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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담 Jan 28. 2024

03. 나도 혼자 있고 싶다

copyright. pixabay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내 방이 생겼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엿한 성인이 될 때까지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어주지 못한 게 미안하셨던 모양인지, 부모님은 내 방에만 새 화장대와 슈퍼 싱글 사이즈의 침대를 넣어주셨고, 책장이 있는 번듯한 새 책상도 사주셨다.


침대, 화장대, 책상으로 '내 방 꾸미기 미션 쓰리 스텝!'을 클리어한 기분이었다. 그 방에서 자고, 화장하고, 공부하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서 음악을 틀어 듣기도 하고, 가로로 기다란 탁상용 스탠드를 사서 밤에는 스탠드만 켜두고 무언갈 하는 것은 하루 중 소소한 기쁨이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지만 내 방에만 침대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 방이 사실은 안방 격으로 가장 큰 방이라는 사실은 결국 내 방이 내 방이 아니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단골 손님 1. 동생이 매일 들락거렸다. 내 동생 방은 복도 쪽에 위치한 작은 방이라 가족 공용 옷장과 책상, 컴퓨터밖에 놓을 수가 없었다. 동생은 한창 컴퓨터로 게임을 하다가 편하게 누워 핸드폰을 하고 싶어지면 내 침대를 찾았다.


단골 손님 2.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가장 많이 침대를 이용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고단한 하루가 끝나면 엄마는 내 침대로 다이빙해서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거나 나와 수다를 떨곤 했다.


어떤 때는 나와 동생, 엄마 세 명이 나란히 누워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불만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 내 방이 가장 좋다는 사실에 대한 일종의 빚진(?) 마음으로 내 방이 가족들의 공용 쉼터가 되어가는 과정에 나는 금세 적응했다.






진짜 문제는 엄마가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엄마가 퇴원하고 나서도 허리 때문에 침대 생활을 필수로 해야했던 것이다. 땅바닥에 눕거나 일어날 때 허리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침대에서, 그것도 가능한 높은 침대에서 생활해야 했다.


자연스레 내 방은 모녀의 방이 되었다. 내 방이 그닥 나만의 방이지도 않았던 이전에도, 그래도 밤이 되면 모두가 자기가 잘 곳으로 자러 간다는 사실은 남아있었다. 침대에서 핸드폰을 하든, 내 책상에 술상을 차려 먹든 밤 열한 시, 열두 시가 되고 내가 슬슬 잘 준비를 시작하면 하나둘씩 본인의 이부자리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럼 나는 그때부터 핸드폰을 하거나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나만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 시간이 내게 참 중요했구나, 아니, 필수적이었구나 느낀 것은 그 시간들이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들로 바뀌게 되고 난 이후부터다. (오해 말자. 나는 엄마와 무진장 친하다.)


우선, 엄마 짐을 모조리 내 방으로 옮겼다. 당시 우리 엄마가 허리 치료한다고 사용했던 초음파 치료 기계가 있었는데, 이 기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서류 가방 사이즈였다. 그리고 그 기계를 사용하려면 전원을 연결할 콘센트도 있어야 하고 젤과 수건 등도 필요했다. 그 모든 세팅은 널찍한 공간과 콘센트를 모두 갖춘 내 책상 위에서 이뤄졌다.


내 방에 누군가 손님으로 머무르는가, 동등한 주인으로 머무르는가는 생각보다 그 차이가 엄청 컸다. 침대도 같이 써야 하고 수면 패턴도 맞춰야 한다. 초음파 치료도 아침 저녁으로 해야 하는데 한번 하는 데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이 걸려서 내 책상은 그 초음파 기기들이 기본값으로 자리 잡고 있고, 내가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할 때만 임시로 잠깐 물건들을 치워놓고 사용하는 공간이 되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그때부터 주말이 되면 밖으로 많이 나다녔던 것 같다. 점심 때쯤 책과 노트북, 필기도구를 챙겨서 카페로 곧장 향한다. 몇 시간이고 할 일을 하고 아이쇼핑도 하다가 저녁 먹을 때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주말이 루틴이 되었다.


그런데 주말에 몸을 일으키기도 힘든 직장인들은 공감할 것이다. 카페로 가는 것 자체도 큰 의지력을 요하는 일이라 어쩌다 나가지 못하는 날들이 종종 있다.


그런 날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거나 책상에 앉아 다른 할 일을 하며 시간을 죽였던 것 같다. 그래, 말 그대로 '시간을 죽였'다. 모두가 출근이나 등교를 해서 나 혼자 집에 있을 수 있는 시간만을 기다리며 그렇지 못한 시간은 그저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그때는 몰랐다.


그게 내 당연한 주말 루틴이었다. 그러다 월요일이 다가오는 일요일 저녁이 되면 마음에 찝찝함과 불안감이 스멀스멀 차오르곤 했다. 직장인 누구나 겪는 월요병의 전조인 줄 알았는데 웬걸, 독립을 하고 나니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이제는 어디론가 훌쩍 혼자 떠나 시간을 보내고 오는 일도 잘 없고, 시간을 알차게 쓰지 못한 것 같아 다가오는 한 주의 시작이 꺼려지지도 않는다.





copyright. yes24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이렇게 말한다. 연간 500 파운드의 안정적인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다면 공동의 거실이 아닌 바로 그 방 안에서 자신의 창작 욕구를 실현시킬 수 있을 거라고.


바로 그 방을 갖기 위해 나는 독립했다.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부모님 집에 살면서 돈 모으면 되는데 독립을 왜 하냐.'


맞다, 맞다. 집 나가면 고생..까지는 아니지만 힘든 것도 맞고, 같이 살 때보다 돈이 더 나가는 것도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공간'이 절실히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면 단언컨대, 나가라고 적극적으로 등 떠밀고 싶다. 자기만의 방을 찾으라고, 물론 힘들고 쪼들리겠지만 그 힘듦과 쪼들림을 상쇄할 만큼의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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