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3. 열셋째 날
+덧.
언젠가 다시 뉴욕에 오게 된다면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3학년 때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수업하신 교수님이다. 그분의 가르침과 문장들은 아직도 내 삶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헤쳐나갈 힘을 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뉴욕에서 운영 중인 교수님의 회사에서 현장 실습 겸 수업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모두를 싣고 천천히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잠시 멈췄고, 한눈에 봐도 걸인으로 짐작되는 옷차림을 한 중년의 여인이 탑승했다.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교수님을 향해 거칠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전세 냈느냐, 사람이 너무 많이 타서 느려졌다 등의 근거 없는 비난이었다. 몇 마디 쏘아붙일 법도 하건만, 교수님은 예의 그 온화한 미소를 띤 얼굴로 잠자코 있다가 마침내 그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앞으로 인생을 살다 보면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겁니다. 그때마다 그들의 불행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지 마세요. 그것은 그들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저 조용히 지나가게 내버려 두세요. 기억하세요. 그들의 삶이 불행하다고 해서, 여러분의 삶까지 불행해질 필요는 없답니다."
뉴욕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후, 나는 교수님께 따로 만남을 청했다. 온갖 이유와 계획을 다 갖다 붙였지만, 사실상 도피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장황한 변명을 정성스레 듣고 난 뒤에 교수님이 해 주신 말씀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희재야, 내가 아는 너는 정말 훌륭한 학생이자 디자이너란다. 너는 마음먹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사람이야. 혹시라도 너의 선택이 의심스러울 때면, 나를 떠올리렴. 내가 너를 보증한다는 것을. 네가 해야 하는 일은 그저 너의 코끝을 따라가는 일뿐이야. 내가 너를 믿는 만큼, 너도 너 자신을 믿길 바란다. 너는 어디서든지 성공할 수 있고, 언제나 행복할 거야."
한국에 돌아온 뒤, 매년 1월 1일이 되면 아빠를 졸라 얻어낸 연하장을 교수님의 사무실로 보내드렸다. 그럴 때마다 교수님은 페이스북에 '편지 고마워요. 아름답네요. 잘 지내죠?' 등의 인사를 한글로 남겼다. 내가 만난 최고의 스승이자 멘토이며, 사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 교수님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분을 찾아갈 수 없었다. 사실은,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되어버렸다. 2014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서 교수님의 부고를 접하고선 한동안 멍해 있다가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분의 믿음에 보답할 수 있을 정도로 멋있는 사람이 되어서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싶었는데. 그러기도 전에 교수님은 너무 먼 곳으로 영영 떠나버렸다.
교수님이 한동안 로그인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해 둔 내 링크드인 프로필에 갖가지 '전문 보유 기술'을 추천했고, 확인도 안 하는 페이스북 게시물에 '좋아요'를 열심히 눌렀을 뿐만 아니라 '생일 축하한다'라는 댓글을 꾸준히 달아주었다는 사실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살면서 이런 스승님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설령 그런 행운이 내게 또 찾아오지 않더라도 괜찮다. 이미 만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