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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Jul 03. 2021

여행은 일상처럼, 일상은 여행처럼

2018. 11. 7. 열일곱째 날

 안 돼! 영원히 올 것 같지 않던 마지막 날 아침이 끝내 밝고야 말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끝에서 두 번째 날이지만, 내일은 눈뜨자마자 공항으로 가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러니 뉴욕의 공기를 아침부터 밤까지 실컷 들이마실 수 있는 날은 오늘로써 끝인 셈이다.


 다행히도 오랜만에 해가 나서 부시윅에 그래피티를 보러 가기로 했다. 부시윅이라니. 부시윅이 웬 말이야. 브롱스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8년 전에 집을 구하러 왔다가 살벌한 분위기에 쫄아서 발걸음을 돌렸던 곳이다. 그랬던 곳이 지금은 거리 예술의 성지로 불리며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발돋움했다나? 힙신령의 기운이 이곳으로 옮겨왔다더니, 사진으로 미리 살펴본 부시윅은 제법 멋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몸소 체험하는 나이가 되어버렸군. 왠지 서글퍼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빠, 그래피티가 뭔지는 아시죠?"

"당연하지. 벽에 뺑끼로 그림 그리는 거 아니냐."

"뺑끼..?"

"페인트 스프레이를 뺑끼라고 하지."

"네.. 그 '뺑끼' 그림으로 가득한 거리를 갈 거예요. 뉴욕 하면 또 그래피티가 유명하거든."

"그래피티는 내 취향이 아니긴 한데.."

"저를 믿고 일단 한번 가 보세요. 막상 가서 보면 또 다르니까."

"그래."


 모닝 부시윅 투어를 시작으로 덤보에서 그리니치 빌리지까지 걸어야 하는 '고난의 행군 데이'라서 잽싸게 우버를 불렀다. 본의 아니게 불효를 행하던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아빠의 일일 체력 게이지가 빤히 눈에 보인다.


시선이 닿는 족족 감탄사를 연발하며 찍은 사진이 이거 말고도 수십장


"이야, 멋진데? 담벼락에다가 예술 작품들을 그려놨네."


 이럴 줄 알았지. 아빠가 좋아할 줄 알았다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촬영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텅 빈 거리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촬영 각도를 잡는 아빠를 바라보면서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려 하는 바로 그때였다.


"헤이!"


 예? 누구..?


"카메라 줘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셔터 도어가 반쯤 열려 컴컴한 건물 안쪽에서 키가 190cm 정도 되어 보이는 아프리카계의 미국인이 손을 내밀며 다가왔다. 헐. 뭐지? 강도인가? 큰일 났네. 주변에 사람도 한 명도 없는데!


 10여 년 전, 자연스럽게 다가와서 어깨동무를 하더니만 목에 걸린 아이리버 MP3를 아무렇지 않게 걷어갔다던 친구의 친구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 사건이 브루클린에서 일어났지, 아마. 어쩌지? 도망칠까? 총 있으면 어떡해. 난 몰라. 어떡해.


"너희 둘, 같이 사진 찍어줄게."


 아이고, 죄송해라. 선량한 시민을 강도로 의심하다니.. 반성과 감사의 마음을 가득 담아 땡큐 베리 마치를 외치며 왼쪽 손목에 걸려 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그에게 건넸다.


"Smile!"


뒤에 이런 그래픽이 있었구나..


 친절한 동네 주민 덕분에 그래피티 앞에서 투 샷도 건지고, 힙스터 감성도 양껏 충전하고선 덤보로 향했다. 간단히 배를 채우고 난 뒤에는 브루클린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볼 작정이다. 영화 대부의 배경이자, 우리나라에서는 무한도전의 화보 촬영지로 유명해진 덤보의 포토 스팟에서 사진 한 장 찍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


 Taco Dumbo에서 아빠와 사이좋게 타코를 나눠 먹고 있자니 옛 추억이 떠오른다. 영상 제작에 흥미가 있던 나는 용감무쌍하게도 3학년 전공 수업 중 하나로 뮤직비디오 수업을 신청했다. (무시무시한 작업량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그리고 그때 수업을 맡은 교수님의 사무실이 바로 덤보에 있었다. 교수님은 괴짜였다. 브루클린 브리지가 이마 위로 떨어질 듯 가까운 잔디밭에 모두 모여서 온몸에 쿠킹호일을 붙이고 괴물 흉내를 내게 했다. 나한테만 '악당에게 쫓기는 사이버 나라의 공주 역할'을 별도로 시키는 바람에, 수업도 없는 날에 회색 원피스를 입고 사무실로 찾아가서 얼굴에 은 칠갑을 한 채로 요술봉을 흔들며 덤보의 뒷골목을 뛰어다녔다.


 그땐 그게 그렇게 이상한 짓인지도 모를 만큼 어리고 순수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려 보니 별 미친 짓이 따로 없었다는 생각도 들뿐더러, 무급으로 학생들을 개인 작업에 이용했던 교수님의 행각이 꽤 괘씸해서 덤보라는 장소에 대한 감정마저 안 좋아졌다. 하지만 추억 여행의 장점이 무엇인가. 별로인 기억 위에 좋은 기억을 덧칠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이제는 덤보를 떠올리면 화려한 색상의 에어비앤비 열쇠 목걸이를 한 아빠와 마주 앉아 낄낄거리던 내 모습이 그려질 것 같다.


사진 그만 찍고 이제 좀 먹자는 표정


 오늘 저녁에는 얼마 전에 만난 나탈리를 아빠와 함께 다시 만나기로 했다. 한 번도 스피키지 바(Speakeasy Bar)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고 해서 내심 기대 중이었다. 아빠는 즉석에서 한글 캘리그래피로 카드를 써주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붓 펜과 종이를 챙겼다.


"아빠, 시간이 좀 떠서요. 휘트니 뮤지엄이라고, 현대 미술관이 하나 있는데 거기 가실래요? 꽤 유명한 곳이에요. 나탈리랑 저녁에 만나기로 한 데 근처이기도 하고."

"좋지. 들어본 것 같은데. 휘트니 미술관."

"음~ 역시 천재시군요~! 아티스트 아빠랑 같이 여행 다니니까 진짜 좋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좀 같이 다닐걸."

"천재 남발 금지."


 다행히도 아빠 컨디션이 꽤 괜찮아서, 로어 맨해튼을 오른쪽 끝부터 왼쪽 끝까지 쭈욱 가로질러 구경하면서 걸어가기로 했다.



"아빠, 여기 예쁜 가게들 진짜 많다. 나 이쪽은 처음 와보는 것 같아. 생각보다 안 가본 곳이 많네."

"윈도 디스플레이를 다들 멋있게 꾸며놓았구나."

"그러니까. 그리고 여기 건물들이 다 예뻐서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이게 유럽식이지, 아마? 그나저나, 어디 보자.. 이쯤에서 내가 가려던 데가 나와야 하는데.. Bookmarc에서 친구들 선물을 사야 하거든요.. 아! 저기 있다! 응? 여기에 이 집도 있었네!?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레드 벨벳 컵케이크가 유명한 맛집이다. 뉴욕에서 살든, 잠시 머무르든, 꼭 한 번쯤은 반드시 들러봐야 한다는 유명한 곳이건만 나랑은 인연이 아니었는지 케이크는커녕 빵가루도 찍어 먹어 보질 못했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일수도 있고, 케이크 하나 때문에 몇 분씩 줄 서 있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건 운명이야. 이번엔 꼭 먹어보라는 하늘의 계시라고나 할까? 아빠, 잠깐만 여기 벤치에 좀 앉아 계세요. 내가 맛있는 케이크 사 올게."

"알았다."


 아직도 예전의 명성 그대로인지, 매장 안쪽부터 바깥쪽 입구까지 지그재그로 된 줄이 꽤 길게 늘어서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턱밑에서 열심히 조잘거리며 뭘 살지 고민하던 아이들 덕분에 레드 벨벳 컵케이크와 함께 바나나 푸딩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그대로 주문했다. 신난다, 신나. 지금 하나 먹고, 이따가 출출할 때 하나 또 먹어야지.


입맛을 다시는 사람들


 타지에서 갑자기 마주하니 놀랍고도 반가웠던 LIE SANGBONG 매장을 지나쳐서, 모노그램 패턴으로 도배한 루이뷔통 매장을 지난 그곳에 휘트니 뮤지엄이 있었다. 오호, 그 옛날 내가 즐겨 찾던 휘트니가 아니다. 매디슨 애비뉴 한복판에 웅크리고 있던 예전 건물은 거꾸로 된 계단 모양인 데다가, 사방으로 꽉 막힌 회색 벽에는 창문 네다섯 개가 손톱만 하게 나 있을 뿐이어서 마치 도심 속의 고인돌 같은 인상을 주었다. 2015년에 이전하면서 커다랗게 지은 새 건물은 강과 인접해 있을뿐더러 투명한 유리 통창이 여기저기 뚫려 있어 사뭇 색다른 느낌이다. 커다란 털코트를 벗어던지고 투명한 살갗을 드러낸 여인 같은 모습이랄까? 덩치는 좀 더 커졌고.


인터넷에서 가져온 휘트니 미술관의 과거와 현재 랍니다


"성인 1명, 노인 1명 주세요."

"그렇게 하실 바엔 돈 조금 더 주고 연간 멤버십에 가입하는 게 훨씬 이득이에요! 멤버십 가입하세요!"


어디서 약을 팔아. 안 속아.


"괜찮아요. 어차피 여행객이라서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더욱더 멤버십 가입을 추천해 드려요. 곧 앤디 워홀 전시회가 열릴 예정인데, 오늘 멤버들에게만 특별히 선 공개를 하거든요. 일반 관람객은 못 들어가요."


솔깃한데!?


"얼만데요?"

"성인 한 명이 25달러고, 65세 이상은 18달러니까 합하면 43달러인데, 연간 회원권은 50달러에 동반 1인 무료예요. 결론적으로는 7달러만 더 내시면 되는 거죠."

"괜찮네요! 지금 바로 가입할 수 있죠?"

"물론이죠. 잘 생각하셨어요.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요. 1년 이내에 뉴욕에 또 오실 일이 있을 수도 있죠. 뉴욕, 좋잖아요."


 본인을 Peter라고 소개한 유쾌한 젊은이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앤디 워홀의 전시회를 볼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우리를 포함한) 멤버십 회원에게만 공개한다니, 갑자기 특별한 손님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

"사정이 좀 있었어요. 들어가시죠! 앤디 워홀 작품 보러!"


앤디워홀 두두둥장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로 유명한 현대 미술의 거장, 앤디 워홀. 그에 대한 지식이 전무할 때도 그저 실크스크린이라는 인쇄 기법을 통해 회화를 양산한 수완 좋은 장사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으니, 썩 호감 가는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심지어 그와 관련된(정확히는 그의 주변 인물들을 다룬) 영화를 몇 편 보고 난 뒤부터는 그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의 곁에서 스러져간 바스키아이디 세즈윅을 향한 안타까움이 반영되어, 매우 박한 평가를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얕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얄팍한 감정일 터. 그의 삶 전체를 조망해 보는 특별전을, 그것도 그의 주 무대였던 뉴욕에서 볼 수 있다니 살짝 흥분됐다.


그림 열심히 그리셨던 앤디 선생님. 성실한 분이셨구나


"... 뭐야, 그림 잘 그리네?"

"그래. 나도 앤디의 드로잉이나 수채화는 실물로 처음 보는데, 데생력이 있구나."

"역시.. 아니 왜, 사람들은 추상화나 현대 미술 같은 거 보면 '이런 건 나도 그릴 수 있겠다'고들 하는데, 알고 보면 그런 거 그린 사람들 전부 다 데생 천재들이잖아요. 앤디 워홀도 화가였네. 화가 맞네."


아빠는 1등 사수 출신


 기대 이상으로 규모가 컸을 뿐만 아니라 구성도 알차고 큐레이션도 잘 되어 있어서, 못 보고 갔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뻔했다. 그곳엔 앤디 워홀의 인생이 펼쳐져 있었다. 시간의 흐름,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라 변화하는 작가 정신, 그리고 이를 투영하면서 계속 달라지는 작업의 양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그 유명한 '마릴린 먼로' 실크스크린 작품이 왜 탄생했는지, 앤디 워홀이 어찌하여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 되었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그의 작품과 명성도 그러했던 것이다.


 처음에 감탄하면서 보았던 데생력은 전혀 중요치 않았다. 그만큼 그리는 사람은 쎄고 쎘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기술적인 면에서는 훨씬 더 뛰어난 화가들이 부지기수였겠지.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것들을 넘어서는 그만의 관점과 철학이 있었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얼마 전에 갔던 구겐하임에서 만난 힐마 아프 클린트에 이어, 앤디 워홀이 그려놓은 세상도 만나고 나니 확실히 알겠다. 진정한 화가이자 예술가는 새로운 관념을 제시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구나. 잘 훈련된 손가락은 그저 거들 뿐이고.


 감히 비교가 될지 모르겠지만, 문득 생각이 나서 얘기하자면 직업이 디자이너인 나를 화나게 하는 말 중 하나는 바로 이거다. '저도 포토샵 배워서 디자이너나 할까 봐요.' 후.. 저기요. 창작하는 사람들은 손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머리로 일한다고요. 키노트 잘 쓰면 스티브 잡스 되냐! 나도 실크스크린 배워서 앤디 워홀이나 할 걸 그랬다! (급발진 죄송)


 미리 계획하고 간 게 아니었던 데다가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입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문 닫을 시간이 됐다. 아빠랑 나는 또다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왕에 온 거, 하나라도 더 봐야지! 가능하면 전부 다 보고 가야지! 하면서,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워서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거참, 칠순의 아버지 모시고 뉴욕에 와서 이렇게 자주 뜀박질을 하게 될 줄은 또 몰랐네.


 휘트니 뮤지엄 문지기랑 같이 문 닫으면서 나왔더니 벌써 바깥은 깜깜해졌고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때를 대비해서 준비한 게 있지. 대망의 매그놀리아 컵케이크 시식 시간 되시겠습니다. 허드슨강을 마주한 박물관 계단에 쪼그려 앉아서 아빠와 함께 레드 벨벳 컵케이크를 한 개씩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맛은 말해 뭐해. 맛있어 죽겠지. 유명한 건 다 이유가 있다니까. 하긴, 지금은 뭘 먹어도 맛있긴 하겠지만. 나탈리를 '파이브 가이즈'에서 만나기로 한 게 8시 30분이니까, 이제 식당에 가서 밥 한 끼 먹고 가면 되겠다. 근처에 맛집이 어딨나.. 아, 마침 나탈리한테 문자가 왔네.


'희재! 정말 미안해. 오늘 여차여차한 사정이 생겨서 도저히 못 갈 것 같아. 정말 정말 미안해.'


 이럴 수가.. 나야 이미 한 번 만났으니까 괜찮다 쳐도, 딸의 '외국인' 친구를 내심 기대했을 아빠를 생각하니 조금 안타깝다. 하지만 어쩌랴.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끼리 재밌게 노는 수밖에.


"아빠, 나탈리가 못 온다네요. 우리끼리 오붓하게 마지막 밤을 보내야겠어요."

"전통 부채에다가 한글로 캘리그래피를 써 주려고 했는데 아쉽네. 종일 들고 다녔는데."

"저도 아쉽긴 한데 어쩔 수 없죠, 뭐. 나중에 또 만날 기회가 있겠죠."


 좋은 레스토랑을 가기엔 이미 늦었고.. 어디 가지? 머리를 굴리다가 원래 나탈리와 만나기로 했던 장소였던  '파이브 가이즈'를 그대로 가기로 했다. 미국의 3대 버거집 중 하나라는데, 처음 들어본 데다가 가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혹시 알아? 분위기 봐서 아빠랑 둘이 '파이브 가이즈' 안에 숨겨져 있다는 스피키지 바에 갈 수도 있고 말이지. 같이 클럽도 갔었는데, 그까짓 바 쯤이야.


 핸드폰 배터리 수명이 다 되는 바람에, 무방비 상태(=네티즌들 사이에서 어떤 메뉴가 가장 핫한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상태)로 버벅거리면서 무난해 보이는 메뉴들을 간신히 주문했다. 햄버거를 우적 거리며 테이블에 앉아있자니, 너무 시끄러워서 아빠 목소리가 잘 안 들릴 지경이다.


"마지막 날 밤인데, 근사한 데서 마무리를 못 시켜드리는 것 같아 죄송스럽네."

"여기도 괜찮다. 미국의 분위기가 물씬 나서 좋구나."


 아, 따뜻해. 뭘 해도 괜찮다고 하는 아빠한테 중독돼서 두 번 다시 차디찬 사회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이 시대의 진정한 로맨티시스트


 그나저나 '파이브 가이즈'의 햄버거 맛이 어땠냐 하면, 햄버거에서는 햄버거 맛이 났고 감자튀김에서는 감자튀김 맛이 났다. 딱히 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찾아와서 먹을 정도는 아닌 평범한 맛. 무적 파워 블로거 군단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메뉴 선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여기서 오늘 밤을 끝낼 수는 없었다. 스피키지 바라도 들어가 봐야지. 하지만 숨겨진 입구를 찾아서 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대체 바는 어느 구멍으로 들어가는 건지 찾을 수가 없어서 포기하려던 바로 그때, 한눈에 봐도 엄청나게 차려입은 여자가 들어오더니 주문대가 아닌 가게 뒷문으로 향했다. '옳지! 바에 가는구나!' 이때다 싶어서 따라가 보니, 글쎄 뒷문 옆에 가려진 커튼 뒤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더랬다. 커튼 바로 뒤에는 문지기가 지키고 서서 신분증 검사에 통과한 사람들만 위로 올려 보내고 있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음.. 나 혼자 들어가기도 부담스러운 분위기다.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컴컴한 곳에서 나보다 최소 열 살 쯤은 어려 보이는 아해들이 쿵쿵거리는 비트에 맞춰 몸을 비틀어대고 있었다. 이런. 스피키지 바도 못 가겠네. 이대로 숙소에 돌아가자니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시끌벅적하고 (내 기준에) 그저 그런 햄버거집에서 대망의 뉴욕 여행을 종결했다간 평생 후회할 것 같다.


"아빠, 칵테일 한잔하고 들어가실래요?"

"내일 아침 일찍 공항에 가려면 그냥 들어가는 게 안 낫겠냐? 피곤할 것 같은데."

"내가 웬만하면 아빠 의견을 존중해 드리려고 하는데, 오늘은 마지막 날 밤이니까 내 맘대로 할래. 우리 좋은 데 가서 칵테일 딱 한 잔씩만 하고 가요. 대신, 이제부턴 택시 타고 다니시죠."

"그럼 그러든지."


 아빠의 승낙을 받기가 무섭게 재빨리 택시를 불러서 ACE Hotel로 향했다. 나탈리를 만났던 바로 그곳이다. 분위기도 좋았고 칵테일도 맛있었지만, 굳이 거길 또 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밝게 빛나던 네모 박스, '인생 네 컷' 스티커 사진기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수요일이라 그런가?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다. 소파 자리에 바로 앉을 수 있겠어요. 아빠는 뭐 드실래요?"

"너 먹고 싶은 걸로 2개 시켜라."


 헤어 나올 수 없는 아빠의 늪에 또 심쿵.


"그럼 아빤 마티니 드세요. 평소에 깔끔한 독주 좋아하시니까."

"그래."


맛이 좀 썼나..?


"이제 스티커 사진 찍자. 사실 여기에 이거 찍으러 왔어."

"사진은 종일 찍었는데 뭘 또 찍어?"

"핸드폰으로 찍는 거 말고, 스티커 사진이라니까. 딱 한 장밖에 없는 거. 요즘 유행이에요. 마지막이니까 추억 남겨야지."

"추억은 실컷 남긴 것 같은데.."


 '마지막'에 집착하는 딸내미는 귀찮은 듯, 어색한 듯 머뭇거리는 아빠의 팔짱을 꾸역꾸역 끼고선 스티커 사진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웃어! 아빠, 웃어! 지금 찍는 중이야!"

"어..?"


 에이, 5달러 날렸네.


"아빠, 내가 돈 넣는 순간 바로 시작이야. 조명 잘 받게 고개 들고, 웃어요! 웃어! 하나, 둘 셋 하면 지폐 넣는다! 하나, 둘, 셋!"

"김치~"

"다시, 둘, 셋!"

"치즈~"


 아빠 모자 때문에 얼굴이 가려져서 조금 어둡게 나오긴 했지만, 또 찍자 그러면 안 찍으실 게 뻔하니까 이쯤에서 스탑 하고 동영상 촬영해야지.


포토부스에 치얼스


"이제 여행 다 끝났어요. 마지막으로 소감 한 말씀하셔야지."

"거 마지막 기념행사 참 많네."

"자, 찍는다! 시~작!"

"어느새 3주 가까운 시간이 흘렀네요. (아빠는 동영상을 찍는다고 하면 갑자기 존댓말을 쓰신다. 유튜버처럼) 미국에서 많은 경험을 했는데 돌아간다니까 아쉽네요."

"오, 아쉬우세요?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여행이 완벽했나 보네요! 진짜 좋으셨나 보다! 이게 다 누구 덕분이죠?"

"훌륭한 딸, 효녀 희재 덕분이랍니다."

"그렇죠! 이제는 척하면 척이시네! 여행 내내 아빠를 세뇌한(?) 보람이 있네요!"


 이젠 정말 숙소로 돌아갈 시간. 마지막까지 아빠를 혹사했으니, 아까 햄버거집에서 약속한 대로 우버를 잡아탔다. 허드슨강을 건너서 동네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바로 그때..!


"저기, 기사님! 정말 죄송한데 강가에 있는 공원에 잠깐만 들렀다 갈 수 있을까요? 오늘이 아빠랑 뉴욕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인데, 사진 한 장만 찍고 싶어서요. 바쁘시면 그냥 가셔도 되고요!"

"들렀다 갈 수 있어요. 바로 옆이라서 별로 멀지도 않아요."

"감사합니다!"


 숙소가 위치한 롱아일랜드 시티에서 바라보는 맨해튼의 야경이 꽤 볼만하다는 현정 언니의 말이 갑자기 떠올라서, 염치 불고하고 우버 기사님께 경유지 추가를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하셨다. 기사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 말씀 전합니다.


"또 어딜 가냐?"

"마지막으로 맨해튼 야경을 배경으로 해서 기념사진 찍으려고요. 여기 되게 멋있대."

"너는 아까부터 계속 마지막 타령이냐."

"진짜 마지막이야. 이제 갈 데도 없어."


 차에서 내리자마자 셀카봉을 길게 빼면서 강가 쪽으로 내달렸다. 기사님이 오래 기다리시지 않도록,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라도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가버리시지 않도록.


"자, 진짜 마지막 사진! 하나, 둘, 셋!"


신난 딸과 마음이 불편한 아빠


"빨리 가자. 기사님 기다리신다."

"마지막으로 동영상 인터뷰 찍어야 하는데!"

"아까 찍었잖아. 이제 '마지막' 금지."


 남한테 폐 끼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서 인터뷰 영상은 찍지 못했다. 아, 아쉬워라. 이제 정말 끝이라고 생각하니 왜 이렇게 미련이 남는지 모르겠다. 1분, 1초, 지금, 이 순간의 냄새와 소음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다. 영화 속에서 좋아하는 장면을 자꾸 돌려보다가 그것도 모자라서 나중에는 0.5배속으로 보게 되는 것처럼, 최대한 천천히 시곗바늘이 움직였으면 좋겠다. 아니, 그냥 이대로 시간이 정지해 버렸으면.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아빠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열쇠를 돌리며 까만 덧문을 열었다. '마지막'에 집착하는 딸은 이 특색 없는 장면에도 카메라를 들이댄다. 이 문을 여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다.



"아빠, 아까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막상 내일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모든 순간이 소중해지는 거 있지?"

"원래 그렇단다.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함부로 대할 수가 없게 되지. 사실은 늘 곁에 있던 것들인데 말이다."


 아빠 말을 들으니, 그렇게 유난을 떨어 놓고선 갑자기 마지막 날이 뭐 별건가 싶다. 아빠는 언제나 곁에 있었고, 뉴욕은 늘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마지막이 뭐 별건가. 같이 또 오면 되지. 그러고 보니, 굳이 멀리까지 올 필요 있나 싶다. 한국에서건 어디서건 일상을 여행처럼 살면 되지. 아빠랑 전시회도 가고, 햄버거도 먹고, 인생 네 컷도 찍고, 칵테일도 마시고, 야경도 보고. 한국에서도 전부 다 할 수 있는 것들인데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해볼 생각도 안 했고.


 따지고 보면, 인생도 긴 여행 아닌가. 인제 와서 무심코 흘려보낸 세월이 섭섭해진다. 모든 순간을 꽉 움켜쥐고 신나게 살면 평범한 날도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바로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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