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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Feb 27. 2020

아빠 실종 사건

2018. 10. 25. 넷째 날 오전

 아침 햇살에 눈꺼풀을 간신히 걷어올리니 빨간 크로키 북에 열심히 일기를 쓰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한다면 하는 분이다. 여행 오기 전, 대대손손 물려주기 위해 아빠와 나의 위대한 여정을 기록물로 남길 계획이니 함께 일기를 면 좋겠다고 야심 차게 말씀드렸건만. 정작 나는 다음날의 일정을 짜기 바쁘다는 핑계로 간신히 몇 글자 끄적인 게 전부다. 오히려 자신 없다던 아빠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페이지를 채워나가는 중이다. 나에게 중간중간 어디를 갔는지 정확한 장소와 사람 이름을 물으시면서. 나도 분발해야지.


옥편 없이 읽기 어려운 아빠의 일기장

 

 동양화가인 아빠를 위해 현대 미술의 심장과도 같은 MoMA 가이드 투어를 준비했다. 나도 같이 가면 물론 좋겠지만, 1) 아빠라는 큰 수조에서 필사적으로 헤엄치는 거북이가 된 듯한 느낌이었기에 잠시 수면 위로 올라와 시간이 필요했고(숨 막혔다는 말) 2) 아빠보다 훨씬 얕은 미적 지식을 가진, 별 도움도 안 되는 나보다는 MoMA를 꿰뚫고 있는 전문가가 짧은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박물관을 안내하는 것이 더 나아 보였고 3) 둘 다 신청하기에는 비용이 다소 부담스러워서 아빠만 신청했다.


 내심 MoMA까지 혼자 찾아가시길 바랐지만 아직은 역부족인 것 같다. 늘 자신감에 넘치는 월남전 용사인 아빠가 글쎄 국제 미아가 되면 어쩌냐며 약속 장소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셨다. 여기 지하철은 복잡하고 어려우니 나중에도 시간 맞춰서 마중 나오라고 하셨고. 아빠도 이제 늙었구나. 이러실 분이 아닌데. 슬프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일 수도 있다. 팔팔한 20대 초반이었던 나도 뉴욕의 불친절한 지하철에 익숙해지느라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은데.


MoMA는 공사 중. 임시 출입구를 알리는 화살표가 저렇게 예쁠 일인가.


 야구 모자를 가볍게 눌러쓴 한국인 남성 가이드에게 아빠를 잠시 부탁했다. 투어가 끝난 후에 미술관을 더 구경하고 싶어 하실 수 있으니, 아빠를 데리러 올지 말지 결정할 수 있도록 꼭 나한테 연락해 달라며 신신당부하고선 등을 돌렸다. 그 순간 코 끝을 스치는 상쾌한 바람이란. 여행 온 지 4일 만에 처음으로 아빠와 떨어져서 숙소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매일 아침 문을 나설 때마다 가고 싶었던 호텔 바로 앞의 Macy's 백화점과 Urban Outfitters에 들어가서 아이쇼핑을 실컷 하고 나니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인다. 요 며칠간 하루에 두어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쇼핑할 체력이 남아있다니 역시 나도 여자인가 봐! 포근한 침대가 기다리는 호텔로 돌아와서 오랜만의 여유와 고독을 즐기며, 알람을 5분 간격으로 다섯 개쯤 맞춰놓고선 벨소리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밝아서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암막 커튼도 치고 대자로 뻗어서 단잠을 청했다.

.

.

.

 번쩍. 지나치게 맑은 정신으로 갑자기 눈이 떠져서 황급히 시계를 보니 어머나. 2시다. 설마 해서 방을 빠르게 둘러보았는데 아빠가 없다.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을 잃은 기분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당혹감과 함께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12시 30분에 투어가 끝나는데!? 알람 못 들었나!? 아빠 모시러 갔어야 하는데?! 가이드한테 전화해 달라고 했는데! 후다닥 핸드폰을 살피니 애타게 나를 찾는 가이드의 메시지가 여러 개 와 있을뿐더러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대여섯 통 찍혀 있다. 와 어쩌지. 큰일이다. 아빠가 걱정하던 국제 미아가 된 건 아니겠지. 부리나케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살짝 당황한 듯한 목소리의 가이드 왈, 아빠는 투어를 마친 후 피곤해서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 하셨는데 내가 전화를 영 안 받으니, 혼자 택시를 타고 가겠노라며 사라지셨단다. 택시라도 잡아드리지! 칠순의 할아버지를 그냥 두고 가다니!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 보시는 거 아냐! 12시 30분에 출발하신 분이 왜 안 계셔! 혹시 몰라서 40달러쯤 현금을 챙겨드리긴 했는데. 신용카드도 갖고 계시고. 대사관에 가셨나? MoMA 앞에서 혼자 쪼그리고 앉아 계신 건 아니겠지? 이상한 사람한테 잘못 걸려서 강도라도 당한 건..!?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 손에 잡히는 옷을 대충 걸치고 MoMA로 향했다. 아! 아빠는 월남전 용사니까 혼자 숙소로 돌아오실 수도 있으니, 이걸 보면 호텔 로비에서 전화하시라는 메모와 핸드폰 번호를 현재 시간과 함께 적어놓았다. 잠깐 전화 좀 쓰게 해 달라는 영어 문장도.


 혹여나 마주칠 수도 있으니 고개를 길게 빼고 주위를 연신 둘러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그 어디에서도 아빠의 실루엣이 보이지 않는다. 1층 후문과 정문, 표 끊는 곳, 엘리베이터 앞을 뱅글뱅글 돌았는데도 아빠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어디 계신 거지. 누가 아빠를 데려간 건 아니겠지? 표 끊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하나? 갑자기 나를 둘러싼 외국인들과 낯선 환경이 무섭게 느껴진다. 그래, 여기 외국이구나. 타지에서 부모님을 잃은 국제 미아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아침에 아빠와 헤어진 곳에서 혹시나 아빠가 지나가진 않을까, 택시를 잡는 키 작은 동양 남자가 있지 않나, 경찰서를 가야 하나,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잠시 멍하게 앉아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이럴 수가. 아빠다! 


"어디냐?"

"아빠! 어디세요!?"

"난 호텔에 왔지. 네가 준 돈으로 택시 타고 왔다. 지금 이거 호텔 전화야. 잠깐 쓴다고 했다."

"아이고 다행이네! 전 지금 MoMA에요! 아빠 찾으러 왔죠!"

"뭘 또 거기까지 갔냐? 수고스럽게. 다시 와라."


 역시 월남전 용사다우시군. 태연자약하게 호텔로 다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며 '역시 아빠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정말이지 이때의 안도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절벽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가 가까스로 구조 헬기를 만난 느낌이랄까? 쿵쾅거리던 심장이 한순간에 부드럽게 뛰기 시작했다. 앞으로 체력 관리 잘해야겠다. 아빠 체력만 탓할 것이 아니라, 30대에 접어든 지 꽤 된 내 몸뚱이도 잘 간수해야겠다. 새벽 6시쯤 자서 9시쯤 일어나도 별 탈 없길래 나는 무슨 강철 인간인 줄 알았네. 효도 여행 버프 좀 받는 줄 알았지. 앞으로 한참 남은 여행기간 동안 큰 사고 없이 지내려면 밤에 충분히 자 둬야겠다.


 숙소에 돌아와서 반갑게 재회한 아빠의 무용담을 들을 수 있었다. 먼저, 가이드한테 택시 잡는 곳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다음 투어가 있어 바쁘다며 저쪽 뒤로 가시면 된다고 멀리 손으로 가리키고는 홀연히 사라졌다고 했다. 아니, 영어도 잘 못하는 칠순의 관광객 노인을 뉴욕 한복판에 내팽개치는 법이 어딨어! 물론 잠든 내가 제일 잘못하긴 했지만. 계속 들어보니까 호텔 주소도 찾아서 적어주고 핸드폰도 빌려줬다는걸로 보아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베푼 것 같았다. 많이 당황하셨을 법도 한데, 아빠는 의연하게도 이렇게 된 바에는 MoMA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시간 맞춰 밥이나 한 끼 먹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셨단다. 나도 못 먹어본 MoMA 레스토랑 파스타를! 게다가 아빠 혼자 영어로 주문을!? 역시 대단하시군. 지하철도 못 타시겠다더니 막상 위기가 닥치니까 할 거 다 하시네. Cold water 말고 Hot water를 달라고 하니 친절하게 가져다줬다고. 그런데 음식이 좀 짜서 별로 맛있지는 않았다고. 그 와중에 평가까지..? 듣자 하니 웨이트리스가 친절했던 것 같은데, 팁 주는 방법을 몰라서 음식값만 계산하고 나오신 모양이다. 팁 문화가 생소하긴 하지. 조만간 꼼꼼히 잘 설명드려야겠다. 나 없어도 아빠 혼자 식당에서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그러고 보니 호텔 주소도 적어드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찾아오셨을까 궁금해서 여쭈니, 입국 심사 때 알려드렸던 <Hotel Metro>라는 단어가 기억나서 가이드에게 여기 주소를 적어달라고 하여 그 쪽지를 택시기사에게 보여주셨다고 한다. 역시! 월남전 용사는 달라! 갑자기 당황해서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고는 하셨지만, 장담컨대 처음 와본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길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스토랑에 밥때 맞춰 들어가서 Hot water에 파스타까지 잡숫고 택시를 잡아 타서 이름만 한 번 들어본 호텔로 유유히 돌아올 수 있는 할아버지는 대한민국에 아빠밖에 없을 거야. 아빠가 정말 자랑스러워!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 다행이야! 아빠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어서!


"MoMA는 어떠셨어요?"

"끝내주더라. 옛날에 미술 교과서에서 손바닥만 한 흑백 사진으로 봤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그림들이 다 엄청 크고 선명하네. 그리고 색을 아주 기가 막히게 썼더라고. 책에서 본거랑 아주 달라. 어휴, 천재들이지 뭐."

"엑, 흑백!? 진짜 들으면 들을수록 옛날 분이시네. 하긴, 제가 학교 다닐 때 봤던 교과서도 몇 페이지만 컬러였던 것 같아요. 요즘엔 교과서가 풀컬러래요 글쎄."

"요즘이라니. 풀컬러로 바뀐 지 꽤 됐다."


 그렇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졌어도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 종이에 인쇄된 것을 보는 것은 천지차이다. 문득 생각보다 쥐콩만 해서 실망했던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어마 무시한 크기에 압도당했던 모네의 수련이 떠오른다. 부모님 덕분에 쉽게 했던 경험들이 아빠는 70년 만에 처음이신 거다. 평생을 화단에 몸담으며 좋은 작품 하나 남기기 위해 사셨는데(지금도 살고 계시는데), 세계적인 미술관을 이제야 올 수 있었던 아빠의 인생이 살짝 안쓰럽다.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그때가 더 좋았을지는 미지수.


 아빠의 감상을 하나 더 덧붙이자면, 대가들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그 기에 눌려서 짜증이 확 나고 주눅이 들었다고 하셨다. 나는 평생을 해도 안돼서 힘들어 죽겠구먼, 저것들은 뭔데 저렇게 천재적이고 난리야! 라며. 역시, 아빠는 천재라서 피카소를 라이벌로 느끼시는군요!? 저한테 피카소는 그냥 피카소던데. 주눅이 들만한 상대라고 여기시다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확실히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현대 미술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와서 좋았다고 하신다. 현대 미술이란, 남이 안 한 것을 해야 하는 운명인지라 피카소의 큐비즘과 잭슨 폴록의 추상화가 나왔고 결국 텅 빈 캔버스만 남는 지경에 이르러 이제는 캔버스에서 벗어난 설치 미술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와우.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니. 제가 늘 배웁니다. 굽신굽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아빠 말씀을 들으니 나도 MoMA에 갈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잠시 되었지만, 아니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그때 잠을 푹 잔 덕분에 체력을 회복했으니까. 정희재 님의 에너지가 +10 되었습니다.


 오늘의 소란을 통해 깨친 첫 번째 교훈. 밤에 안 자면 낮에 자야 한다. 그러니까 일찍 자자! 이토록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간과했다가 벌 받은 느낌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모든 에너지는 전환될 뿐 사라지지도 새로 생기지도 않는다더니. 깨어 있는 시간을 늘린 만큼 생명 에너지는 줄어들었고 그만큼 다시 채우기 위해 내 몸은 본능적으로 스위치를 꺼버린 것이다. 왜 늘 겪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걸까. 일정이 긴 만큼 평소에 체력관리를 잘해야겠다.


 두 번째 교훈. 전부 다 내가 할 필요 없다. 혼자서 모든 짐과 고뇌를 짊어지고 아빠를 100% 돌보려다가 나가떨어지느니 업무 분장을 적당히 해야겠다. 오늘 보니, 아빠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이제 아빠 혼자 하실 수 있는 것들은 믿고 맡겨야겠다. 정 씨 부녀의 아름답고도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오늘의 결론. 아빠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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