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니까 달려야 합니다 5
요즘도 나는 일주일에 3회 달리기를 하러 밖에 나간다. 달리기를 한 날엔 인증샷을 찍어서 인스타 스토리에도 올린다. 친구들은 내가 올린 스토리에 하트를 눌러주거나 DM으로 메시지를 남겨준다. 달리기를 꾸준히 해내는 모습이 멋지고 대단하다, 나도 체중 감량에 성공하면 달리기를 시작하고 싶다, 갓생 사는 너에게 많은 자극을 받는다 등 애정 어린 내용이 많다. 친구들이 남겨준 메시지를 읽으면 가슴이 뭉클함과 동시에 감구에 젖는다.
달리기를 모르던 시절과 지금의 나는 비교도 하기 민망할 정도로 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소극적이던 성격이 대문자 E로 바뀌거나, 도전을 일삼으며 매일 스릴감 있게 산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별다를 것 없는 나날을 살고 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태도가 달라졌다. 달리기를 모르던 시절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는 사실이 짐처럼 느껴지고, 삶 자체가 고통이었다. 끝을 모르고 깊어지는 우울감은 툭하면 발목을 잡아끌었고, 세상에 나만큼 하찮은 존재는 없을 거란 자기혐오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내면을 난도질했다. 사는 게 두려워서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무서울 정도였으니, 그때 마음은 한 마디로 지옥도였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뜨지 못해도 아쉬울 게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의 우울 상태는 꽤 중했다.
그랬던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고 조금씩 달라졌다. 무기력하던 신체가 깨어나면서 우울에 무뎌진 감각도 덩달아 깨어났다. 우울감이 해소되면서 무너진 일상을 하나씩 일으켜 세웠고, 버겁게 버티기만 하던 일상은 부단히 나아가는 방향으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나에게 달리기란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일상을 되돌려준 운동인 것이다. 도대체 달리기가 무엇을 남겼기에 긴 시간 동안 우울감에 허덕이던 내가 달라진 걸까? 우울감 해소와 더불어 달리기가 나에게 남긴 세 가지 선물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만, 멈추지 않고 이어가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 외적 동기로 운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외적 동기란 어떤 일을 시작하려는 동기가 밖에 있는 것을 말한다. 남들도 다 한다니까, 요즘 유행이라니까, 다른 사람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으니까 시작한 운동은 전형적인 외적 동기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외적 동기도 잘만 활용하면 단기적인 성과를 이뤄낼 순 있다. 그러나 외적 동기는 한계가 명확해서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관심이 식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떤 운동이든 꾸준히 해내려면 내적 동기가 있어야 한다.
내적 동기는 외적 동기와 반대다. 내적 동기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앞으로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처럼 동기가 내 안에 있는 것을 말한다. 내적 동기를 통해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내적 동기가 강하단 건 운동을 나와의 약속으로 정의 내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와의 약속을 잘 지켰다는 성취감은 남이 만들어줄 수 없다. 힘들 걸 알면서도 운동을 시작하고, 꾸준히 운동을 수행하도록 돕는 내적 동기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내가 달리기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내적 동기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달리기였지만, 달리는 날이 늘어날수록 우울감이 해소되면서 해방감을 느꼈다. 그 이후에 자연스럽게 내적 동기가 생겼다. 더는 우울로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달렸다. 무턱대고 시작했던 달리기가 나를 지키기 위한 달리기가 된 것이다. 달리는 동기가 내 안에 있었기에 더 멀리까지 달려야 한다는 부담감도, 남들보다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경쟁심도 생기지도 않았다. 오늘이 달리는 날이라면 나가서 달리고 오면 그만이었다. 거리를 얼마나 달렸건, 페이스가 얼마나 나왔건 상관없이 오늘치 목표를 잘 수행하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달리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생성된 내적 동기는 결과적으로 우울했던 나를 달라지게 만든 선물이 됐다.
나는 꽤 오랜 시간 우울과 불안이 혼재된 상태로 살아왔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에너지 소모가 큰데, 신체적인 증상으로까지 발현돼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어떨 때는 한없이 무기력하게 늘어지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어서 진정시키느라 진을 뺐다.
이런 식으로 정신과 신체의 불균형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왔고, 그 여파로 고통 임계점이 낮은 사람으로 성장했다. 과정이 조금만 버거워져도 금세 포기하고 싶어졌고, 오래 버티기 힘들어했다. 그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한계를 지닌 채 살았고, 도전을 꺼리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어차피 나는 해도 안 될 테니까, 또 버티기 힘들어할 테니까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길 택했다. 이미 나의 세계는 좁아질 대로 좁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나의 세계는 조금씩 넓어졌다. 고통 임계점을 점차 높여서 생긴 결과였다. 1분 달리기도 버거워하던 내가 다음 주엔 1분 30초를 달렸다. 한 주가 더 지나면 2분을 달릴 수 있었고, 또 한 주가 지나면 3분을 달릴 수 있었다. 오래 달려야 할 시간이 1분씩 늘어날 때마다 겁이 났지만, 막상 달리면 악착같이 목표를 완수했다. 1분씩 달리는 거리가 늘어나는 지난한 과정을 잘 견뎌내면서 처음으로 나에게도 고통을 버티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지구력(持久力)이다.
지구력이란 오랫동안 버티며 견디는 힘을 일컫는다. 달리기는 지구력을 증진 시키는 운동 중 하나다.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꾸준히 달리는 과정을 통해 누구나 지구력을 키울 수 있다. 나는 달리기를 통해서 꾸준히 지구력을 키웠다. 1분씩이라도 더 달리려고 버텼고, 숨이 차오르면 페이스를 낮춰서라도 멈추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결과, 고통을 외면하고 피하기보단 정면으로 맞서보려는 사람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시작도 전에 한계를 두지 말고, 무엇이든 해보자. 잘 되면 좋은 거고 설령 잘 되지 못한다고 해도 나에게 남는 게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은 내 안에 지구력이 형성되면서 바뀐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일에 도전할 때 지금도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시작은 누구에게나 두렵다는 걸. 또한, 막상 시작하고 나면 어디든 도착하게 되어 있고, 그 도착지가 썩 나쁘진 않다는 걸 말이다. 그러니, 나는 내 안에 있는 지구력으로 버티면서 앞으로 꾸준히 나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달려왔던 것처럼.
달리기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세 번째 선물은 자존감이다. 자기혐오가 심했던 나에게 자존감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었다. 밖에 나가서 잠깐 달렸다가 들어오는 게 무슨 자존감까지 키울 일이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하게 말하건대 달리기는 나의 부족했던 자존감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자존감이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흔히들 자존감을 키우고 싶다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무한 긍정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자존감 형성에 기대만큼 효과를 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억지로 긍정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가 않으면서 억지로 괜찮다고 긍정하면 가슴이 더 답답해지고, 자기혐오만 심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자존감 형성에 중요한 건 현실을 부정하는 억지긍정이 아니라 성실한 수행과 자기 인정이다.
나는 달리기를 통해서 자기 인정을 배웠다. 물론, 고작 1분 달리기도 버거워하는 나를 인정하기란 외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달리는 날이 늘어나면서 나의 성실성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론 부족한 점이 보여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나에겐 이미 성실성이 갖춰져 있으니, 오히려 꾸준히 보완할 목표가 생긴 것에 감사했다. 현재의 나를 오롯이 지켜보고 인정하게 된 태도는 건강한 자존감의 원천이 됐다. 달리기는 이렇게 기나긴 자기혐오에 빠져있던 나를 사랑하게 해주었다. 그토록 절실하게 바라던 자존감이라는 이름으로 세 번째 선물이 돼서 돌아왔다.
이 글을 쓴 나는 러닝 전문가가 아니다. 러닝 전문가를 꿈꾸며 이 글을 쓰지도 않았다. 세상엔 이미 걸출한 실력을 지닌 러닝 전문가들이 많이 계시고, 러닝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다면 그분들이 남긴 글이나 자료를 읽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를 주제로 글을 쓴 건 달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를 사랑하기엔 충분하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였다. 달리기는 성실함의 운동이다. 꾸준히 달린 사람만이 건강한 내적 동기를 만들고, 고통을 버텨내는 끈질긴 지구력이 생기며, 종국엔 나를 사랑하게 된다. 이 과정은 나만의 것이 아니기에 글을 통해서 공유하고 싶었다. 내가 달리기를 통해서 받은 이 세 가지 선물을 어딘가에 살고 있을 우울한 누군가에게도 언젠가는 꼭 전달되길 바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덜 버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길, 부디 행복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