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쇼파공장 9화

겨울, 그리고 봄

by 선지혜


공장장의 직함을 달고 더 나은 삶을 약속하며 찾은 공장은 서울 외곽의 구석진 마을에 있었고, 시설은 낡아 있었다.

인성을 따라 공장 한편의 작은 방에 터를 잡은 애경은 열 명 남짓 인부들의 식사를 맡게 됐다.


“여보, 당신은 밥만 해주면 돼. 할 수 있겠어?”

“어, 오빠. 힘들어도 해볼게. 식대로 버는 돈이 우리 살림엔 큰 도움이 되겠지.”


처음엔 할 만했다. 그러나 돌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열 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일은 이내 애경에게 끝없는 고역으로 다가왔다.

아기는 엄마 품을 찾아 울고, 인부들은 줄지어 앉아 밥을 재촉했다.

방에서는 아기의 울음이 그치지 않았고, 잠시 달랠 새도 없이 애경은 솥뚜껑을 열어야 했다.


하루 세 끼는 전쟁 같았다.

된장국 냄새 위로 김치 볶는 연기, 그 위로 또 갓난아기의 울음이 얹혔다.

그것이 공장장 사모인 애경의 고된 일상이었다.


인성의 하루도 만만치 않았다.

기계를 돌리고 공정을 관리하는 책임이 커지면서 고단함도 더해갔다.

목재를 어깨에 메고 나르며 톱밥은 늘 손톱 밑에 끼었고, 손바닥엔 굳은살이 더 두텁게 박였다.

저녁마다 손목은 뻣뻣하게 굳었고, 어릴 적 사고로 다친 한쪽 발은 날이 갈수록 저려왔다.

밤늦게 방으로 돌아오면, 종일 울다 지쳐 잠든 아기와 애경의 지친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어땠어?”

“뭐… 늘 그렇지.”


그 짧은 한마디만으로도 서로가 무엇을 견뎌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고단한 하루를 함께 견딘다는 것, 그것이 유일한 위로였다.


겨울은 유난히 가혹했다.

수도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시골 마을.

겨울이면 수도관이 얼어붙어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양동이를 들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 언 강을 깨뜨려 물을 길어 올릴 때면 손이 얼어 감각이 사라졌고, 물동이가 어깨를 짓눌렀다.


아궁이에 불을 붙이려 해도 불씨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연탄은 귀했고, 널어놓은 천 기저귀는 꽁꽁 얼어붙어 마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경은 잠든 아이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엄마가 약속할게. 너는 꼭 잘 자라게 할 거야.”

그 속삭임은 아이를 향한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향한 다짐이었다.


그런 애경을 보며 인성은 생각했다.

이 생활을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 과연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수십 번 같은 물음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다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면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인성과 애경의 각오가 무색하게, 공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거래처는 줄어들고, 임금은 밀리기 일쑤였다.

임금이 밀리자 인부들은 외상으로 밥을 먹기 시작했고, 외상장부는 날이 갈수록 빼곡히 채워져 갔다.

공장을 세운 사장의 발목은 점점 무거워졌고, 결국 인성도 버틸 수 없었다.


“이만… 그만둡시다.”


짧은 말 한마디가 긴 시간의 무너짐을 대신했다.

공장이 문을 닫자, 손에 남은 건 받지 못한 식대 외상장부뿐이었다.


“오빠, 이제 우리 어떡해! 식대도 못 받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아기도 제대로 못 안아줬는데 남은 건 이 외상장부랑 빈 통장뿐이야.”


좌절하는 애경의 어깨를 인성은 조용히 감쌌다.


“미안해, 애경아. 그래도 우리 다시 시작하면 돼.

내가 다시 제대로 직장 구해서 편히 살게 해 줄게.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응.”


애경의 짧은 대답 속엔 쓰라림과 함께 다시 버틸 힘이 담겨 있었다.

새로운 다짐과 희망, 그리고 두려움이 공존하던 그 공장의 단칸방에서,

두 사람은 앞으로의 세월이 얼마나 많은 봄과 겨울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 채

묵묵히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성쇼파공장, 그 시절의 기록 -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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