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 대신이 아니에요

이혼가정(한부모 가정) 자녀로서 받은 영향 1

by 박다결


풀밭의 여자와 아이 -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누구에게나 유독 유대감이 남다른
가족 구성원이 있을 것이다.


나에겐 그런 존재가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꽤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애교와 웃음도 많았고, 꽤 유치한 말장난도 잘 쳤다. 엄마의 말장난에 어이없어하면서도 가장 크게 웃어주던 사람이 나였고, 우리는 세상 둘도 없는 단짝처럼 늘 함께였다. 그러다 가끔 악몽이라도 꾸는 밤이면 아주 당연하게 엄마 품으로 들어가 숨기도 했다. 즉, 엄마는 어린 시절 내게 유일한 안식처이자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사람이었다.


부모님께서 이혼을 결정하던 당시 내 마음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아빠로부터 이혼 사유를 들어야만 했던 날은 엄마란 존재 자체가 허상처럼 느껴졌다.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당시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이 슬픔이나 분노보다는 배신감이었던 듯하다. 그토록 사랑했던 엄마가 완전히 산산조각난 것에 대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주 깊은 배신감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도, 그렇다고 마음에서 완전히 밀어내는 것도 너무나 버거웠다. 엄마를 그리워하기엔 시시때때로 거센 분노가 치밀었고, 아빠를 생각하면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느끼는 것마저 죄스러웠다. 한 사람의 부재는 엄청난 공허함이 되어 온 집안을 덮쳤고, 우리 가족은 이 풍랑을 고스란히 맞으며 예전과 다르게 조금씩 변해갔다.






가족 구성원이 달라진다는 건 생각보다 꽤 큰 변화를 동반한다. 가볍게 집안 분위기부터 달라지고 그 이후에 각자의 생각이나 성격, 경제 사정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 정도 변화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부모님께서 이혼하신 뒤에 원하지 않았던 역할까지 떠맡아야만 했다.


“이럴수록 더 기운 내야지. 아빠랑 동생도 더 보살피고. 이제 네가 엄마 대신이잖아.”

나는 맏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 ‘대신’이라는 역할을 더 수행해야만 했다. 부모님의 결혼도, 이혼도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엄마의 빈 자리가 생겼단 이유만으로 엄마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이다.


하루하루 내 안색은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우리 집을 찾은 친인척 중 누구도 어른으로서 제대로 된 위로 한 번 건네주지 않았다. 그저 이 시기를 견뎌내야만 하고, 다른 가족 구성원을 네가 나서서 보살펴야 하며, 너는 엄마 대신이라는 말로 지울 수 없는 부담감과 상처만 남겼을 뿐이다.






당시 난 고작 열 네 살이었다. 이제 막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에 불과했고, 미성숙했으며 그래서 더 마음이 쉽게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도 최소한 튜브 정도는 던져주던데, 이 고약한 어른들은 튜브도 던져주지 않고선 어려운 요구만 해댔다. 물에 빠졌구나? 알아서 헤엄쳐서 살아나오렴. 참, 네 옆에 물에 빠진 사람 또 있거든? 그 사람도 네가 건져서 나와. 그들의 말이 이렇게 들렸다.


이뿐만이 아니라, 매년 명절이 되면 큰댁에 가서 엄마 대신 차례상을 차리는 일을 거들어야만 했다. 이 일은 부모님께서 이혼하시기 전에도 줄곧 잘 해왔던 일이었고, 당연히 우리 조상님이니까 차례상을 차리는 행위 자체엔 큰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친인척들의 말과 태도였다.


“엄마도 안 계시는데 당연히 와서 거들어야지. 이제 네 역할인데.”


그 말을 매년 듣고 있으려니, 도대체 나는 이 집안에서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곳에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 대신’이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단 생각이 점점 더 내면에서부터 좀먹기 시작했다. 그 어린 나이에 자아를 잃어버리기까진 몇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족 구성원에 변화를 겪기 마련이다.


우리 가족처럼 부모님께서 꼭 이혼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우리는 모두 가족 구성원에 올 변화를 피할 수 없다. 사별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아주 가볍게는 결혼이나 취업처럼 외부적인 환경이 변해서 가족 구성원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재혼 역시 가족 구성원이 달라지는 일 중 하나다.


이때 가족 구성원 및 친인척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있다. 바로 누군가에게 강제성을 띠는 역할을 줌으로써 책임감을 얹어주는 것이다.


특히 부모님께서 이혼하시거나 사별하시면 그 빈 자리에 대한 책임이 밑에 있는 자녀들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다. 엄마, 또는 아빠가 그 자리에 없으니 맏이인 네가 그 책임을 같이 짊어져야 한다거나 자녀인 네가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해야 한다며 어른들이 나서서 심리적으로 압박을 주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런 상황에 놓인 자녀들은 높은 확률로 어린 나이에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게 된다. 또한, 부모 역할을 대신 하게 되면서 이루고 싶던 꿈, 또는 정신적인 회복을 내버려둔 채 가정 회복에만 몰두하게 된다.


나이가 어릴 때 이런 상황이 닥치면 가정을 살리는 게 나를 살리는 일 같아서 묵묵하게 견딘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성인이 되고 난 뒤에 쌓였던 감정이 터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가정의 어려움을 잘 견뎌내서 극복한 것이 아니라 억지로 참으면서 임시방편으로 감정을 눌러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 주변 지인 중에도 이런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부모님 중 한 분을 대신하며 자라야만 했던 사람들.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그들의 이야길 들으며 나 역시 공감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또 안쓰러웠던 적이 정말 많았다.


마음 같아선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고도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가족은 우리가 존재하게 된 근원이기도 하다는 걸 나 또한 잘 알고 있어서였다.






사람은 억지로 책임감을 씌워준다고 해서
무조건 강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해서 완벽히 그 사람이 되어 살아갈 수도 없다. 가족 구성원이라는 점만 같을 뿐, 결국에 본질은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합당한 책임감을 통해 사람이 더 강해지기 위해선 필수 요소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성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특히 미성년자는 아직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가정을 회복해야 할 책임감을 가질 의무가 전혀 없다. 미성년자는 결코 성인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으며 절대로 이를 강요해선 안 된다. 가족 구성원에 변화가 온 경우, 미성년자가 해야 할 일은 성인이 되어서도 내면이 무너지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이지. 내가 부모가 되는 것에 있지 않다.


두 번째, 이들이 책임감을 가질만한 적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저 맏이란 이유로 또는 딸이나 아들이란 이유로 출생 순서나 성별에 근거해서 누군가를 대신할 책임을 짊어질 이유는 없다. 주어진 대로 태어난 것이 책임감을 가질 당연한 이유가 되진 않는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주변인들 모두에게 이들의 인생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가족 구성원이 변했다고 해서 인생이 망하거나 끝난 것은 아니다. 이들이 가정을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열어둬야 한다. 여기서 책임이란 가족 구성원의 변화에 와르르 무너지듯 와해 되지 않도록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에 있다. 책임은 희생과 동의어가 아니다.






당시 내가 가장 원했던 건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과 어른들의 따뜻한 지지였다. 학창시절에 가장 자주 갔던 공간이 상담실이었던 것도 이 두 가지가 충족되어서였다. 상담실에 갈 때마다 선생님께선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셨고,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며 내면이 완전한 우울과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셨다. 워낙 오래전 일인지라 우리가 나눈 대화는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오라고 말씀해주신 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비록 선생님이 완전한 해결책이 되어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처음부터 해결책을 바라고 상담 선생님을 찾아간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누군가가 나를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엄마 대신이 아니라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서른 살이 넘은 지금은
내게 지워진 엄마 대신이라는 역할이
얼마나 폭력적인 억압이었는지 안다.


그러나 당시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이를 지혜롭게 판단할 힘도, 나대로 살고 싶단 말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을 하면 이 가정이 완전히 무너질까 봐 무서워서 차라리 속이 썩고 문드러지길 택한 것이다.


지나온 일들이 그저 지나온 일들로만 남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그 일들은 성인이 된 이후로도 내면의식에 많은 악영향을 끼쳤다. 긴 시간 동안 끝나지 않는 자기연민과 자기혐오에 빠지게 했고,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우울증을 만성화되게 했고, 툭하면 실패를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게 하는 패배주의에 젖게 만들었다.


지금 이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조금 더 빨리 그곳에서 구출해내지 못해서. 내 편이 되어주지 못해서.


강제성을 띠는 억지 책임감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지도 못했고, 오히려 심리적으로 더욱 약해지게 만들었다. 힘들어해도 괜찮다. 지금 마음이 아픈 게 정상이다. 이건 어른들의 선택이고, 너대로 살아가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 거라. 이런 말을 듣고 싶었지만, 당시 그런 말을 건네주는 어른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 그 시절의 나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해주곤 한다. 너로서 살기 정말 힘들었겠구나. 그래도 지금껏 잘 버텼어. 이젠 정말 너로 살아.


나는 엄마 대신이 아니다. 그냥 나일 뿐이다.






*이혼가정 자녀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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