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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May 29. 2020

<번외편> 할렘의 추억

2018. 11. 4. 열넷째 날을 시작하기 전에

 지금이 1970년대였다면, 할렘 지역에는 감히 얼씬조차 못 했을 것이다. 달리는 승용차 문을 열고 도로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묻지 마 총격전은 물론이고, 자살 폭탄 테러도 벌어지던 곳이다. <아메리칸 갱스터>에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썩 와닿지 않으신다면, 이건 어떠신지. (10년 전에는 핫한 아이템이었던) 아이리버 MP3를 목에 걸고 밤길을 걷던 한국인에게 누가 와서 스윽 어깨동무를 하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자기 목으로 MP3를 옮겨 걸고는 유유히 사라졌다는 일화도 있다. 이건 ‘아는 오빠가 실제로 겪은 일’이라며 핏대를 세우던 친구의 입에서 직접 들었기에 믿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야흐로 2018년 말이 아니던가? 많은 이들의 노력과 하늘 위로 치솟은 맨해튼의 집값 덕분에(?) 할렘은 뉴욕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른 지 오래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할렘이 달라졌어요’와 같은 후기들을 무수히 찾아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할렘 투어를 할지 말지 망설였던 이유는 왕년에 몸소 겪은 두 개의 사건 덕분이다.


 첫 번째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그 이름도 찬란한 ‘유학생’ 신분으로 뉴욕에 처음 입성했을 때는 <Sex and the city>의 주인공 같은 미드타운 자취러가 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 정도 위치라면 쥐구멍만 한 방도 '최소' 2~300만 원의 월세를 자랑한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되었고, 점점 더 중심지와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거주지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무슨 배짱인지 허세인지 맨해튼 섬을 벗어나긴 싫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괜찮아 보이는 매물을 하나 발견했다. 콜롬비아 대학 근처, 125번가에 우뚝 서 있는 꽤 큼지막한 건물이었다. 진짜 위험하기로 소문난 곳은 반대편에 있는 '이스트 할렘'이고, 그 근방은 명문대 근처라서 안전한 편이라고 하니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뉴욕은 월세가 워낙 높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셰어 하우스'에서 산다. 하나의 주거를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다. 내가 알아본 방도 그랬다. 콜롬비아 대학을 다니는 한국인 남자 3명이 사는 방 2개짜리 집이었는데, 1명이 갑자기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바람에 그 사람을 대신하여 거실에서 살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부모님은 남자만 2명이 사는 집에, 게다가 문도 없는 거실에 커튼을 치고 여자 혼자 들어가서 산다고 하니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방도 크고 조건도 나쁘지 않았기에 수업이 끝난 후 야심 차게 지하철을 타고 윗동네로 향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커다란 아파트로, 뉴욕에서 흔치 않은 엘리베이터가 딸린 빌딩이었다. (미국의 아파트는 한국과는 달리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 주로 모여 사는 곳이라는  나중에 알았다)  상태도 나쁘지 않았고, 룸메이트가  분들도 친절해 보였다. 하지만 거리 곳곳에 흑인들만 모여 있는 모습이 생경해서 선뜻 함께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해가 져서 어두워진 골목길을 지나오는데 유난히 희고 검은 눈동자로 빤히 쳐다보던 시선들도 생각보다 부담스러웠다. 어찌 할지 고민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로비로 내려왔는데,  마이 . CNN 뉴스에서나 봤을 법한 장면이  앞에서 펼쳐졌다.  여자가  다리로 버티고 서서 경찰을 향해  손으로 맹렬하게 삿대질을 하며 뭐라 뭐라 소리치는데, 다른  손으로 부여잡은 코에서는 붉은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다. 경찰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했다.  모습을  눈으로 직접 목격한 이상  집에서  수는 없는 . 황급히 줄행랑을 치며 느꼈던 그때의 공포심은 머리털 나고 처음 접하는 두려운 감정이었다.

 

 두 번째 사건이다. 할렘에서 그 정도 당했으면 됐지, 지금은 사라진 그때의 젊은 패기는 나를 브롱크스로 이끌었다. (지금도 뉴욕 친구들은 ‘브롱크스’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부터 웃기 시작한다) 당시 그 집에 거주하던 사람은 30대 중반쯤 되는 여자로 기억한다. 문 앞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자 문틈 사이로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착착 착착 덜컥 착착 덜커덕 착착’. 여인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주변을 살피더니 조심스레 나를 맞이했다.

 

“예전에 누가 문을 따고 들어와서요. 불안해서 잠금장치를 몇 개 더 달았어요.”


 그제야 걸쇠 같은 것들이 족히 10개는 넘게 달린 대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광경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운데, 그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경고를 차분히 전했다.


“자기 전에 창문을 꼭 잠그고 주무세요. 밖에 설치된 소방용 계단을 타고 누가 올라올 수 있거든요. 창문에도 자물쇠 달아 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새벽 3시에 창문 밖에 쭈그리고 앉아서 눈을 희번덕거리며 잠든 내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는 외간 남자의 실루엣이 그려지는 바람에 몸서리가 쳐졌다. 학교에서 숙소까지 지하철로만 50분 넘게 걸려서 가뜩이나 망설여지던 차에 이건 뭐 ‘나는 전설이다’ 한국어판 찍을 일 있나. 여기도 탈락. 요즘에는 브롱크스도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라. 좋아진 만큼 월세도 많이 올랐다고.


 서론이 길었다. 10년 전이지만 직접 겪은 일들이 죄다 저런 식이다 보니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맘에 드는 투어도 없어서 그냥 접을까 하던 찰나, ‘소울 푸드’를 먹으러 주말 낮에 갔다가 별 탈 없이 살아 돌아온 기억이 퍼뜩 났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빠와 할렘에 가기로. 뭐, 다 오래전 얘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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