‘내 집’은 아니지만 ‘부모님 집’이 생긴 지 7년이 지났다. 아직도 부모님은 그 집에 사신다. 낮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고 조금만 보일러를 틀어도 금세 따뜻해지는 작고 소중한 그 집에.


나는 딱 1년 전 이맘 때, 본가에서 도보 20분 거리에 위치한 오피스텔 방을 얻어 나왔다. 앞으로 써 내려갈 글은 (임대든 자가든 간에) 누구나 가지고 있을 ‘집’에 대한 오래 묵은 나의 선망과 그 선망을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던 나의 ‘온-고잉’ 독립 이야기다.


이전 02화 03. 나도 혼자 있고 싶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