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도 캄캄해서 그저 울었던 밤에
허름한 밤이 서린
단촐한 나의 벽
네가 선물한 드라이 플라워가
저기에 걸려 있다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여전히 지구를 돌고
나만 홀로 이탈한 운석이 되어
쓸쓸한 방안에 들어서던 날
말라 비틀어진 이 꽃은
그래도 한때나마 환했더랬다
마지막 맥을 짜내어 향기를 토하고
깊은 밤 고요히 말라갔더랬다
이제는 손바닥 가득 물을 실어와
가문 맘을 적셔도
너는, 혹은 너희는
마르고 바래가는 일에만 몰두하는 밤
물뿌리개를 사다놓지 않아서
햇살이 드는 창가옆에 놓아주지 않아서
희고 찬 벽에 뿌리도 없이
끈에 매달려 고소공포에 시달리게 해서
그래서 더 숨을 쉬지 않는 걸까
그래서 죽지도 지지도 못하고
이리도 방 안 가득 피어만 있는 걸까
이것은 오로지 당신의 마음,
그럼에도 동시에 나의 마음
마르게 하고 마르다가
마침내 멈춰 버린 정지의 시간이
이 곳, 내 방에 산다
당신은 이별이 아팠다
그런데 그래도 된다
모른 체하려 애썼지만
실은 조금씩 슬픔에 젖어갔던 것을
나도 알고 저 꽃도 알고 숨 없는 흰 벽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그래도 된다
비닐봉지에 대고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면
투명한 비닐 심장은
허공을 떠돌아 가벼워진다
죽은 꽃잎 털어내고
살 사랑,은 살아야지
당신은 이별이 아팠다
그렇게 쓰는 순간,
이별에게도 이제는 이별을 말할 차례
손잡고 물뿌리개를 사러 가자
내일은 새로운 초인종이
그대의 마음을 울릴 것이므로
우리는 캄캄한 울음도 이제 그만 그쳐 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