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껍데기만 어른

이혼가정 자녀로서 받은 심리상담 1

by 박다결
단어 없는 노래 - 존 윌리엄 고드워드.jpg 단어 없는 노래 - 존 윌리엄 고드워드




올해 내 나이는 서른한 살이다. 보통 삼십 대로 넘어갈 때 이십 대 청춘이 끝난단 생각에 괜히 우울해지기도 한다던데 생각보다 의연하게 삼십 대를 잘 받아들였다. 아마도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늙는다’가 아니라 ‘익는다’로 해석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지난 시절의 내 모습은 설익어서 푸르뎅뎅한 열매와도 같았으므로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 그다지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연륜이 쌓이게 될 앞으로가 더 기대될 정도다.


이랬던 나도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로
넘어가는 순간만큼은 의연하지 못했다.


어쩌면 설레기도 했던 것 같다. 나이 앞에 놓이는 숫자가 1에서 2로 넘어간다는 건 꽤 큰 변화를 몰고 온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특히 스무 살은 미성년자에서 성인으로 한 단계 넘어가는 관문인지라 그만큼의 자유와 더불어 자기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스무 살이 된다고 해서 일상이 급격하게 달라지진 않았다. 어른이 되면 바로 소주도 좋아하고 쓴 커피도 물처럼 마실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건 귀여운 착각일 뿐이었다. 소주를 마시면 과학실 귀퉁이에 놓인 알콜 램프를 마시는 기분이 들었고, 쓴 아메리카노엔 시럽을 때려 부어서 보리차 수준이 되어서야 마실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여러 번의 경험 끝에 소주보다는 맥주를, 아메리카노보다는 라떼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남이 하는 것을 고스란히 따라 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취향을 발견하고 표현할 줄 아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란 걸 그때 깨달았다.


이토록 어설프게 성인 흉내를 내며 대학교 새내기 생활을 즐기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대학교가 집과 조금 떨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졌기 때문이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더니 그 대상이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통용되는 말이었던 걸까. 집과 거리를 둘수록 아픈 기억과 상처로부터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이 당시에 유년기 시절에 호소하던 우울과 불안 증세가 꽤 옅어진 상태였다. 따라서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유년기의 상처가 아무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쩌면 스무 살을 슈퍼우먼이 되는 나이쯤으로 상상했던 걸지도 모른다. 고작 숫자 1에서 2로 넘어가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기억을 청산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교내 게시판에서 공지 하나를 발견했다.


학부생들을 상대로 10회 무료 심리 상담을 해주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학부생은 OO관으로 찾아오세요.


지금이야 심리 상담이 상당히 보편화가 되어서 무료 심리 상담도 많아졌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학부생이던 시절엔 심리 상담하면 비싼 비용을 지불 해야만 받을 수 있다는 인식과 심각한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만 받을 수 있다는 편견이 있었다.


당연히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여겼다. 이제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상담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강 시간 내내 그 공지가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왠지 그 상담을 꼭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어차피 학부생은 무료라는데 한 번쯤 받아보자고 마음을 바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약속한 공강 시간마다 교내 상담실을 찾았다. 1회 상담 시간은 한 시간으로 10회를 다 하게 되면 무려 10시간이나 걸리는 수고스러운 일이었다. 내면에 더 이상 문제가 없을 거라고 자신하던 상태였기 때문에 10시간이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이야기 해보세요.”


상담 선생님의 말씀에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이야기할 게 딱히 없는데요. 무료 상담이라길래 궁금해서 그냥 와봤어요.”


이상하게도 상담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괜히 상담 신청을 해서 바쁜 사람을 귀찮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함과 도움이 더 필요한 학부생들도 많을 텐데 그들의 기회를 앗아간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상담 선생님께선 아무 이야기나 괜찮다며 먼저 작은 주제 거리를 던져주셨고 덕분에 과할 정도로 밝은 척을 하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열했다. 어떻게든 10시간은 채워야 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라도 시간을 채우고 싶었다. 상담 선생님은 평온한 얼굴로 모든 말을 들어주기만 하셨다. 이게 상담인지 헛소리 대잔치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무렵이 되어서야 상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희결씨 이야기 들어보니까 앞으로 이야기 나눌 게 많아 보이네요. 우리 대학교 생활부터 천천히 대화를 나누어 볼까요?”


마냥 헛소리만 주절거렸다고 생각했는데 상담 선생님 시선엔 그게 아니었던 걸까. 첫날에 벌였던 헛소리 대잔치를 시작으로 상담은 계속 이어졌다.








다음 상담부터는 대학교 생활을 주제로 한 대화가 이어졌다. 집과 학교가 꽤 거리가 있는데 통학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아침에 일찍 기상하기 힘들진 않은지, 학부생으로 지내면서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친밀감을 느끼는 동기가 있는지 등 무난한 대화가 이어졌다. 이렇게 시시한 이야기를 상담 시간으로 써도 되나 걱정할 때쯤 상담 선생님께서 물어보셨다.


“희결씨는 왜 지금 전공을 택했어요?”


대학교 입시 면접 때도 들었던 질문이라서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어렸을 적부터 글쓰기를 정말 좋아해서요.”
“왜 글쓰기가 좋았어요?”


상담 선생님께선 글쓰길 좋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조금은 집요하게 물어보셨다. 이게 이렇게까지 깊게 파고들 문제인 건가 싶었다. 그냥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거지. 좋아하는 일에 이유가 있나? 의아해하면서도 생각에 잠겼다. 왜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건지 유년기를 되짚어보게 된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처음엔 단순히 책이 좋아서였고, 일상을 기록하는 일에 흥미를 느껴서였지만 이혼가정이 되고 가족 구성원이 달라지면서 글쓰기의 결이 완전히 달라졌다. 글쓰기를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우울과 불안을 걷어내기 위한 도구로 쓰게 된 것이다.


당시 썼던 글은 이보다 더 어두울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주인공이 희망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담긴 경우가 많았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구원하기도 했고, 누군가로부터 구원을 받기도 했다. 어쩌면 주인공에게 나를 투영했던 걸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고통을 이겨내고 행복해지면 나 역시 똑같이 고통을 이겨내고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결국에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그 글을 썼던 나만큼은 알고 있었다. 왜 이런 내용의 글을 썼는지. 글을 통해서 말하고 싶던 소망이 무엇이었는지를.


“글 쓸 때만큼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요. 현실은 마음대로 바꾸기 어렵지만, 글은 마음대로 상황을 바꿀 수가 있잖아요. 아마도 글쓰기가 저에겐 일종의 안식처였다고 생각해요.”


지금껏 글쓰기를 단순히 ‘좋아하는 일’ 정도로만 여겼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좋아해서 즐길 수 있는 가벼운 취미를 넘어서 ‘생존을 위한 일’이었던 것이다.


“글쓰기가 희결씨에겐 아주 큰 의미였겠네요. 그렇다면 희결씨가 글쓰기를 통해서 벗어나고 싶던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줄 수 있나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갑자기 눈시울이 확 붉어졌다. 벗어나고 싶던 현실이라는 말에 도저히 내 손으론 통제할 수 없던 수많은 기억이 떠오르고 만 것이다.


이혼 가정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거나 편견을 가지고 피하던 사람들, 위로는커녕 부담스러운 책임감과 함께 견디라고만 말하던 어른들, 매일 밤 울면서 잠들던 나날들,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장애,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시간이 마치 주마등처럼 전신을 훑고 지나가면서 서러운 눈물이 터졌다.


그 와중에도 이 일이 남들이 생각하기에 심각하지 않은 일처럼 보일까 봐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수치스러움을 먼저 느꼈다. 매번 고작 그깟 일로 왜 힘들어하냐, 이젠 용서해라, 남들도 다 그러고 산다는 말만 들어서일까. 사는 게 고되고 외롭다고 느꼈던 유년기 기억을 털어놓았을 때 또 그 상황이 반복될 것이 두려웠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면 말해도 된다며 휴지를 건네주셨다.


“사실 열네 살 때 부모님께서 이혼하셨어요. 너무 우울하고 불안한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어디라도 지탱하고 싶은 마음을 글쓰기로 많이 해소했던 것 같아요.”


이젠 스무 살이나 됐으니까, 성인이 됐으니까 마음이 단단해졌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는 충격은 또 다시 나를 열네 살의 모습으로 되돌려놓았다. 마음의 외피는 아직도 물렀고, 심지어 상처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상태라는 걸 인지했다.


“다 큰 성인이 옛날 일 때문에 아직도 힘들어한다는 게 너무 철없어 보이지 않나요?”
“아니에요. 성인이 되면 다들 마음의 상처가 있어도 털어놓기보단 묻어두고 살길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거든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용기 있는 거예요.”


지금껏 우울하고 불안하다고 말하면 다들 의지가 부족한 거라고 말했는데, 이런 반응은 처음이어서 얼떨떨했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시종일관 따뜻한 태도로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었다.


심리 상담을 시작하던 날부터 딱히 할 말이 없다고 얘기하며 아무 이야기나 나열했던 건 정말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종의 방어기제였음을 깨달았다. 아픈 기억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감춰둔 것에 불과했다는 걸 알아차린 뒤부터는 조금씩 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됐다.






*이혼가정 자녀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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