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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Aug 18. 2021

꿈에서 깰 시간

2018. 11. 8. 열여덟째 날

"어휴, 피곤해!"


 귓가에서 계속 울리는 알람 소리를 애써 외면하다가, 이러다 영영 못 일어나지 싶어 짧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반사적으로 창밖을 내다보니, 찬란한 햇살이 방안으로 켜켜이 쏟아져 들어왔다. 롱 아일랜드 시티에 도착한 이래로 해를 구경한 적이 없었는데, 왜 하필 오늘은 날씨가 좋고 난리야. 오늘, 한국 가는 날인데.


 아빠는 네모난 짐가방에 옷가지를 꾹꾹 눌러 담고 계셨다. 차림새를 보니 한참 전에 일어나신 듯했다.


"아빠, 아빠 짐 다 싸시고 나면 숙소 정리 좀 슬슬 해 주실래요? 아시다시피 제가 좀 오래 걸려서.. 이불이랑 식기류랑 뭐 그런 것들, 우리 올 때 있었던 모습 그대로 정리하고 나가자. 그래야 집주인이 후기를 좋게 남겨줄 것 같단 말이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

"아빠가 늘 말씀하셨잖아요.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그러긴 했지. 전투에 나가면 말이다. 적들이 흔적을 따라서 추적을.."

"저기, 말 끊어서 죄송한데요, 그 얘기는 한 이억 오천칠백이십오만 번 정도 들어서 다 외웠답니다. 비행기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서둘러야 돼. 부탁 좀 드릴게요!"


 에어비앤비 사진 속 그 모습 그대로 방을 정리하고, 쓰레기도 종류별로 분리수거하고 나니 어느새 나갈 시간이 됐다. 이제 뉴욕과는 정말로 안녕이다. 바라건대 영원히는 아니겠지만, 당분간 안녕.


 호스트에게 열쇠를 반납하기 위해서 체크아웃 메시지를 보낸 후 방문 밖으로 나왔다. 오! 익숙하지만 새로운 얼굴이 우리를 반긴다. '진짜' 호스트였던 Orestes Gonzalez다.


 이전 글에서 밝혔다시피, 이 숙소를 고르게 된 배경에는 호스트의 좋은 인상이 한몫했다. 게다가 에어비앤비 소개 글에 의하면, 그는 건축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사진작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 멋쟁이였다. 호감을 사기 위해 사전 채팅으로 나와 아빠의 직업과 여행의 배경을 말하자, 본인도 아티스트라며 우릴 반겼다. 잘하면 친해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내심 기대했건만, Orestes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전시회 일정으로 인해 집을 계속 비우다가 어젯밤이 되어서야 돌아온 것이다.


 그를 대신하여 집을 안내했던 Chris도 친절했지만 역시나 이 사람에게선 그를 뛰어넘는 친근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지막 인사라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아쉬운 마음을 서로 나누다가 그가 문득 정원에 나가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계속 비가 와서 그러지 못했다고 했더니, 가기 전에 한 바퀴 둘러보고 가라면서 우리를 바깥으로 안내했다.



"와, 여기 정말 아름답네요!"

"가꾸느라 힘들긴 했지만, 볼 때마다 보람 있어요. 아침 일찍 2층에서 정원을 내려다보며 커피 한잔할 때면, 기분이 참 좋아요."

"부럽네요. 정말 멋져요. 저도 이런 집과 정원을 갖고 싶다는 꿈이 방금 생겼어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요.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여기서 점심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됐군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그래도 돌아가기 전에 구경하고 갈 수 있으니 다행이에요. 고맙습니다."

"혹시, 잠깐 시간 되시나요?"

"조금 여유 있어요. 왜요?"

"여기 이 화초와 함께 초상 사진 프로젝트를 하고 있거든요. 괜찮으시다면, 당신들의 사진을 찍고 싶어요."


너무 좋은데!


"괜찮아요! 완전 괜찮아요! 사진 찍어 주세요!"

"잘됐네요. 자, 여기 이 잎사귀 안쪽에 자리를 잡고 서 주세요. 시선은 왼쪽을 바라봐 주시고요.. 하나, 둘, 셋! 좋아요. 다음으로 아버님은 이쪽에 서세요. 찍습니다!"


오오 작품 사진!


 아, 다 좋은데 이럴 줄 알았으면 얼굴에 뭐라도 좀 찍어 바르고 나올걸. 공항 가는 날은 연예인이 아닌 이상 태초의 모습 그대로 나오는 게 국룰 아닙니까? 저만 그런 거 아니죠?


 Orestes는 명함을 건네면서, 이메일을 먼저 보내주면 답신으로 방금 찍은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역시, 좋은 사람일 줄 알았다니까.


"아빠, 우리 그거 드리자. 아빠가 그린 부채."

"그럴까?"

"응. 우리 사진도 찍어줬잖아. 처음에 집 보여줬던 분이랑, 이분 것까지 해서 2개 드리자. 아빠는 한국에서 엄청 유명한 아티스트라고 하고."

"나 별로 안 유명한데."

"아유,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럼 그냥 아티스트라고 하세요. 내가 추임새 넣어줄게."


 이로써 뉴욕 드로잉 트립에서 만난 Ben Ponte 선생님께 하나, Natalie한테 하나, 여기서 2개. 아빠의 부채 4개가 뉴욕에서 팔랑거릴 것이다. 한국의 미를 솔솔 풍기면서. 사실, 시간이 되면 타임스퀘어에서 좌판을 펴고 한글 캘리그래피로 덕담 써주기 퍼포먼스 같은 것을 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자칫 잘못했다간 이상한 사람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거나 NYPD한테 잡혀서 철창신세를 질 수도 있겠다는 무시무시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져서 포기했다. 아쉽지만 이렇게나마 아빠의 작품세계를 전파하고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는 정말로 가야 할 시간이다. Orestes와 작별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서 어제 예약한 우버를 기다리고 섰자니, 지난 17일 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여행 첫날부터 아빠의 식습관과 화장실 타이머에 매우 당황했던 기억을 시작으로, MoMA에서 아빠를 국제 미아로 만들 뻔한 사건, 클럽에서 우아하게 스포츠 댄스를 추던 아빠의 실루엣, 실컷 놀고 나왔더니 비 오는 새벽 1시에 택시가 죽어라고 안 잡혀서 개고생 했던 기억, 나이아가라 폭포의 굉음 앞에서도 지지 않고 열심히 셔터를 누르던 아빠의 열정,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법한 귀신 분장으로 핼러윈 퍼레이드에서 인싸로 등극했던 날, 센트럴 파크에서 자전거 반납 시간에 쫓겨 양쪽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달려야만 했던 광란의 질주, 아마도 주민등록증 발급 이후 처음으로 아빠랑 함께 해본 뉴욕 미술관 데이트.. 하루가 일 년 같던 처음에 비해, 뒤로 갈수록 시간에 가속도라도 붙은 것처럼 매 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아쉽다. 진짜 재밌었는데. 아빠랑 다니는 거.


 아직 한국 가는 비행기에는 오르지도 않았으면서 벌써부터 여행의 추억을 곱씹는 동안, 양복을 쫙 빼입은 우버 드라이버가 집 앞에 도착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뉴욕의 마지막 풍경에 일일이 인사를 건네던 것도 잠시, 혹시나 비행기가 연착되지는 않았는지, 공항은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검색하다가 깜빡 잠이 들어 버렸다.


"도착했습니다."

"으힉! 아이고, 벌써 다 왔네. 감사합니다."



 모든 짐을 이고 지고, 애증의 캐리어 2개를 반납하기 위하여 아시아나 항공 탑승구 근처를 기웃거렸다.


"안녕하세요! 그때 캐리어 바퀴 망가지셨던 분, 맞죠?"


 아, 그날 바퀴 챙겨주셨던 그분이다.


"네! 맞아요!"


 한국에 돌아가서 제출해야 하는 각종 서류와 함께 바퀴가 한쪽 떨어져 나간 캐리어를 돌려받았다. 원래 캐리어로 짐을 옮겨 담고, 빌렸던 캐리어 2개를 깨끗이 비워서 반납하고, 모든 짐을 부치고 나니 이제야 한시름 놓인다. 마음이 편해지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배가 고프다. 이럴 줄 알고 준비한 게 있지. 사실 미리 준비한 건 아니고, 아까 냉장고 비우다가 우연히 발견한 거지만.


"아빠, 아침 못 드셔서 출출하시죠? 짠~"

"이게 뭐냐?"

"바나나 푸딩! 전에 산 건데 깜빡하고 안 먹었더라고. 여기, 요거트도 있어요."


 그렇다. 어제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에서 사놓고 잊어버린 그 푸딩이다. 쵸바니 요거트는 인터넷에서 유명하길래 하나 사 봤지만 먹을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요긴하게 잘 먹으니 좋다. 아빠는 밥때 거르시면 큰일 나니까.


 바나나 푸딩이 담긴 큰 통의 흰색 뚜껑을 들어 올렸다. 카스텔라처럼 묽고 푹신푹신해 보이는 크림이 꽉꽉 눌러 담겨 있다. 한 수저 크게 떠서 입에 넣었는데..!


"헐! 아빠! 완전 맛있다! 이거 한국에서도 파나? 못 본 것 같지? 이거 미쳤네. 이럴 줄 알았으면 몇 개 더 살걸. 어쨌든 최고다. 어때요?"

"음, 좀 달긴 한데 맛있네."


 푸딩이라 그래서 젤로 같은 걸 상상했건만, 웬걸. 빵이랑 크림이 바나나랑 함께 뒤엉켜 입속에서 왈츠를 추며 돌아다니는 것 같은 환상적인 케이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브레드 푸딩'이라는 종류의 음식이었다) 쵸바니 요거트도 마찬가지. 동네 슈퍼에서 파는 기성품에서 그리스 할머니가 갓 만든 것 같은 그릭 요거트 맛이 난다. 뭐가 이리도 꾸덕꾸덕하고 고소한 지. 모두 꼭 한번 드셔 보시기를. 작별의 슬픔도 잠시 잊게 하는 궁극의 맛입니다요.


맛이 느껴지실런지..


 비행기 좌석에 앉아 안전띠를 채우면서 한국어로 녹음된 안내 영상을 보니 여행이 진짜로 끝났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한 번의 식사와 한 개의 샌드위치를 야무지게 챙겨 먹고, 와칸다 포에버를 속으로 힘차게 외치면서 블랙 팬서를 완주했는데도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지루하고 피곤하지만, 비행기에서 보내는 이 시간은 또 이것대로 아쉽다. 여행의 마지막 여운을 있는 힘껏 느끼면서 뒹굴뒹굴하다가 깜빡 잠이 들어 버렸다. 약한 터뷸런스가 몸을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슬며시 눈을 뜨니, 아빠의 반짝이는 정수리가 어두운 비행기 안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뭐 하시나 봤더니, 뉴욕 일기를 쓰고 계셨다.


리스펙..

 

 이번 여행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아빠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잠깐 내 얘기를 하자면, 나는 (어설픈) 완벽주의자다. 좋게 말하면 이상이 높고 매사에 열정적이라서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 자신을 지나치게 힘들게 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내가 세우는 기준이 너무 높다는 것을 안 지도 얼마 안 됐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는 고민을 하곤 했는데, 한 가지 확실한 원인을 발견했다. 바로 훌륭한 아빠를 뒀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도 만만치 않다. 살면서 일탈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모범생 중의 모범생, 학생의 정석, 회사원의 본보기와도 같은 인생을 살아온 분이 또 엄마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자라면서 가치관과 인격을 형성해 나간다고 한다. 쟁쟁한 분들 밑에서 자랐으니 삶의 표준이 높아졌을 수밖에. 난 정말이지, 세상 모든 사람이 우리 부모님 같은 줄 알았다. 나도 '최소한' 부모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기준을 나도 모르게 잡아버렸고. 아, 그래서 힘들었구나.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내가 깬 줄도 모른 채 열심히 볼펜을 놀리는 아빠를 보니 어쩌면 운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은 책이나 다른 곳에서 간신히 찾는 롤모델을 지근거리에 두고 컸으니 말이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나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일 테다.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나는 나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아빠, 조명도 어두운데 집에 가서 쓰세요."

"지금 안 쓰면 잊어버려. 난 너처럼 기억력이 좋지 않단다."

"난 사진 보면서 쓸 거예요. 어떻게 하나하나 다 기억해."

"난 괜찮다. 걱정 말고 좀 더 자라."

"알겠어요, 그럼. 근데, 아빠. 아빠 때문에 내 인생이 조금 더 힘들어진 거, 아실랑가 모르겠네."

"뭔 소리냐?"

"아빠가 이렇게 천재적인 면모를 보이시니까, 제가 쫓아가기 힘들다 이 말이죠."

"음, 그랬구나. 거, 미안하게 됐다."

"어휴, 진짜 할 말 없게 하신다니까."


 마지막 기내식으로 커다란 스테이크를 흡입하고, 한 숨 더 자고 일어난 뒤에야 한국 땅에 착륙했다. 공항에는 늘 고맙고 사랑하는(절대로 여기까지 마중 나와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남편이 나와 있었다. 감격에 겨운 인사를 나누고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가 머리털나고 처음 보는 신기한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나오면서 우리를 환영했다. 뒷산에 떨어진 가을 낙엽을 주워서 만들었다고 했다. 아빠가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축하 포스터를 그려온 것에서 영감을 받으셨다나. 거하게 효녀 노릇 한 번 했더니, 엄마가 직접 만든 플래카드를 다 받아보네. 할 만하구먼. 효도라는 거.


엄청난 플래카드


 집 앞 고깃집에서 네 식구가 숯불을 가운데 놓고 둘러앉아 돼지갈비를 굽고 있으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 있었던 게 맞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지난 18일 동안 있었던 일들이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진다. 꼭 없었던 일 같기도 하고.


"아빠랑 다니는 여행은 어땠어? 처음 며칠 동안에는 나한테 하소연을 그렇게 하더니만, 갈수록 줄어들더라."

"여행? 엄청났지. 나중에 사진 보면서 천천히 말해줄게. 어? 근데 왜 국이 없어? 엄만 아직도 몰라? 아빠는 식사하실 때 뜨거운 물이랑 따끈한 국이 반드시 있어야 해. 저기요! 여기 뜨거운 물 한잔이랑 된장찌개 하나 주세요!"


2018. 10.22 ~ 11. 9. 아빠랑,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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