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니까 달려야 합니다 4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종종 다른 사람들이 남긴 달리기 후기를 찾아본다. 그럴 때마다 꽤 높은 비율로 ‘달리기가 우울감 해소에 도움이 많이 됐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를 보고 딱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연대감이었다. 각자 우울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 달리고 있구나. 나와 같은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구나. 그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어디선가 달리고 있는 존재가 있다고 상상하면, 아무리 어두운 밤길을 혼자 달리고 있어도 우리는 함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옆에서 뛰지 않아도 마음으로 이어져 있다는 연대감은 달리기에 더 큰 애정을 갖게 했다.
두 번째는 의문이었다. 유독 달리기 후기에 우울감 해소에 효과를 봤다는 내용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알다시피 세상엔 다양한 운동이 많다. 중량을 치고 근육을 강화하는 헬스, 물속을 유영하며 전신을 단련시키는 수영, 자세와 호흡을 통해 유연성을 터득하는 요가, 악착같이 매달려서 근력에 지략까지 얻는 클라이밍, 신체와 정신의 한계까지 끌어내는 크로스핏 등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운동이 있다. 어떤 운동이든 신체와 정신을 동시에 단련하긴 매한가지이므로 이 운동도 모두 우울감 해소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기만큼 우울감 해소에 효과가 좋았단 후기가 많진 않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싶어서 달리기가 우울감 해소에 효과적인 이유를 고찰해보았다.
1. 운동 시작 진입장벽이 낮고 자율성이 높다.
달리기 외에 다른 운동을 배우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선뜻 시도하지 못했던 이유는 제약이 많아서였다. 특정 장소에 가야만 할 수 있는 운동이 많았고, 그 장소마저도 내가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이용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 이상 수강료를 내야 해서 경제적인 여건도 신경이 쓰였다.
그에 비해서 달리기는 상대적으로 제약이 적다. 원하는 곳에서 달릴 수 있고, 달릴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러닝화 한 켤레만 사면 그 이후에 크게 돈 나갈 데도 없다. 물론, 러닝화는 소모품이라서 주기적으로 재구매해야 하지만, 매일같이 10km 이상 뛰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교체 주기가 길어서 부담이 없다. 다른 운동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제약이 적다는 건 그만큼 진입장벽이 낮다는 뜻이다. 진입장벽이 낮으면 접근성이 좋아지기 때문에 쉽게 도전할 수 있다.
달리기는 아무런 기구도 없이 순전히 내 몸 하나로만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이다.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한없이 자유롭다. 이런 식으로 원하는 때에 나를 놓아줄 수 있는 운동은 달리기밖에 없다. 자유로운 신체는 우울로부터 즉각적인 해방을 돕는다.
2. 계절 변화 체감을 통해 정체감을 해소한다.
우울하면 외부 활동이 줄어든다. 집안에서만 은둔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레 계절 변화에도 둔감해진다. 우울한 사람과 우울하지 않은 사람은 같은 땅 위에 살아도 실제론 전혀 다른 시간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밖에 나가서 달리면 계절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봄이 오면 간지럽고 따뜻한 햇볕에 사방에서 피어나는 꽃을 볼 수 있고, 여름이 오면 빗물을 머금은 풀 내음과 더불어 푸르고 무성하게 자란 나무를 볼 수 있다. 가을이 오면 온산이 석양빛으로 물들고 낙엽이 바스러지는 냄새를 맡을 수 있고, 겨울이 오면 포근하게 내려앉는 하얀 눈과 앙상한 가지 안에서 남몰래 태동하는 이듬해 봄을 느낄 수 있다.
우울한 사람들에겐 계절 변화가 당연하지 않다. 그들에겐 시간이 멈춰 있기 때문이다. 이때 자연은 우울한 사람들을 압박하지 않는다. 의지로 우울증을 이겨내라거나 네가 나약해서 우울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변해가는 풍경을 통해 지금은 이 계절이 왔고, 너는 세상 속 일부로 잘살아가고 있으며, 무사히 다음 계절로 넘어갈 것이란 걸 말이다. 자연의 소통방식은 우울한 사람들이 이미 잘살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한다. 우울로 정체되어 있던 시간이 부드럽게 흐르도록 유도하는 건 자연이 주는 멋진 선물이다. 우울로 인한 정체감이 해소되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3. 땅을 박차고 달리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대다수 사람은 하루에 몇천 보 정도는 가볍게 걷는다. 두 발과 다리로 회사, 학교, 편의점이나 식당 등 각종 편의 시설까지 이동한다. 이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만 여겼는데,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내 발과 다리가 정말 소중한 신체 중 일부라는 걸 깨달았다.
밖에서 달리는 건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것과 다르다. 러닝머신은 벨트를 굴려주기 때문에 달릴 때 조금 편하지만, 밖에서는 순전히 내 발과 다리를 굴려서 달려야 한다. 맨땅을 발과 다리의 힘으로만 박차고 달리는 일은 내가 이곳에 잘살고 있음을 체감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나를 돕지 않아도 이렇게 스스로 부단히 나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때부터 사람이 생기있게 변한다. 무채색이던 일상에 색이 입혀지고, 사소한 일에 감사함을 알게 된다. 달리기를 통해서 내 몸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된 사람은 우울에 길게 매몰되지 못한다. 설령 우울에 잠시 빠지더라도 두 발과 다리로 금방 빠져나오는 길을 찾는다.
4. 땀을 통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평소에 땀이 날 일이 잘 없다. 나도 달리기에 관심이 없던 시절엔 무더운 여름을 제외하곤 땀을 흘려본 적이 없다. 하지만 달리고 난 이후부터 땀을 흘리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까지 오래 달리지도, 페이스가 좋은 것도 아니건만 달리기만 하면 내 몸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땀을 쏟아냈다. 그때마다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얼굴과 목덜미, 티셔츠까지 땀으로 아수라장이 되지만, 불쾌하긴커녕 오히려 개운하다. 눈에 보이는 땀으로 성취감을 느껴서다.
땀은 정직하다. 달리면 무조건 땀이 나게 돼 있다. 거리와 시간을 따지지 않는다. 달리기로 땀 흘리는 기쁨을 알게 되면 우울에 빠지는 길이 서서히 막힌다. 뇌가 성취감을 느끼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우울에 빠지는 길엔 잡초가 자란다. 내가 달리기에 더 빠져들고 땀 흘리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잡초는 무성하게 자라서 길을 뒤엎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땀 흘리는 경험은 그래서 중요하다. 내가 달리는 날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취감이 있다는 사실은 우울하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게 막는다.
5. 신체 피로로 피곤한 뇌를 맑게 만든다.
우울함은 뇌가 피곤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매일 나를 혐오하고, 증오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로 일상을 산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다. 이때 달리기를 통해서 역으로 신체를 피곤하게 하면 신기하게도 우울함이 사라진다. 원리는 간단하다. 몸이 힘들면 생각이 단순해져서다. 달리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찬다. 다리에선 근육통이 느껴지고 갈증으로 목이 탄다. 당장 내 몸이 힘들어서 비틀대는데 나를 미워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힘들다, 다리가 아프다, 숨이 찬다와 같이 단순한 생각만 가득 들어차서 우울은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다. 달리기는 이런 식으로 머릿속을 확 비운다. 따라서 꾸준히 달리면 우울한 생각을 덜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요즘도 달리러 나갈 때 뇌 속에 있는 우울 찌꺼기를 비우러 간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달리다 보면 몸이 힘들어서 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 지배당한다. 힘겹게 목표를 완수하고 나면 오늘도 해냈다는 해방감과 동시에 머리가 멍해진다. 뇌 속에 있던 우울 찌꺼기가 남김없이 다 비워진 것이다. 그 상태로 집에 와서 바로 씻는다. 뽀송뽀송해진 상태로 저녁을 든든히 챙겨 먹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달리고 온 날은 잠도 잘 오고, 수면의 질도 높아져서 새벽에 잘 깨지 않는다. 푹 자고 일어나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날을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나 오지 않길 바라던 내일을 기대하게 된다.
달리기는 우울감 해소에 효과가 있다. 내가 그 증인이다. 만약 아직도 달리는 게 부담스럽고 버겁다면 나처럼 길가에 우울 찌꺼기를 버리고 돌아온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달릴 때마다 나에게 엉겨 붙어있던 우울이 바닥에 나뒹군다고 상상하면 달리기에 도전하기가 좀 더 쉽다. 나가서 1분이라도 달려보자. 우울을 밖에 버려두고 오자. 달리기를 통해 우울을 비워내고 나면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