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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Apr 04. 2024

내가 복권을 사는 이유

/낙첨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

이것은 나의 삶에서

돈에 관한 것만 떼어쓰는 기록이고,


그 세 번째다.



지속해야 해


스무 살에 들어간 기숙사에선 공대생 선배를 만났다. 4학년이었다. 2인실을 함께 쓰는 선배는 영화광이었는데. 잠들기 전 영화 한 편씩을 꼭 봤다. 모니터에서 불빛이 새어나와 나는 밤잠을 설쳤다. 그럼에도 찍소리 못한 건, 당시 4학년이라는 선배의 연배가 꽤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선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복권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다.


성년이 되면 할 수 있는 일들 중, 복권 구매하기도 포함된다는 사실. 나는 당시 음주, 클럽, 운전면허 것들 보다 제일 먼저 한 게 복권을 사는 일이었다. 이유는 없다. 될 것 같았다.


물론 10년 넘게 안 됐다.


아, 선배의 이야기는 이렇다. 복권이 당첨될 확률을 내게 꾸짖어준 일이다. 로또 당첨 확률은 814만5000분의 1이라고 한다. 이것을 선배는 알기 쉽게 설명해주길,


“자 들어봐. 로또 1등 당첨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확률이냐면. 500원 짜리 동전 23개를 들고 63빌딩을 올라. 거기서 동전을 죄다 던져. 그때 바닥에 떨어진 동전 23개가 모두 앞면이 나올 확률이라는 거야. 동전 23개가 전부 똑같은 면이 나오기 쉽겠어, 안 쉽겠어?”


“안 쉽죠. 근데 불가능한 건 아니잖아요?”


“에이 멍청아, 그럼 당장 500원 들고 63빌딩 올라서 직접 해 봐. 한 번이라도 똑같은 면이 나오게 하면 내가 당첨금의 100배를 줄게”


그땐 그냥, 맞네요, 절대 안 될 확률이네요, 하고 말았다. 될 수도 있지 않느냐, 반문하고 싶은 마음을 접은 건 선배가 공대생이기 때문. 계산기를 두들기며 매일 어려운 문제와 씨름하는데, 인문대생 나부랭이인 나에 비해 숫자에 더 밝지 않겠나 하는 권위를 인정해버린 그런 맥락이다.


그럼에도 이것만큼은 말대꾸를 해야 했다.


“근데요”

“뭐 또. 왜”


“왜 63빌딩에 올라 동전을 던져야 하는 거죠?”

“...”


멍청이. 일층에서 던지나 육심 삼층에서 던지나.


여튼 일화를 전하는 건, 내가 그 어리석다는 복권 구매를 정기적으로 이어나가는 이유 2가지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⓵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


세상에서 가장 힘든 건 지속하는 일이다. 뭐든 계속하면, 그럼 뭐든 된다. 근데 뭐가 되기까지 지속하는 게, 그게 힘들다.


돈 모으기도 그렇다. 계속하면 뭐든 모인다. 돈 모으기는 일종의 마라톤이다. 지루하고 지난하다.


지쳐나가 떨어지면 안 되는 게 최우선 목표인 이유겠다. 나의 경우는 최소 생활비만 남기고 모든 돈을 예적금에 넣고 있다. 극단적으로 돈을 모으는데, 이 생활을 계속할 생각을 하면 까마득하다.


그럼에도 당장 힘든 건 문제가 안 된다. 안 힘든 일이 어딨으랴. 다만, 목표지점을 떠올리면 정말이지 관두고 싶다. 이런 짠내 나는 생활을 아무리 해도, 내가 현금 10억을 손에 거머쥘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온다한들, 이 정도 저축 속도라면 그것은 30년, 40년 뒤의 일일 텐데. 내 나이 예순, 일흔인데.


살아갈 날보다 죽을 날을 더 자주 떠올릴 시기에 그만한 돈이 생긴다고, 정말 그렇게 값질까. 아 물론 값지겠지만.


여하튼 기대가 사라지는 일이다. 그렇다는 건 지속할 의지가 꺾인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복권은, 현재 내 상황에서 ‘기대’를 사기에 충분히 값지다. 단순한 생각이다. 혹시하는 생각말이다. 어쩌다 될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은 현재의 힘듦을 잠시 잊게 만든다. 돈 모으기를 지속하게 해준다.


안 되면 말고.


나의 경우 주 2회 복권을 산다. 목요일에 추첨하는 연금 복권 5장. 토요일에 추첨하는 로또 5장. 동행복권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손 쉽게 구매하며, 모두 자동 기능으로 번호를 고른다. 그러면 지출 합계는 1만원. 1년이면 52만원이고.


이것은 물론 꽤 큰돈이지만.


10년이면 520만원인데, 이것은 나의 생활을 바꿔줄 수 있는 금액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복권 구매를 통해 10년간, 지치지 않고 예적금과 알뜰살뜰 투자와 저축을 지속한다면. 나는 10년 뒤에 더 큰 돈을 가지고 있을 것은 분명하다.


되면 더 좋고.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 어쩌다 될 수도 있다는 생각. 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은 내가 돈 모으기를 지속하게 해준다. 꽤 좋은 러닝메이트다.


아닌 게 아니다. 로또는 매회차 10명 이상의 1등 당첨자가 나온다. 2등은 100여명에 달한다. 전혀 안 일어나는 일은 아니란 뜻이다.


②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


이것은 소제목①과 같은데, 편집 실수가 아니다. 내가 가진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의 양면성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전자가 기대에 관한 것이라면, 후자는 단념에 관한 것이다.


일주일에 10개의 복권 결과를 열어보면 당연 ‘낙첨’ 밭이다. 허탈하다. 1만원이면 저녁 한 끼 값인데. 식사 때마다 조금 더 저렴한 메뉴를 고민하는 내게 1만원은 큰돈이다.


그럼에도 복권을 사는 이유는.

실망과 절망에 능숙해진다.


나의 경우 복권을 떠올릴 때는 비참할 때였다. 돈이 없으면 비참한 일을 많이 겼는다. 비참하지만, 나의 힘으로 무언가를 돌파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나의 힘이 아닌 다른 힘을 바라는 것이다. 아마 그걸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리고 기적은 기대에 응답하지 않는다.


그러면 전능하다는 신을 떠올린다.

나의 삶을 계획했다는 신.


그 신을 원망하다가.

신을 저주해본다.


아시겠지만 신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건, 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땐 진짜 이 삶을 벗어나고 싶었는데. 근데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고. 다른 힘이 필요했고. 그러다 복권을 샀고. 당연 숱한 낙첨 글자를 맞이해야 했고. 그런 일이 반복되며, 원망할 신을 찾을 힘조차 잃고 있었던 그때.


지갑에 현금 단 1000원. 또 다시 복권을 샀는데, 5만원에 당첨이 됐다. 50배 넘는 수익을 올린 거다. 근데 나는 그게 너무 기분이 나빴다.


이를테면 이런 생각들이었다. 나는 그 시절에 복권 결과를 열어보며, 되려 낙첨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내 인생은 이렇게나 불행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힘든 건, 내 탓이 아니다. 나의 인생이 이만큼이나 불운하고 난이도 높은 것이다. 남들은 어쩌다 한 번씩 당첨된다는 5만원도, 이봐라 안 되지 않느냐.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


그런데 실제 5만원에 당첨이 됬던 건, 원망하고 남 탓 할 기회조차 잃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더이상 의미를 잃은 낙첨.  그렇게 낙첨이란 글자를 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들지 않아지게 되었다. 이것은 더 이상 나의 불행을 증명해주지도 못했으니까.


뭔들.

그러려니.


아 물론 도박꾼처럼 복권을 샀다는 건 아니다. 1년에 두어번, 너무 힘들 때 5만원 씩 들고가 복권을 샀던 긴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럴 쯤. 가끔 1000원, 5000원. 당첨이 되면 그게 그렇게 소소했다. 소소한 기쁨, 그런 것이 아니다. 5000원 당첨 된 게 어떻게 기쁜 일이랴.


진짜 그냥 소소한

일.


세상에 많고 많은 낙첨이 있듯, 소소한 당첨.


당첨에 기쁘지 않듯,

낙첨해도 실망하지 않게 되는 무덤덤함.


뭐랄까 희망없어 보이는 태도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내겐 삶에 매우 유용한 태도였는데.


실망하지 않는 힘은 그것 나름대로, 무언가를 지속하는 원동력이다. 세상에 웬만큼 값지다는 것들은 단번에 얻기 힘들다. 그때 실망하여 나가 떨어지면 말짱 꽝이다. 계속해야 뭐라도 얻는 것이다.


당첨확률이 희박한 복권이야 말로, 살 때마다 실망할 기회를 얻는 셈이지 않은가. 그것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훈련을, 나는 이런 식으로 하는 셈이다.


그럴 수도 있다는, 기대와

그럴 수도 있다는, 단념


이 둘은 희망을 잃지 않으며

실망을 얻지 않는 나의 루틴이다.


내가 복권을 사는 이유다. 루틴을 유지하는 좋은 러닝메이트인 셈이다.


지속하는 힘.


-

그럼에도 여러분께 복권을 사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중독이나 과한 지출을 염려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앱태크를 통해 설명한 ‘돌보기를 황금같이 하라’는 말을 이해한 분이라면. 그럴 돈을 지출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복권을 권하지 않는 이유는, 그저 돈이 나가기 때문이다.


복권에 대해 꽤 긍정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나 역시, 나의 마인드컨트롤을 도울 다른 수단을 찾는다면, 언제든 러닝메이트를 바꿀 계획이다.


희망과 실망의 균형을 잘 다스리는 수단이면 무엇이든 좋다. 복권처럼 돈 쓰지 않으면 더 좋다. 다만 복권처럼 결과가 확실한 것이 유용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땀 흘린 만큼 버는 것만으로는 원하는 만큼의 돈을 얻기 어렵다. 불가능이라 말하는 게 맞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흘린 땀의 값어치는 다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는 더 벌고, 누군가는 그만큼 못 벌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확률’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 공무주든, 아파트 청약이든. 주식이든. 이때 분명 실패의 사례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공포를 견뎌야 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 땀흘리는 일만으로는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벌 수 없으므로.


확률 앞에서 가장 강한 태도란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동시에

결과를 기대하며 시도를 이어나갈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복권이 아니라도, 이런 훈련을 연습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우리는 10년, 20년 계속해 이 도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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