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쇼파공장 10화

나무 칸막이 너머의 꿈

by 선지혜


공장이 문을 닫자, 인성은 곧바로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스펀지와 고무줄로 쿠션을 잡고, 원목 팔걸이에 칠을 입히는 일. 쇼파 공장이었다. 그간 목수 공장에서 익힌 손기술 덕분에 인성은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동시에 언니 명심의 집 근처로 이사를 했다.

벽지는 눅눅했고,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퀴벌레가 득실 한 지하 단칸방의 숨 막히는 답답함 속에서도 언니가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은 애경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둘째가 생겼다. 지친 하루 끝에도 꺼지지 않던 희미한 불빛처럼, 새 생명이 찾아온 것이다.

“둘째는 아들이면 좋겠어. 우리 잘 키울 수 있겠지?”

“그럼! 부족함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거야.”

배가 불러올수록 먹고 싶은 게 많아졌다. 없는 살림에 늘 고기가 당겼고, 인성은 종일 기다리는 애경을 위해 퇴근길에 삼겹살 한 근씩을 사 왔다. 그 삼겹살을 구워 배부르게 먹고 나면 애경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빠, 미안해. 자꾸 고기만 먹고 싶어.”

“괜찮아. 아기가 먹고 싶은 거니 뭐든 먹어야지. 내일 또 사 올게.”

그 겨울, 아들이 태어나며 네 식구가 되었다. 완성된 가족이라는 기쁨과 동시에 가장이라는 무게도 더해졌다.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약했다. 분유를 먹이면 토하기 일쑤였다. 트림을 시켜도, 시간을 두고 다시 먹여도 마찬가지였다.

“애가 분유를 못 받네…”

애경은 속이 타들어갔다. 더 좋은 분유를 사주고 싶었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다. 남편 월급으로는 집세와 기본 살림도 빠듯했다. 콩과 곡물을 갈아 미숫가루를 만들어 먹였고, 아기는 겨우겨우 그것으로 배를 채웠다.

인성은 새 직장에서 묵묵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현장에서 그의 손은 인정받았고, 동료들도 “일 하나는 해낸다”며 신뢰했다. 그러나 집을 나서면 지하방에 남겨진 아내와 아이 둘이 눈에 밟혀 마음은 늘 무거웠다.

‘언젠가, 반드시 이 지하방을 벗어날 거야.’

매일 각오를 다지며 출근하는 인성의 마음을 애경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애경은 남편이 출근한 뒤 아이들을 돌보며 부업을 시작했다. 작은 손바늘 하나로 양말코, 장갑 끝, 모자 조각을 떴다. 개당 3원을 받는 뜨개질이었다. 아이 과잣값이라도 보탤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루 종일 손가락이 굳어질 만큼 바늘을 잡았지만, 손에 쥐어지는 건 고작 몇 푼이었다. 그래도 그 돈으로 사 준 과자를 받아 든 아이가 웃을 때마다 애경은 다시 바늘을 들 수밖에 없었다.




지하 셋방살이는 늘 서러웠다. 주인아줌마는 외출할 때마다 문턱을 넘으며 말했다.

“애경아, 집 잘 봐라.”

마치 집 지키는 개라도 되는 듯한 취급은 애경의 가슴을 수없이 베었다. 그러나 그 시절, 세입자라는 이름 아래 모든 서러움은 꾹꾹 삼켜야 했다. 밤마다 뜨개질을 하며 애경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 우리도 우리 집에서 살 거야. 누가 뭐라 하지 않는, 내 집에서.’

애경과 인성은 지하방을 벗어나겠다는 그 뜻 하나로 아끼고, 버티며 조금씩 돈을 모아가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에 맞춰 버스정류장으로 인성을 마중 나가고, 아빠를 기다리며 먹는 번데기 백 원어치에 기뻐하는 딸아이를 보면 없는 살림에 아등바등 살면서도, 그 나름의 행복이 있었다.




큰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아이들이 모두 잠든 어느 밤 인성은 애경을 불렀다. 소주 한 병에 김치 한 조각. 조촐한 술상 앞에서 인성이 말했다.

“애경아, 나 이 정도 기술도 익혔고…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내 공장을 하나 차려보고 싶어.”

“공장 얻을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려고?”

“그래서 말이야. 이 집을 빼고, 지하 공장 자리 하나 얻어서 거기에 방을 한 칸 만들어 당분간 살면 어떨까. 금방 제대로 된 집으로 이사할 수 있어. 나, 자신 있어.”

“그래, 오빠가 자신 있으면 그렇게 하자. 그 시골에서 물 길어다 밥 하던 시절도 버텼는데, 이까짓 거 못 하겠어? 난 오빠 믿어.”

그렇게 둘은 전 재산을 긁어모아 꿈에 그리던 ‘내 공장’을 차렸다.

중고로 기계도 샀고, 공장 한편에 나무 칸막이를 세워 방을 만들었다. 톱밥 냄새, 본드 냄새가 늘 배어 있었지만, 그곳은 분명 ‘우리 집’이었다. 망치질과 기계 소리가 울렸고, 동시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공장 천장에 부딪혔다.

쇼파를 만들려면 미싱사도 필요했다. 미싱을 다룰 줄 아는 명심에게 부탁해 애경도 언니에게 미싱을 배우며 공장 일을 거들었다.

함께 이끌어 가는 쇼파 공장.

그렇게 그 지하 공장, 나무 칸막이 방에서

그들의 긴 여정은 다시 시작되었다.




-인성쇼파공장, 그 시절의 기록 -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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