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4. 열넷째 날
일요일을 맞이해서 할렘에 있는 교회에 가기로 하고, 아침 9시쯤 숙소를 나섰다. 내 기억 속 할렘은 갱단끼리 총을 쏴대는 곳이라 무섭다고 하니, 희재가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면서 날 안심시켰다. 게다가 우리가 가는 곳은 가스펠로 유명한 곳이라 관광객도 많고 안전하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 116번가에서 내려 교회로 가는 도중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서 있는 경찰들을 보았다. 시위 행렬이 지나가는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라 오늘 이 마을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고 했다. 핼러윈 퍼레이드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행사라니! 뉴욕에는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많아서 시민들이 즐길 거리가 많아 보였다.
할렘에는 세련된 높은 빌딩은 없었지만, 건물이나 길거리가 말끔했고 분위기도 평화로웠다. 희재 말대로 위험한 기색은 없었다.
한 10분쯤 걸어가니 크고 번듯한 교회가 하나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앞에 서 있던 남성이 부드러운 미소와 손짓으로 우리를 제지했다. 여기는 불어로 예배를 드리는 곳이므로, 영어로 예배를 드리는 곳으로 가려면 위쪽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이 모여 사는 뉴욕답게 여러 가지 언어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안내원이 알려준 방향으로 더 걸어가니 아까와 제법 비슷한 규모의 교회가 하나 더 나타났다. 영어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여러 사람이 우리를 친절하고 정중하게 맞이했는데, 복장과 예의 바른 행동으로 보아 권사나 장로의 직분을 맡은 교인인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를 강당 맨 뒤쪽으로 안내했다. 나중에 보니 그곳이 바로 관광객을 위해 따로 마련해 놓은 자리였다.
흥겨운 가스펠송과 함께 예배가 시작되었다. 내용과 구성은 한국 교회와 비슷했다. 다만, 빨간색 저고리를 입은 할머니가 탬버린을 흔들면서 중간에 ‘할렐루야’, ‘아멘’ 하며 큰 소리로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조금 새로웠다. 여러 개의 기다란 의자 아래에는 까만 플라스틱 통이 한 개씩 놓여있어서, 처음에는 그것들이 휴지통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헌금통이었다. 보기만 해도 거룩(?)한 기운이 느껴지는 붉은 벨벳 천과 금색 실로 만든 우리나라의 헌금 주머니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미국인들은 교회에서도 참 실용적이다.
찬양단이 무대에서 내려가고 목사님이 등장하자, 관광객 대다수가 기념사진만 후딱 찍고는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왠지 무례해 보여서, 희재와 나는 의리 있게 헌금도 하고 설교도 들으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예배를 마치고 큰길로 나오니 마라톤 선수들이 힘차게 뛰고 있었다. 시민들은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서서 손뼉을 치며 그들을 격려 중이었다. 우리도 잠시 서서 응원하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의 유명한 맛집으로 향했다.
식당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금방 자리가 나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들어가 앉았다. 여기가 할렘가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종업원이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전부 다 African American이라 생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손님 중에서는 African American이 거의 없었다. 자세히 보니 현지인이 아닌 관광객이 대부분인 듯했다.
식당 한쪽의 큰 벽면에는 마이클 잭슨 같은 유명한 가수나 연예인, 운동선수들의 모습이 투박한 솜씨로 그려져 있었다. 부시 대통령, 클린턴 대통령도 이 작은 식당에 다녀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국에도 유명한 식당에는 으레 유명인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미국은 사진으로도 모자라서 벽화로 커다랗게 도배를 해 놓은 모습이 재밌었다.
닭튀김과 새우튀김으로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저녁에 있을 농구 경기 관람을 위해서 체력을 비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고, 다시 숙소를 나와서 어마어마한 우주 괴물의 긴 다리 같은 아치형 구조물 앞에 도착했다. 앞에는 'BARCLAYS CENTER'라고 쓰여 있었다. 표를 보여주면서 가방 검사를 받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럽쇼? 입구를 지키던 이에게 입장을 거부당했다. 아뿔싸! 보온병 안에 든 된장국이 문제였다. 이 안에는 폭탄이 아닌 된장 국물밖에 없다고 호소했는데도 문지기는 완강한 태도로 우리를 가로막았다. 아깝지만 희재가 힘들게 준비한 된장국을 하수구에 쏟아버리고 나서야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파는 가게가 늘어서 있어서 마치 재래시장의 먹거리 골목에 들어온 것 같았다. 우리도 피자와 맥주, 물을 사 와서 즐겁게 먹고 마시며 경기를 관람했다. 우리나라는 물을 그냥 주기도 하는데, 여기는 물값이 한국보다 4~5배 정도 비쌌다. 경기장 안에는 액체류를 갖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악용해서 폭리를 취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까 버린 된장국이 다시 떠오르기도 해서 기분이 씁쓸했다.
위에서 내려다본 농구 경기장은 마치 거대한 서커스 무대 같았다. 천장에는 네 면에서 영상을 볼 수 있도록 제작한 엄청난 크기의 TV 박스가 달려있었고, 둥근 벽에는 360도로 설치된 싸이키 조명이 번쩍거렸으며, 강한 비트의 음악이 쿵쾅거리며 가슴을 울렸다.
오후 6시 15분이 되자 미국 성조기가 계양되면서 색소폰 연주자의 리드로 미국 국가가 연주되기 시작했다. 의장대 복장을 한 군인 네 명이 등장했고 ‘받들어 총’ 자세를 취하고선 곡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음악이 잦아듦과 동시에 젊고 늘씬한 무희 군단이 경기장으로 뛰어나오더니 빠른 음악에 맞춰 현란한 몸짓으로 춤을 추며 뜨거운 열기를 더했다.
오늘의 경기는 브루클린 팀 대 필라델피아 팀이 맞붙는 시합이었다. 뮤직 박스에서 DJ가 트는 음악에 맞춰 관중은 신나게 몸을 흔들며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구호를 외쳤다. 천장에 달린 모니터에서는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크게 비추면서 신명 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이곳이 바로 축제의 현장이었다. 사회자의 역할도 컸다. 상황에 따라 관중을 압도하는 능숙한 말솜씨로 재치 있게 애드리브도 해 가며 흥을 돋우고 장내 분위기를 이끌었다.
사실 나는 구기 종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야구나 농구 경기를 보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 희재가 NBA 농구 시합을 보러 가자고 했을 때 별로 내키지 않았었다. 그런데 실제로 현장에 와서 선수들이 열과 성을 다해 땀 흘리며 뛰는 모습을 보니 박진감이 넘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에너지가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것 같은 전율과 재미를 느꼈다. 희재가 아니었으면 이런 광경은 한 평생 보지 못한 채로 눈을 감을 뻔했다.
게다가 운동 경기장에서는 조용히 시합을 관람하면서 잘하는 선수에게 가끔 손뼉을 쳐주고 응원의 말도 건네는 것이 다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전혀 아니었다. 먹고 마시고, 소리 지르고, 손뼉 치고, 춤추고…. 관중들은 경기를 관람한다기보다는 몸부림을 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처럼 마음껏 카타르시스를 분출하고 있었다. 평생 야구나 농구 경기장을 가본 적이 없어서 그런 곳을 가는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늘 여길 와 보니 사람들이 왜 비싼 돈을 주고 경기장에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결과는 브루클린팀의 승리였다. 인파가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내 평생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 관람이 될 농구 경기를 기념하기 위해 코트에 서 있는 선수들을 배경 삼아 딸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포즈를 취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자마자 나타난 관리인이 빨리 나가라고 하도 소리를 질러대서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조금도 봐주지 않는 미국의 문화와 규범이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에 돌아오니 어느덧 밤 10시가 다 되었다. 밤에 초콜릿이나 간식을 먹으면 건강을 해친다고 잔소리를 듣기 때문에, 희재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몰래 꺼내 먹으면서 일기장을 폈다. 아..! 벌써 뉴욕 여행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 처음에는 여행을 18일씩이나 간다고 해서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시간이 흐른다. 희재가 최대한 많은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일정을 효율적으로 빡빡하게 짜서 더 그런 것 같다. 아마 두 번 다시 뉴욕에 올 일은 없겠지. 오늘 갔던 할렘의 교회나 NBA 농구 경기장도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 될 것이다.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떠나는 날까지 놓치는 것 하나 없이 샅샅이 보고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