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잔인한 어른들

이혼가정(한부모 가정) 자녀들을 둘러싼 차별과 편견

by 박다결
미란다-폭풍우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pg 미란다-폭풍우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부모님께서 이혼하신 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은 신체 증상이 생겼다.


어려서부터 소화기관이 약했던 터라 처음엔 별 의심 없이 받아들였지만, 이상하게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증상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어도 속이 울렁거리는 구역감이 치밀었고, 애써 무시하고 음식을 욱여넣으면 위산이 역류하거나 속이 부대꼈다. 몸이 이렇게까지 통제되지 않는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단순히 체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명치부터 아랫배까지 뱃속 전체가 벌벌 떨렸다. 증상이 심해질 때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상체가 잘게 떨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신체 증상은 시간과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학교에서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날씨가 따뜻한 날에도, 한밤중에도 속이 떨리는 건 여전했다. 당시엔 애써 의연한 척 굴었지만 사실 엄청나게 두려웠다. 평생 이렇게 살면 어떡하지, 하는 의문은 나를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몰아넣었다. 자연스럽게 식욕은 억제됐고, 아무리 밥을 씹어 삼켜도 도통 살이 찌지 않았다. 그 결과물로 나는 한창 잘 먹고 잘 자라야 할 청소년 시기에 38kg이라는 저체중을 계속 유지했다.


어긋나버린 식습관은 수면 생활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끼쳤다. 몸을 짓누를 정도의 무거운 이불이 없으면 잠을 청하지 못했다.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있으면 왠지 내가 어딘가로 훌쩍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 가벼운 이불을 박차고 나가 이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었다.


아무래도 당시 단단하게 붙잡아줄 어른이 곁에 없었기에 무거운 이불로라도 나를 이곳에 붙잡아둔 채 보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시사철 무거운 이불을 고집한 건 일종의 생존 본능이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했어도 이런 증상이 부모님의 이혼이 남긴 상흔이라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는데도 부정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이 모든 증상이 마음이 공허해져서 생긴 일이란 걸 깨달았다.


이제 다른 친구들처럼 맘 편히 비빌 언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포감은 뼛속부터 느껴지는 한기로 가장 먼저 다가왔다. 매일매일 가만히 있어도 추웠다. 해가 떠있는 날도, 꽃이 피는 봄에도 추웠다. 사계절이 몽땅 사라지고 한겨울만 남은 세상에 사는 기분. 그때 내 마음이 그랬다.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시간은 정신 건강에도 고스란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몸과 정신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교실에 앉아 있어도 의식은 자꾸만 집으로 향했다. 예전과 분명히 달라진 냉랭한 집안 풍경과 엄마의 빈 자리는 점점 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느껴졌다. 성적은 가파르게 하향곡선을 그렸고, 한 학년이 겨우 200명 남짓 있는 소도시 중학교에서 100등 밖으로 완전히 밀려났다. 어이없는 건 200등에 가까운 등수를 보고도 크게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 그렇지. 이런 가정환경에서 살고 있는데 내가 잘 될 턱이 없지. 부정적인 사고회로에 갇힌 패배감에 압도되어 급기야 무기력해지고 말았다.


무기력이 가장 무서운 이유는
삶의 의욕마저 완전히 좀먹기 때문이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부터 나는 반 좀비 상태에 가까워졌다. 눈을 뜨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온몸이 짓눌리다 못해 바닥이 푹 꺼져버리는 공포감을 느꼈다. 멀쩡하던 집 천장이 갑자기 무너져 내려서 덮칠까 봐 무서웠고, 한편으론 그렇게 무거운 잔해에 깔려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중학교 여름 방학 시작 직후였는데, 사흘을 꼬박 굶고 내리 잠만 잤다. 꼬박 사흘을 굶었는데도 이상하리만치 작은 허기조차 느끼지 못했다. 할머니는 저러다 애 죽겠다며 자고 있던 나를 깨워서 강제로 밥을 먹이셨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아마 내면에서부터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혼자 힘으로도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이토록 힘들었지만, 사실 나를 더 괴롭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바로 한부모 가정을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는 잔인한 어른들이었다.








하루는 다른 반 친구 A가 우리 반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강단 있는 성격을 지녔고, 선생님들이 아낄 정도로 총명했다. 그래서 항상 웃는 낯으로 지낼 때가 많았는데 그 날따라 표정이 굉장히 상기되어 있었다. 기가 찬다는 듯한 말투로 그 친구가 늘어놓았던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도덕 선생님이 불러서 갔는데, 나보고 뭐라는 줄 알아? OO이 부모님 이혼하셨으니까 어울리지 말래. 선생님은 너를 아껴서 하는 말이라고, 그런 나쁜 가정에서 사는 친구랑 놀다가 참한 네가 물들까 봐 겁난대.”



많고 많은 직업 중에 하필 도덕 선생님이 가정환경에 따른 편견을 조장하는 발언을 했다는 게 모순적이라 당황했다. 다른 아이들 역시 처음엔 당황한 눈치였지만, 이내 다 같이 화를 냈다. 과목만 도덕 가르치면 뭐하냐? 정작 본인이 기본적인 도덕성을 잃었는데. 라면서.


친구들 말이 맞았다. 그는 허울만 아름다운 도덕을 가르치고 있었고, 정작 현실에선 도덕심을 잃은 상태였다. 그 친구의 부모님이 이혼을 결정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텐데, 자기가 뭐라고 그 가정을 나쁘다고 멋대로 평가하는 거지? 물든다는 건 또 무슨 의미일까? 이혼가정 아이와 어울리면 모든 가정이 이혼하게 된다는 의미인가?


그때 나는 처음으로 도덕적 의식이 사라진 단순 직업만을 가진 어른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그 선생님으로 인해 어른을 향한 신뢰를 또 한 번 잃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너는 그 선생님한테 뭐라고 했는데? 라는 친구들의 물음에 A가 답했다.



“저는 그래도 그 친구랑 놀 건데요? 나가 보겠습니다. 했지.”



친구들은 속이 다 시원하다며 잘했다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 친구가 워낙 자기 주관이 뚜렷한 성격이었기에 망정이지. 보통 학생들이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얘길 들었더라면 아마 높은 확률로 아무 말도 못 하고 끝나지 않았을까.








예나 지금이나 어른의 발언권은
학생의 발언권보다 힘이 더 세다.


어른의 말이라면 그것이 옳은지, 잘못된 것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수긍하도록 우리 교육시스템이 오랜 시간 동안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발언권이 훨씬 센 어른들이 편견을 조장하는 말을 쉽게 꺼낸다면, 그 말을 듣는 학생들 역시 잘못된 인식을 가진 채로 성장하는 건 당연한 수순 아닐까?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전통 가정만을 영위하려 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가정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건 잘못된 인식을 퍼뜨리는 어른들이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단 도덕 선생님의 일화뿐만이 아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특히,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가 있는 경우에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이 가정환경인 것도 이에 해당한다. 학생들의 일탈에 가정환경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아주 당연하게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는 아이만 이런 행동을 할 거란 인식이 깔린 건 얘기가 다르다.


전통 가정 범위에 들지 않은 학생이 일탈을 저지르면 ‘가정이 저 모양이니 이럴 줄 알았다.’고 말하던 어른들이 전통 가정 범위에 드는 학생이 일탈을 저지르면 ‘가정도 멀쩡한데 뭐가 부족해서 이런 일을 저지르지?’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아직도 많다.


개인과 가정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1+1처럼 세트로 묶는 개념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었고, 지금도 큰 변화는 없다. 가정환경이 어려웠기에 더 열심히 살고자 노력한 다수의 사람은 소수의 일탈을 예로 든 편견에 의해 하얗게 지워진다.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당연히 모두가 문제인 것처럼.


여기서 정말 웃긴 사실 한 가지는 이혼가정 운운하던 그 도덕 선생님은 내가 이혼가정 아이란 사실도 모른 채 나를 좋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성격도 조용하고,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고. 내가 이혼가정에 속했단 사실을 2년간 숨기지 않았어도 그렇게 긍정적으로 봐주셨을까? 아마도 그 사실을 밝혔더라면 나는 둘 중 한 가지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대놓고 불쌍해하며 안쓰러워하거나 나 모르게 뒤에서 혐오하며 멸시하거나.







어른들의 차가운 시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교엔 그나마 친구들이 있었기에 괜찮았지만, 내가 살던 마을은 아니었다. 우리 부모님이 이혼했단 소식은 아파트 주민들의 입과 입을 통해 발 빠르게 퍼졌고, 어느 순간 우리 가족은 그들이 뒷담 하기 좋은 소재 거리가 되어 있었다.


내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수군대다가 흩어지는 아주머니들도 수도 없이 자주 보았고, 연민 또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는 눈길을 보내는 주민도 많았다. 그 정도로 끝냈더라면 그나마 견딜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동정으로도 부족했는지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요즘 엄마가 안 보이던데, 어디 가셨니?”



우리 부모님께서 이혼하셨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상처를 들쑤셨다. 사실대로 말하기가 싫어서 잠깐 다른 곳으로 가셨다고 둘러대면 왜 그곳에 갔는지, 언제 돌아오시는지를 꼬치꼬치 캐물으며 괴롭혔다. 그들에겐 심증이 아니라 물증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 입으로 부모님께서 이혼하셨단 증언을 해야만 더 확실한 내용으로 떠들 수 있었을 테니.


지금 다시 그 시절을 돌이켜봐도 정말 잔인하다고 느끼는 건 주민들이 나에게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단 점이다. 할머니께 묻자니 어르신께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우리 아빠는 무서워서 못 건드리겠고, 내 동생은 어려서 안 되니까 그중에서 가장 만만한 게 나였다. 나를 보는 주민마다 엄마의 행방을 물어대는 상황이 몇 년간 반복되는 동안 내 정신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졌고 주민들을 보면 겁부터 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루는 도저히 참다 못해서
울면서 할머니께 이 사실을 전부 털어놓았다.


다들 왜 자꾸 나만 괴롭히냐고. 우리 부모님이 이혼하셨다는 거 뻔히 다 알면서 몇 년간 괴롭히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냐면서. 마음이 공허해도, 슬퍼도, 화가 나도 꾸역꾸역 참기만 하다가 소리 내면서 대놓고 울었을 때 할머니께선 처음으로 화를 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에라이. 미친 것들! 자랑할 게 없어서 떠들 거라곤 남의 집구석 얘기밖에 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어린아이 상대로 그 짓을 몇 년간 하고 싶더나? 한 번만 더 그런 일 있으면 내한테 누군지 얘기해라. 뺨따구를 확 올려붙일라!”



평소에 온화하기만 하시던 할머니 입에서 마구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는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얼굴은 이미 눈물로 엉망이 된 채로 웃어대는 날 보며 그제야 할머니께서도 안심이 된다는 듯 따라 웃으셨다. 우리 할머니가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하실 성격도 아니셨지만, 대신해서 그렇게 화를 내주신 것 자체가 너무나 든든했다. 내 편 들어주니까 좀 낫다고, 이제 괜찮다는 내게 할머니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집안마다 각자 사정이라는 게 있는 거다. 남의 집 얘기 그렇게 막 늘어놓으며 떠드는 것들치고 똑바로 사는 인간 아무도 없으니까 상처받지 말 거라. 정말 제대로 사는 사람은 남의 집안 얘길 떠들 시간조차 없다. 그리고 그런 못된 사람이 있으면 또 선한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모든 사람을 미워하진 말고. 미움을 미움으로 갚는 어른은 되지 말 거라.”



상처만 주는 어른들이 미웠고, 그래서 아무도 믿기 싫던 내가 마음을 완전히 닫지 않은 채 어른이 될 수 있던 건 이날 할머니께서 해주신 조언 덕분이었을 것이다. 못된 사람이 있으면 또 선한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모든 사람을 미워하진 말라던. 미움을 미움으로 갚는 어른은 되지 말라던 조언이 있었기에 나는 삶이 아무리 불안해도 내팽개치지 않을 수 있었다.


비록 현실은 아름답지가 못해서 할머니의 이러한 조언 뒤에도 주민들은 질문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성인이 되던 해에 질문 공세를 멈췄으니,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꼬박 6년간 괴롭힌 셈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쁜 본보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해했다. 적어도 그들 덕분에 나는 미움을 미움으로 갚는 어른은 되지 않을 테니까.






*이혼가정 자녀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입니다.

keyword
이전 01화우리는 '전환가정'의 자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