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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May 30. 2020

조금 낯설 뿐이에요

2018. 11. 4. 열넷째 날

“아빠, 오늘 가는 동네는 조금 위험한 곳이에요. 할렘이라고 들어 보셨죠?"

"들어 봤지. 거기 막 총싸움하는 데 아니냐?"

"에이, 그건 진짜 오래전 얘기고.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그 정도는 아니에요. 옛날만큼 위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심하세요. 괜히 지나다니는 사람들 빤히 쳐다보지 마시고."

“알았다.”


 마침 늘이 일요일이라, 할렘 지역에 있는 교회에서 가스펠로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기로 했다. 성가대 합창이 웬만한 공연 뺨친다니 안 가 볼 수 없지. 가장 유명한 곳은 아비시니안 침례교회였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이 몰리면 출입을 통제한다는 후기가 종종 보였다. 아빠까지 모시고 가서 문전박대를 당할 수는 없기에 그리 크진 않지만 무난해 보이는 베델 가스펠 어셈블리 교회로 정했다.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드디어 116 St. 역에 도착. 조금은 긴장한 채로 내렸는데, 생각보다 동네 분위기가 괜찮았다. 그래도 워낙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껴 지내다가 유난히 까만 피부에 유독 하얀 눈동자를 지닌 사람들 틈에만 둘러싸여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때요?”

 “할렘이라고 해서 엄청 지저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동네가 세련되고 깨끗하네. 별로 안 위험해 보인다.”

 “그렇죠? 서울보다도 깨끗한 것 같은데요? 할렘이 많이 좋아지긴 했네.”


 게다가 오늘은 뉴욕 마라톤 대회가 있는 날이라서, 곳곳에 트랙이 설치된 데다가 경찰도 배치되어 있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안전한 공기를 느끼며 찾아간 교회 앞에는 갈색 체크무늬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형제님이 주보를 나눠주고 있었다.

 

 “불어 예배는 왼쪽으로 가시면 되고요, 영어 예배는 오른쪽으로 가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안내를 따라가니 이번에는 나이가 지긋한 자매님이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Welcome, God bless you.”

 “Thank you. 아빠, ‘갓 블레스 유’를 원어민한테 들으니까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지 않아요? 난 저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기분이 들어.”

"그래. 나도 갓 블레스 유다."


 관광객을 위한 좌석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온 두어 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서 양 손에 카메라를 쥐고 예배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연이어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와 앉았다. 꼬마 아가씨들은 밧줄 같은 양갈래 머리 끝에 달린 커다란 리본을 흔들면서 엄마 손을 붙잡고 들어왔다. 모두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말쑥하게 차려입은 듯했다.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 위에 떠있던 초시계가 0:00이 되자 예배가 시작되었다.



 고대했던 순간이다. 찬양단으로 보이는 무리가 들어오더니 탬버린을 치며 소울풀하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무대였다. 우리 앞에서 온몸으로 탬버린을 흔들며 찬양을 따라 부르던 빨간 정장 차림의 백발 할머니는 나보다도 에너지가 넘쳐 보이고 말이지. 중요한 것은, 그들의 무대는 관객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내게는 이러쿵저러쿵할 권리가 없다.

 

 아직 예배는 제대로 시작조차 안 했는데, 찬양 시간이 끝나자마자 볼 장 다 봤다는 식으로 여장을 챙겨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썩 보기 좋지 않더라. (아비시니안 교회에서 왜 문전박대를 감행했는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아빠와 나는 의리 빼면 시체인 정 씨 문중의 후손답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헌금으로 1달러면 충분하다는 나를 짐짓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며 10달러짜리 지폐를 넣는 아빠는 역시 대인배셔. 이번 주만 하는 건지, 매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작은 플라스틱 컵에 담긴 포도주스와 작은 전병 조각을 함께 나눠 먹는 성찬식에도 참여했으니 할 거 다 했다.

 

 무슨 내용인지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목사님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설교 말씀을 듣는데 뭔가 어색하다. 무엇 때문인가 했더니만, ‘He’로 지칭되는 ‘주님’이 어색하다. 어투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보는 성경책에는 ‘~가라사대, ~있으리라, ~하옵소서’ 등 오래전에나 썼을 법한 말투로 쓰인 문장들이 가득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성경도 있다) 그런데 한국어와는 달리 경어가 없는 영어로 표현되는 하나님은 God이자 He이며, 예수님 또한 Jesus 내지는 마찬가지로 He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성경에는 ‘주께서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라’로 쓰인 문장이 여기서는 ‘God said, let there be light.’로 표현된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일 수 있겠지만 서방의 교회가 한국 교회보다 개방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덜 묻어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언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설도 있던데. 역시 외국에 나오면 일상적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진짜라고 믿었던 것들이 그야말로 ‘믿음’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 있고, 내 마음을 지배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인간은 여행을 꿈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 실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갖고 싶어서.


 따스한 온기가 감돌던 교회 밖으로 나오니 노란 단풍잎과 대조되는 파란 하늘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떠셨어요? 할렘에서 드리는 가스펠 예배!?”

“깨끗해서 놀랐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저도요. 진짜 좋았어.”


 할렘까지 온 이상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오래전에 친구랑 와서 허겁지겁 먹어치웠던 그 음식, 바로 소울 푸드를 파는 ‘에이미 루스’다. 유명한 메뉴는 ‘와플 치킨’. 말 그대로 와플 위에 커다란 치킨이 툭 올려져 있다. 독특한 비주얼이지만 먹다 보면 달콤한 와플과 짭조름한 치킨의 궁합이 꽤 괜찮다. (그렇다. 포만감을 없애기로 유명한 단짠 단짠의 조합이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의외로 한 번도 못 먹어본 ‘맥 앤 치즈’에다가, 식당 종업원의 추천 메뉴인 정체불명의 야채 볶음을 시켰는데, 이게 바로 신의 한 수였다. 느끼할 때쯤 한 젓가락씩 집어먹으니 김치처럼 입안을 씻어주더라. 역시, 사람 사는 거 어디든지 다 비슷하다니까.



 만족스러웠던 할렘 소풍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 잠시 쉬다가, 바클레이 센터로 향했다. NBA 농구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나나 아빠나 평소에 농구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미국, 특히 뉴욕 하면 농구를 빼놓을 수 없지 않은가? 족히 2m쯤 되는 장신의 선수들이 손바닥만 한 망에 공을 집어넣기 위해 살을 부딪히며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아빠 인생에서 처음일뿐더러, 경기 중간중간에 있는 각종 이벤트도 볼만할 것이었다.


 “이건 못 들고 들어가요.”


 이럴 수가. 보온병에 따뜻한 미소 된장국을 담아 왔는데 문 앞에서 퇴짜를 맞았다. 맞다. 여기 미국이지. 어디든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가방검사는 물론이고 엑스레이 검사를 빼놓을 수 없다. 자유롭게 쏘다니다가도 총을 찬 양복 차림의 가드를 만나면 여기가 ‘총기 소지 가능 국가’이자 ‘테러 위험 지역’ 임을 되새기게 된다. 아깝지만 된장국은 아빠 뱃속이 아닌 하수구 속으로 몽땅 흘러 들어갔다. 드디어 경기장 안으로 진입. 어휴, 정신없어. 우리나라 잠실 구장보다 스무 배는 더 정신없다. 작은 피자 한 판과 맥주 한 캔을 사서 먹고 마시고 응원하며 경기를 감상하다 보니, 어라. 눈 깜짝할 새에 끝나버렸네.



“아빠가 농구는 관심 없다고 안 본다 그랬잖아. 막상 보니까 재밌죠?”

“재밌네. 미국 사람들은 일상 속 스트레스를 이런 식으로 푸나보다. 스포츠라는 게 일종의 합법적이고 건전한 전투거든."

"한국 가면 운동 경기 보러 다녀야겠다. 저도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이자 전투거든요."

"너무 스트레스받으면서 살지 마라. 수명 줄어든다."

"개복치 멘탈인 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노력합죠! 그건 그렇고, 오늘의 여행을 마친 소감은?"

"음, 그게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외국인들은 좀 꺼려졌었거든. 근데 오늘 보니까 그냥 다 똑같은 사람들인 것 같구나. 뉴욕에 조금 익숙해진 것도 같고."

"그러셨을 수도 있겠다. 아빠가 외국인을 볼 기회가 언제 또 있었겠어."


 단일 민족 국가인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평생 살다 보면 ‘인종’이라는 개념에 무감각해진다. 주변에 다 똑같이 생긴 한국인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떠나 보면 의외로 다양한 인종이 지구별에 모여 살고 있으며,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에 놀란다. 그중에서도 내가 속한 ‘동양인 그룹'은 서열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는 것도 처음에는 꽤나 큰 충격이었다. 그저 피자집에서 피자를 조용히 먹고 있었을 뿐인데, "망할 아시안이 기분 나쁘게 여기서 피자를 먹고 있네."라는 조롱을 들었다든지, 뺨으로 날아든 뜨끈한 물체가 사탕이었음을 인지하자마자 눈이 마주친 초등학생이 가운데 손가락과 혀를 내밀었다든지 하는 얘기는 한국인들끼리 주고받던 흔한 무용담이었다.


 왜 한낱 피부색으로 사람을 분류하고 서로를 배척할까? 다양한 견해가 있겠지만, 낯설기 때문이지 않을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다. 닮은 사람들끼리 모여 무리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다름’이 생각할 여지조차 없는 가장 쉬운 분류 조건이 되었겠지. 뭣이 중헌디? 아빠 말마따나, 그냥 다 똑같은 사람들인데.


 편을 가르는 본성은 바꿀 수 없을지언정,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지기를. 이 땅에 딱 오늘만큼의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랄 정도로 평온했던 하루가 끝이 났다.


 이제 3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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