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환가정'의 자녀입니다

어디에나 있는 전환가정, 서문

by 박다결
별이 빛나는 밤 - 빈센트 반 고흐.jpg 별이 빛나는 밤 - 빈센트 반 고흐




가끔 머나먼 우주로 떠나는 상상을 한다.


우주로 나가면 누구도 서로를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같은 염원에서다. 그러나 모두가 우주로 떠날 순 없을 것이다. 지구를 떠나서도 잘 살 수 있을 만한 사람인지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할 테고 어쩌면 사람들은 지구를 떠나기 전에 우주 신원 정보 기계를 통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공항 검색대처럼. 한 명씩 기계를 통과할 때마다 합격과 불합격 여부가 뜨고, 나는 통과가 결정된 이들의 미소를 부럽다는 듯 응시하며 차례를 기다릴 것이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면 우주 신원 정보 기계는 빠른 속도로 신원을 파악한다. 이름, 성별, 나이 등이 빠르게 나열되다 말고,

삐빅- “정상 가족 구성원이 아닙니다.”


그만 가족 구성원에서 경고음이 울리며 불합격이 뜨고 만다. 상상만으로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지만, 매번 우주 비행선에 탑승하기 직전에 불합격을 받고 질질 끌려나가는 모습으로 상상을 마무리 한다.








어떻게 가족 구성원만으로 사람을 차별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머지않은 미래엔 가족 구성원의 의미가 다양해져서 정상 가족이란 표현 자체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 그때쯤이면 모두가 차별과 편견 없이 우주를 누비며 여행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즉, 지금은 그때가 아니란 의미다.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은 우주만큼 멀고, 아득하기만 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여전히 ‘정상 가족’만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계시고, 가족 구성원 사이에 아무런 불협화음도 없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가족만을 기본값으로 두고, 이러한 범위를 벗어난 가족은 가차 없이 차별과 편견의 수렁에 밀어 넣는다. 교과서에 밥 먹듯 등장하는 정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따라오는 차별과 편견은 가벼운 상상이나 소설 속 허구가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 사회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전통 가족상을 벗어난 가정에
여러 정의를 갖다 붙인다.


이혼가정, 한부모 가정(본래 편부모 가정으로 불렸으나, 어휘가 너무 부정적이라서 수정된 사례), 조손가정, 미혼모·미혼부 가정 등이 그 예다.


어렸을 적엔 이 표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렇게 정의를 내려야만 사회적 제도 안에 안전하게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동안 사회에서 정의 내렸던 이 어휘들이 엄청난 차별로 다가왔다. 이혼, 한부모, 조손, 미혼모·미혼부라는 어휘엔 모두 혼인이라는 사회적 제도 반대편에 서 있단 뜻이 함축되어 있다. 혼인 관계가 유지되지 못한 가정이라는 이유로 선을 긋는 어휘를 붙이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나도 잘 알고 있다. 중요한 어휘는 항상 가장 뒤에 붙는다는 걸. 고래상어가 고래가 아니라 상어이고, 망치상어가 망치가 아니라 상어인 것처럼 이혼가정, 한부모 가정, 조손가정, 미혼모·미혼부 가정도 결국엔 가정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사람은 앞에 붙은 어휘에 더 주목한다. 뒤에 ‘가정’이라는 어휘가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 한부모, 조손, 미혼모·미혼부라는 말을 듣기가 무섭게 정상 범주를 벗어났단 생각에 색안경을 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을 안쓰럽게 여기거나 멋대로 동정하는 것 정도는 양반이다. 대놓고 그 사람을 혐오하거나 조롱하는 무기로 쓰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이런 반응이 생각보다 많은 것 자체가 이들을 정의 내린 어휘가 결코 좋은 뜻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회적 제도 안으로 들어오게 해주겠단 미명 아래 오히려 편견이 더 부각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열 네 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께서 이혼하시고,
지금까지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


당시엔 이혼이 가문의 수치, 또는 치부처럼 여겨져서 밖으로 드러내기가 정말 어려웠다. 오죽했으면 부모님께서 이혼하셨단 사실을 담임 선생님께도 알려드리지 못하고 숨겼을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내다가 열여섯 살이 되고 고등학교에 원서를 넣을 시기가 되고 나서야 선생님께 그 사실을 밝혔다. 2년 전에 부모님께서 이혼하셨는데, 고등학교 원서를 낼 때 문제가 될까요? 하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선생님께선 그동안 혼자서 정말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시며 위로해주셨다.


지금은 이혼 따위 흠도 아니야. 라는 말도 쉽게 하고, 심지어 이혼을 주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까지 나오는 세상이 됐지만, 그땐 이혼만큼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치욕스러운 흠도 없었다. 매일 피부로 와닿는 편견과 차별 속에서 어린 나는 계속 방황할 수밖에 없었고, 심각한 우울과 불안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때 가장 절실했던 건, 따뜻한 조언이었다. 부모님의 이혼은 흠이 아니며, 부모님의 선택일 뿐이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그러니, 너대로 잘살면 된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말에 휘둘려 길게 아파하지 말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그러나 이혼에 대한 잔인한 편견이 만연한 시대에서 그런 위로를 건네주는 어른을 찾기란 너무도 어려웠다. 이혼, 한부모 가정이란 편견을 돌파하며 싸우는 동안 차별은 더욱 교묘하게 이루어졌다. 원하지 않았던 동정, 또는 비판을 가장한 비난과 조롱으로 말이다.






그 시절의 아픈 기억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 글을 쓰도록 이끌었다. 누군가의 조언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어린 나를 떠올리며. 아직도 가정환경으로 인한 편견과 차별로 힘들어할 이 땅의 자녀들을 위해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따라서 나는 사회 제도 안에 묶이지 못한 우리를 새롭게 정의 내리려 한다.


“우리는 ‘전환가정’의 자녀입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는 시기를 ‘전환기’ 또는 '전환점'이라고 한다. 따라서, 인생을 뒤흔들만한 커다란 분기점에 다다랐을 때, 흔히들 “인생의 전환기(전환점)를 맞이했다.”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이러한 인생의 전환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달라진다. 살다보면 누구나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긍정적인 경험이 전환기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부정적인 경험이 전환기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 인생의 첫 전환기는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그날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자세 등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금까지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고 있으니, 그 파장이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슬픈 건 우리 사회에서 인생의 전환기를 개인의 성공과 실패에만 두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입시나 취업, 사업 실패 등의 사건은 자연스러운 전환기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그 사람이 나고 자란 가정의 변화는 결단코 전환기로 보지 않는다. 그저 정상 가족 범주 안에 들지 못했단 이유만으로 ‘실패한 가정’, 또는 ‘문제 가정’으로 낙인만 찍어댈 뿐이다. 아직도 인터넷에 ‘이혼가정에서 자라서 상견례 자리가 걱정됩니다.’, ‘아버지 없이 자랐다고 결혼을 반대하십니다.’와 같은 고민 글이 수두룩하게 올라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비록 나는 이혼가정에서 자란 경험밖에 없어서 이 글 역시 이혼가정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지만, ‘전환가정’이란 표현은 가정사를 인생의 전환기로 만나야 했던 모든 이들을 위해 만들었다. 앞과 뒤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도 결핍을 강조하지 않고, 편견이 담겨있지 않다. 내가 ‘전환기(전환점)’라는 표현을 마주한 뒤에 아프기만 하던 과거를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처럼,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남들과 다른 가정환경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저 가족 구성원에 ‘전환기’를 맞이했을 뿐입니다.





*이혼가정 자녀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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