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재 Nov 21. 2019

어서 와. 뉴욕은 오랜만이지?

2018. 10. 22. 첫째 날

 친구 중에 누가 그랬다. 뉴욕은 사실 'New 욕'이라고. 매일같이 새로운 욕이 튀어나오게 하는 곳이라는 말이다. 아니, 어디 뉴욕뿐이랴. 하루키 선생님도 여행이란 근본적으로 피곤한 것이라고 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결론은, 첫날부터 개고생 했다 이 말이다.


 입국심사가 길어지는 바람에 시간을 많이 허비해서 가뜩이나 초조해 죽겠는데, 짐 찾는 곳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가장 큰 가방 하나가 도무지 나오질 않았다. 결국 텅 빈 컨베이어 벨트가 황망하게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고, 짐과 사람이 모두 빠지고 나니 저쪽 구석에 세 발로 기우뚱하게 서 있는 나의 캐리어가 보였다. 바퀴가 하나 부러진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그 무엇도 택하고 싶지 않은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1. 한쪽 바퀴가 부러진 캐리어를 힘겹게 끌고 다니거나,

 2. 항공사에서 임시로 제공하는 헌 캐리어에 짐을 옮겨서 갖고 다니거나.


 조금 찝찝하긴 해도  여행 하는 동안 편하게 다니고 싶어서 후자를 택하고 기다렸는데, 한참 뒤에 미안한 표정으로 나타난 항공사 직원은 하필 대형 캐리어가 없어서 중형 캐리어  개와 소형 캐리어  ,   개의 캐리어에 짐을 나눠 담아야 한다고 했다. 진짜 첫판부터 장난질이구먼. 9 전이나 지금이나 역시 뉴욕이란 녀석은 보통이 아니다.


 결국, 남자 승무원이 보는 앞에서 짐을  풀어헤치고 허름한  가방  개에 열심히 소지품을 옮겨 담은   닫히는 지퍼를 엉덩이로 간신히 눌러 잠그고 나서야  찾는 곳을 빠져나올  있었다. (도와주려는 선한 의도를 가진 분이었지만 외간 남자 앞에서 속옷 보따리까지  꺼내 보여주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  모든 상황 속에서 분노와 번뇌에 휩싸여 결정장애를 일으키는 동안 아빠는 바닥에 앉아서 <맥베스> 읽고 계셨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 기반의 뮤지컬 <Sleep No More> 감상을 대비해서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바쁜 딸을 위해 맥베스 요약본을 ‘출력  제본해서 갖고 왔다. 아빠는  이렇다.  누구보다도 기본에 충실하고,  기본도 채워주신다.



 양손으로 캐리어를 바동바동 끌고 나오면서 출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청소복을 입은 공항 직원이 싱글벙글 웃으며 나가는 방향은 저쪽이라고 크게 소리쳤다. 아, 내가 뉴욕에 왔구나. 유쾌하고 친절하지만 잔인하면서도 외로운 도시 뉴욕에 다시 왔다. 아빠랑.


 소문으로만 듣던 '우버'라는 것을 처음으로 불러봤다. 앱을 켜서 목적지의 주소를 적고 호출 버튼을 누르니 미리 정한 장소로 검은색 승용차가 귀신같이 나타났다. 예전에는 어디로 가는지 서로 확인하느라 탑승    동안 입씨름을 벌이곤 했는데 세상  좋아졌다고, 최신 문물에 감탄하는 동안 택시는 익숙한 빌딩 숲을 향해 달렸다.  멀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밖의 이름 모를 높은 건물들이 보이는데, 감회가 새롭다.


 사진을 부리나케   찍어 엄마와 남편에게 보내고 인스타에도 올려 생존 신고를 마쳤다. 다시 창밖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말로는 형용되지 않을 만큼의 감정과 기억이 밀려온다.  옛날 느꼈던 설렘, 기대감, 열정, 환희, 슬픔, 애국심, 분노, 외로움, 막막함, 뿌듯함..  인생 가장 찬란했던 20대의 청춘을 연료 삼아 치열하게 몸과 마음을 불살랐던 곳이다.


 숙소는 만족스러웠다. 아니지. 만족스럽지 않으면 억울해서   잔다. 핼러윈이 떡하니  가을 성수기, 맨해튼의 숙박비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1박에 최소 35 원은 줘야 ‘호텔 붙은 곳에서   는데,  크기가 성인  명이 비좁게 어깨를 부딪치고 다니면서  침대를 써야 하는 수준이다. 그런 방도 10박이면 350 원이고 18박을 잡으면 630 원이 되어버리니, 아무리 칠순의 아빠를 모시고 하는 여행이라지만 차마  일정 동안 지낼 숙소를 호텔로   없어 첫째 주만 호텔에서 자기로 했다. 예산은 정해져 있고, 깨어있는 동안에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으니까.


 여하튼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묵을 호텔은 Hotel Metro인데, 한인 타운이 바로 옆인 데다가 N, Q, R, W Train B, D, F, M Train 지나는 34th Street-Herald Square  바로 앞에 있어 입지적으로 훌륭했고 투숙객들의 평점도 좋았다.  호텔을 찾기 위해 검색 페이지를 처음부터 끝까지(자그마치 1부터 67까지!) 하나하나 뒤졌다는 사실을 아빠는 알랑가 몰라.  침대에서 잠을 자야 하는 것에 대해 서로가 학을 떼며 몹시 꺼렸지만,  앞에 장사 없으므로 결국 참기로 했다. 아마  인생에서 아빠랑  침대를 쓰는 마지막 경험이   같다.


Hotel Metro


 공항에서 오랜 시간 지체한 탓에 모든 계획은 틀어졌고 뜨끈한 물에 번갈아 씻고 나오니 어느새 창밖이 어두워져 버렸지만, 이대로 그냥 잠들긴 아쉬워서 근처를 산책하고 맛있는 저녁도 먹자며 의기투합하여 밖으로 나섰다.


 다시 찾은 미국 땅에 콜럼버스만큼이나 비장하게 첫발을 내딛고선 대형 간판과 조명으로 무장한 Macy’s 백화점을 바라보며 아빠에게 첫인상을 말씀해 보시라 하니, 서울의 명동 은 느낌이 생각보다 소박해 보이신단다. 소박하다니!? 맨해튼이 소박해 보인다고요? 역시 보통이 아니시군. 하긴, 나도 처음 뉴욕 왔을 적에 길거리는 더럽기 짝이 없고 건물은  무너질 것처럼 모두 심하게 낡아 빠졌다고 생각했었지. 그래도 소박하진 않지 않나? 어떤 뜻인지 다시 여쭈니 옷차림을 말씀하신 거란다. 거무튀튀한 천으로 대충 몸을 두른 듯한 거리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수수해 보인다고. 그러고 보니  그래 보인다. 오히려 내가 사대주의에 젖어 뉴욕의 모든 것을 특별하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에  기념으로 위스키를   잔만 마시고 싶다는 아빠의 요청 사항을 받아들여 근처 Liquor shop 가서 가장 작은 용량의 잭다니엘을   샀다.  후에 타임스퀘어로 가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전광판들로 아빠  놀라게  드리고 불빛에 파묻혀 넋을 잃고 걷다가, Luke’s Lobster에서 랍스터 롤에 맥주  병씩 홀짝이며 완벽한 하루를 마무리했어야 하는데!


 맨해튼 지리와 대중교통에 즉시 적응하지 못했던  때문에 자그마치 2시간 동안이나 헤매면서 지치고 굶주린 아빠를 질질 끌고 다니다가, 숙소  초당골에서 북창동 순두부와 카스  병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고 말았다. 이게 아닌데! 죄송해라! 나만 믿고 오셨는데! 내가 완전한 현지인이자 뉴요커라고 생각하셨을 텐데! 아주 어렸을 , 아빠가 잠시라도 손을 놓고 길을 헤매는 순간 맹비난을 하며 온갖 짜증의 화살을 퍼붓던  모습이 문득 떠올라서 민망함에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죄송해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기억이 하나도 안 나지? 저 이제 뉴요커 아닌가 봐요. 세월이 너무 흘렀나 봐. 어떡해 진짜. 속상해 죽겠네. 이게 아닌데."

"괜찮다. 잘하려고 한 건데, 뭐가 미안하냐. 속상해하지 마라."


심쿵.


 아빠는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이게 바로 어버이의 사랑인 걸까? 세상이 나에게 아빠만큼만 관대하면  좋을 텐데. 잊고 살았던 내리사랑이 갑자기  치고 들어왔던  순간을 잊지 못할  같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현지인 코스프레하면서 자신만만하게 왔는데 지하철 표를 파는 곳도, 버스를 타는 법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게다가 변수는 또 왜 이리 많은지. 기대 반, 설렘 반, 걱정은 산더미다.

이전 01화 칠순의 아빠와 나는 간다. 애증의 뉴욕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