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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Dec 27. 2016

당신은 이별이 아프다

책을 펴도 캄캄해서 그저 울었던 밤에

허름한 밤이 서린

단촐한 나의 벽


네가 선물한 드라이 플라워가

저기에 걸려 있다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여전히 지구를 돌고

나만 홀로 이탈한 운석이 되어

쓸쓸한 방안에 들어서던 날


말라 비틀어진 이 꽃은

그래도 한때나마 환했더랬다

마지막 맥을 짜내어 향기를 토하고

깊은 밤 고요히 말라갔더랬다


이제는 손바닥 가득 물을 실어와

가문 맘을 적셔도

너는, 혹은 너희는

마르고 바래가는 일에만 몰두하는 밤


물뿌리개를 사다놓지 않아서

햇살이 드는 창가옆에 놓아주지 않아서

희고 찬 벽에 뿌리도 없이

끈에 매달려 고소에 시달리게 해서


그래서 더 숨을 쉬지 않는 걸까

그래서 죽지도 지지도 못하고

이리도 방 안 가득 피어만 있는 걸까


이것은 오로지 당신의 마음,

그럼에도 동시에 나의 마음


마르게 하고 마르다가

마침내 멈춰 버린 정지의 시간이

이 곳, 내 방에 산다




당신은 이별이 아팠다

그런데 그래도 된다


모른 체하려 애썼지만

실은 조금씩 슬픔에 젖어갔던 것을

나도 알고 저 꽃도 알고 숨 없는 흰 벽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그래도 된다


비닐봉지에 대고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면

투명한 비닐 심장은

허공을 떠돌아 가벼워진다


죽은 꽃잎 털어내고

살 사랑,은 살아야지


당신은 이별이 아팠다

렇게 쓰는 순간,

이별에게도 이제는 이별을 말할 차례


손잡고 물뿌리개를 사러 가자

내일은 새로운 초인종이

그대의 마음을 울릴 것이므로


우리는 캄캄한 울음도 이제 그만 그쳐 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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