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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Nov 16. 2019

칠순의 아빠와 나는 간다. 애증의 뉴욕으로

18박 19일 동안, 아빠와 단둘이 뉴욕 자유 여행을 가기까지

 나는 뉴욕을 싫어했다.

 

 짧은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사무치게 외로웠기 때문일까? 뉴욕 여행을 간다고 들뜬 사람을 볼 때마다, TV 속 타임스퀘어가 화려한 자태를 뽐낼 때마다 괜스레 기분이 울적해져서 슬쩍 자리를 피하곤 했다. 빛을 잃은 전구처럼 까맣게 몸과 마음이 타들어 간 채, 졸업장을 움켜쥐자마자 도망치듯 빠져나와 조국의 품으로 안겼던 그 당시 나의 선택이 옳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힘들었던 기억만 떠오르게 하는 그 도시를 다시 찾을 일은 영영 없을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9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나니 그토록 증오했던 뉴욕이 어느샌가 적당히 아름답게 미화되어 있었다. 그 어떤 지옥을 경험해도 결국에는 좋은 기억만 남게 된다더니, 인간의 생존 본능을 저격한 그 말이 참말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말이 갑자기 튀어나왔나 보다. 아빠의 칠순 생신 잔치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의논하다가, 엄마가 무심코 던진 '뉴욕 가는 거 어때? 뻔한 잔치 하지 말고.'라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 'YES'를 해 버렸다.

 

 괜찮다. 이번에는 뉴욕이 날 잡아먹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떠나는 여행길은 그 전처럼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이 우주, 은하계 너머를 통틀어서 가장 든든한 사람. 키는 160cm밖에 안 되지만 토르보다도 센 사람. 그 어떤 위험한 상황에 닥쳐도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아빠, 우리 아빠.

어느새 칠순이 되어버린 우리 아빠.

나랑 눈코 입이 닮은 내 아빠.


 평생을 대작 한점 남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온 아빠는, 일흔 하나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작업실에 나가 먹을 갈며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쓴다.


 아빠는 어려운 시절에 태어났다. 6.25 전쟁 때는 개성의 번듯한 집을 뒤로한 채 할머니 등에 업혀 3.8선을 넘었고, 중학생 때부터 물지게를 지며 가장의 짐도 함께 짊어지기 시작했다. 종이와 물감을 살 돈이 없어 폐지 위에 그림을 그리면서 화가의 꿈을 키웠다. 미대를 가고 싶었지만, 미술 학원에 등록할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학원비를 내지 않는 대신, 밤새 연탄을 갈았다. 차가운 화실 바닥에 화판을 깔고 쪽잠을 자며 어깨너머로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목숨 걸고 월남전에 다녀왔고 그 유명한 홍대 미대를 4년 장학생으로 졸업했지만,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교사로 일하면서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다.


 그런 아빠가 평생 모은 돈을 탈탈 털어 감히 나만 뉴욕에서 비싼 공부를 하고 왔다는 사실이 늘 내 마음을 불편케 했다. 이 여행은 나만이 간직한 빚을 털어낼 좋은 기회임과 동시에, 예술적인 영감을 마구 투하하여 아빠의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대작 탄생의 길로 안내해 드릴 특급 열차 탑승권과도 같은 절호의 찬스였다.


 나만 결심하면 아빠는 당연히 버선발로 따라나설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아빠는 열세 시간 동안 금연할 자신이 없다며 내가 발권한 효녀 관광 티켓을 단번에 반품했다. 아빠랑 뉴욕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비행기에 앉히는 것이 더 힘들 줄이야. 나는 물론이고 엄마와 남편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아빠는 평생 끊지 못하던 담배를 끊었다.


 담배 때문에 한 번도 미국을 못 가봤는데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가봐야겠고, 평소에는 별로 친근하게 굴지도 않던 딸이 선뜻 개인 가이드를 자처하고, 얼굴 본 지 몇 년 안 된 사위까지 나서서 열심히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니 계속 거절하는 것도 체면이 안 서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담뱃대를 부러뜨리신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으니 나 때문이었다. 계속 나랑 같이 붙어 다닐 텐데 담배 냄새가 심하면 내가 너무 괴로울까 봐 그 어떤 때보다도 강한 의지를 갖고 노력하여 이룬 쾌거이며, 순전히 딸의 힘으로 이룬 세기의 업적이라고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금연으로 힘들어하는 아빠의 투정에 따뜻한  한마디 건네지 못한 못된 딸이었다. 외려 '나는 매일 새벽까지 여행 계획 짜느라 잠도  자고 개고생 중인데 아빠는 아무것도  하면서 그까짓 담배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냐며, 이렇게 모두가 불행할 거면  그만두는  낫겠다' 윽박을 지르며 여행을 무산시켜버릴 뻔한 불효녀였다.


 부모님의 사랑의 크기와 깊이를 내가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이번 여행으로 미약하게나마 그 사랑에 보답하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여행 준비는 물론 막상 가서도 상상 초월의 노동력을 쏟아붓느라 고통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와 뉴욕을 단둘이 가기로 한 결정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라는 것이다. 아빠랑 너무 친해져 버려서, 나는 벌써부터 아빠가 없는 세상이 두렵다.


아빠, 나 잘했죠?

정말 고마워요. 함께 떠나 줘서.


정 부녀 in 뉴욕
 2018.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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