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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담 Jan 21. 2024

01. '우리 집' 마련 분투기

어렸을 때 나에게 집이란 ‘내 것이 아닌 것’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단 한번도 부모님 명의였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다 자라서 대학교에 갈 때까지 우리 가족은 주택을 구입하지 않고 남의 집을 빌려 살아 왔다.


아버지가 하는 사업이 몇 번 망하고 엄마는 맞벌이로 생활비를 벌며 나와 내 동생을 키워내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여윳돈이랄 것을 모을 형편이 안 됐다. 주택 마련은 고사하고 저축도 쉽지 않으니 우리는 주로 월세를 주고 나라에서 운영하는 임대 주택에 들어가 살거나 조금 떨어진 변두리의 다세대주택에 들어가 살거나 했다.


그런데 월세나 전세 모두 계약 기간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라 계약 기간이 다가오면 부모님은 또 다시 이사 걱정에 머리를 싸매야 했다. 어쩌다 계약을 연장할 수 있으면 운이 좋다 생각하며 계속 그 집에 눌러 살았고  거주지에 대한 고민은 잊고 살 만하면 우리 가족을 찾아오는 불청객이었다.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차라리 찢어지게 가난하기라도 했으면 그나마 한 몸 누일 공간이 있음에 감사하며 살았을까? 적당히 빈하고 적당히 살만한 유년기였다 보니 내가 사는 집이 변변치 못하고 또래 친구들이 살고 있는 ‘브랜드 아파트’가 아니라는 사실은, 비 올 때만 땅 위로 올라오는 지렁이처럼 마음 한 구석 내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태로 웅크리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지, 아주 어릴 때는 보편적인 집의 형태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평형에 대해서도, 방의 개수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기준이라는 게 뭔지 알지 못했다.


우리 가족이 옮겨 다닌 집은 대부분 안방 겸 거실이 하나, 방이 하나인 형태였다. 부모님은 거실을 쓰셨고 나는 세 살 터울 동생과 작은 방을 썼다. 어린 시절에는 그래서 그 방에서 함께 엎치락뒤치락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왔다. 싸우기도 하고 혼내기도 하며, 부모님이 일 때문에 집에 안 계실 때는 서로가 절친이 되어주며 말이다.


상황이 이래서 다른 친구들이 집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언뜻 언뜻 눈치로는 알았지만 어렸기 때문에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닌 채 내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어린이는 순수하기 때문에 악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여름이었던 어느 날, 내 생일을 맞아 반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학교 근처 롯데리아 2층에서 생일 파티를 하며 학용품을 선물로 주고 받는 것이 유행이었다. 나도 내 생일 파티를 하며 롯데리아에서 식사를 마치고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왔다. 친한 친구, 안 친한 친구, 남자애, 여자애 모두 섞여 있었다.


집에 가서 무얼 했는지는 10년도 더 지난 시점이라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한 남자애가 흘리듯 한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야, 걔 방이 우리 집 화장실만 해!"

그때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살면서 우리 집이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 그러고 점차 나이가 들고 ‘일반적인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알게 됐고 그 보편성에 근거해 무심히 내뱉는 말이 그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쉽게 상처로 남는지도 경험했다. 그 경험들로 인해 남들보다 ‘집’이라는 것에 좀 더 집착하게 된 것도 같다.




집만한 필수재가 또 어디 있으랴. 집 없는 사람이 없고 집이 안 보이는 곳도 없으니, 돌이켜보면 많은 순간 일상적으로 위축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의식하지도 못 했던 형태로.


이렇듯 어렸을 때 삶으로 체득한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아 아직도 남모를 자격지심과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 이십대 후반에 다다른 지금에서야 조금씩 집을 내가 사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을 키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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