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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May 15. 2020

더 이상 빛나지 않아도 괜찮아

존재의 이유를 찾아 헤매는 나에게


    퇴원 후 나의 세상은 적막했다. 평범한 일상이던 것들은 더 이상 일상적이지 못했다. 병원에서 저염식만 먹었더니 외식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었다. 맵고 짠 음식은 혀에 너무 큰 자극적이라 아프기까지 했다. 요리하는 과정도 험난했는데, 너무 싱거우면 속이 메스껍고 딱 맞게 간을 하면 혀가 아팠다. 딱 맞는 옷을 좋아하던 나는 복수가 차고 스테로이드로 다시 몸이 부풀어 옷장에 입을 수 있는 옷이 하나도 없었다. 남동생 웅이나 엄마의 옷과 신발을 입고 신었다. 아예 새로 사기엔 또 언제 몸이 돌아올지 몰라 급히 몇 가지만 장만했다. 오랜 병원 생활에 약해진 몸은 모든 행동과 걸음걸이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다. 전에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성격이 급해 제일 앞서 걸었는데, 이제는 절뚝이며 걷느라 신호가 끝나기 전에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다 도착할 때쯤 내 옆을 보면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나인데도, 내 걸음걸이와 매 순간이 낯설고 때론 두려웠다.


    느리고 적막한 시간이 얼른 지나가 주기만을 바라며, 엄마 선희와 나는 작은 행복들을 찾아 나섰다. 슬픔에 묻혀 웅크리고 있다가는 하루가 슬픔에 휩쓸려버릴 것 같았다. 느려진 걸음으로나마 종종 단풍 구경을 나섰다. 퇴원을 했어도 싸이톡산 치료와 신장내과 외래가 격주로 있어 매주 병원에 가야 했다. 병원이 일찍 끝나는 날, 컨디션에 맞춰 통인 시장, 연남동, 삼청동, 창경궁 등을 돌아다녔다. 병원 안에 있던 한 달 동안 바뀌어버린 계절을 천천히 누렸다. 느려진 걸음이 신경 쓰일 때면 나는 꼭 미래를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할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신체의 둔화들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허망함이 밀려왔다.


    아프기 전에는 바쁘다는 핑계, 약속이 많다는 핑계로 선희와 시간을 자주 보내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문득 친구들과 자주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던 연남동을, 선희와는 처음 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의 걸음이 더 느려지기 전에, 건강해지면 더 예쁘고 좋은 곳에 선희와 손을 잡고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다. 낯선 걸음들이 영영 놓칠 수 있었던 삶의 단면들을 들춰주는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혼자 집에 남겨질 때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맴돌았다. 한 달간 병원 생활을 하며 수 천 번 넘게 곱씹었던 생각이었다.

    '나를 망친 건 나야.'

    고3 때도 무리하게 공부하다 병에 걸렸으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염증이 도지듯 후회가 밀려왔다. 몸의 고통이 심할 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기어코 바닥을 치고 말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또 다른 숙제였다.


    '아프기만 한 내 인생은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했다. 풍족하지 않은 집안의 아픈 딸내미인 나는 짐이 되는 것만 같았고 남동생 웅이의 앞날마저 가로막는 기분이 들었다. 웅이가 전역을 했을 때, 휴대폰이 고장 났을 때, 또 내가 모르는 무수히 많은 순간 속에서 그 애는 부모가 필요했을 텐데 그때마다 나는 아팠다. 선희와 성우는 가쁜 숨을 쉬는 내 곁에 있기 위해 내 동생 웅이를 홀로 둘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피해를 주며 살아내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문했다. 그럴 때마다 선희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장애는 있어."

    내가 선희를 빤히 바라보면 선희는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병이 온다고, 그 모양이 가난이든 불행이든 질병이든 모두에게 장애가 되는 부분이 있다고. 지금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로병사를 겪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파서 "그래도 나만큼은 아닐 거야"라고 말하곤 고개를 떨궜다. 그럼에도 슬퍼하는 내 눈을 보면 선희는 늘 내게 같은 말을 해주었다. 어쩌면 그 말 덕에, 나만 다른 것이 아니라는 엄마의 그 말 때문에 지금껏 살아낸 걸지도 모른다.


    언젠가 신해철이 이런 말을 했다.

    "생명은 태어나는 것 자체로 목적을 다한 것이기 때문에 인생이란 보너스 게임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덤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나는 며칠 동안 이 말을 곱씹었다. '나는 이미 목적을 다한 것인가, 내가 가계에 도움이 되지 않아도, 평생 아프더라도, 나는 살아갈 가치가 있는 걸까?'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더 이상 내 인생의 가치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


    이전까지는 살아있음에 감사한 적이 없었다. 사는 것은 당연하고 무엇을 얼마나 많이, 빠르게 성취하느냐가 중요했다. 성적과 성취로 내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고자 부단히 애쓰며 살아왔다. 조금 더 빛나는 딸, 더 반짝이는 내가 되고 싶었다. 루푸스가 나의 일상, 계획, 미래를 발목 잡을 때마다 억울하기만 했다. 한 번 바닥을 친 후로는 분명 내가 루푸스를 만나게 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여전히 그 이유를 이해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이제는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나인채로 살아가도 좋다고 주문을 외운다. 나는 이미 목적을 다했고 살아가는 일은 보너스 게임하듯 즐기면 그만이라고. 무수한 고통과 불안과 절망이 나를 기다리더라도, 그런 삶을 겪어내고 살아가는 일도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병을 얻고 나서 나를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시간이 더 중요해졌고, 계절이 변하는 모습과 병원 밖의 삶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병과 함께하는 삶의 득과 실을 따지라면 물론 실이 더 많다. 아주아주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고, 슬픔에 쓸려 갈 수는 없으니까. 긍정의 힘을 끌어 모은다.


     따스해지지 않을 것만 같던 겨울이 가고 어김없이 봄이 왔다. 봄의 햇살이 내 손등에 닿았을 때 나는 찌릿한 울림을 느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내 몸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 같았다. 자연이 본디 그렇듯 몸은 느긋하게 나아지고 있었다.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은 20분에서 30분, 40분으로 점점 늘었다. 용기를 내서 봄학기에 복학을 했다. 원래 같았으면 한 학기에 끝냈을 수업을 1년에 나눠 6학점씩 들었다. 무릎이 붓고 삐걱거려서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하는 나는 30분 더 걸리는 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나의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그 해 일 년을 꼬박 나는 아팠다. 그러나 더 이상 존재의 이유를 찾아 헤매지는 않았다. 빛나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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