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쇼파공장 8화

결혼, 그리고 공장장

by 선지혜


가을 끝자락, 새벽 공기가 쌀쌀해지던 그날.


마을은 일찍부터 들썩이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오색 천이 걸리고, 솥단지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떡방아 소리가 울려 퍼지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모여 음식 준비에 분주했다.


사람들로 가득한 마당 끝, 작은방에서는 애경이 족두리를 쓰고 연지를 찍었다. 드디어 인성과 애경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 인성은 애경에게 하얗고 예쁜 드레스를 입혀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결국 인성의 본가에서 전통혼례를 치르기로 했다. 화려한 드레스 없이도 볼에 발린 붉은 기운이 애경에게 생기를 더했다.


“서운하지 않니? 드레스도 못 입고…”

언니 명심이 묻자, 애경은 수줍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이렇게라도 축복받는 게 감사하지.”




혼례가 시작되고,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인성은 애경 앞에 마주 섰다. 수줍게 웃는 애경의 얼굴에는 빛이 났고, 인성은 가슴이 벅차올라 숨을 고르지 못했다. ‘이제야 이 사람 앞에 떳떳해진다.’


주례사가 끝나고 둘은 술 한잔을 나눠 마시며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과 친척들의 환호로 마당은 북적였다. 보쌈김치, 도토리묵, 푸짐한 나물이 한가득 놓인 잔칫상 위로 술잔이 돌고 웃음소리가 터졌다. 아이들은 바람에 나부끼는 오색천을 잡으려 마당을 뛰어다녔다.


그때 장정 몇이 인성을 붙잡더니, 웃으며 인성의 발목을 묶었다.
“이 신랑, 오늘은 도망 못 간다!”
”한 대씩 맞아야 진짜 남편 되는 거야!”


발버둥치는 인성을 붙들고 친구들은 인성의 발바닥을 힘껏 내리 쳤다. 대나무 막대기가 떨어질 때마다 “악!” 하고 몸을 비틀었고, 그 모습을 본 애경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안절부절못했다.

“그만 좀 하세요, 다치면 어쩌려고요…”

하지만 사람들은 더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마당 끝까지 번져 나갔다.


한쪽에서는 동네 어르신이 잔을 들고 새신부에게 다가왔다. “자, 새신부도 한 잔 해야지.”

애경이 머뭇거리며 잔을 받으려 하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영감이 노망이 났나. 젖먹이 엄마한테 무슨 짓이여! 그건 신랑이나 주슈.”


잔은 다시 인성 앞으로 돌아갔다. “허허, 오늘은 내가 다 얻어먹는 날이네.” 인성은 귀까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들이 애경에게 슬쩍 짓궂은 농담을 던졌다.
“제수씨, 둘째는 언제 볼 수 있습니까?” 놀란 인성이 그 말을 가로챘다.
“야 인마! 아직 첫째가 젖도 안 뗐는데 벌써 둘째 타령이냐!”

사람들 웃음에 인성의 얼굴엔 더 환한 웃음이 번졌다. 그의 입가엔 종일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날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신랑이었다.


하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아직 잔치의 열기가 남아 있던 그 밤. 인성은 곤히 잠든 아기를 쓰다듬으며 애경에게 말했다.


“애경아, 우리 잘 살자. 내가 꼭 성공해서 편히 살게 해 줄게.” 날은 추웠지만, 애경의 마음은 한없이 따뜻했다.




인성의 바람이, 각오가 하늘에 닿았던 걸까.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인성은 ‘공장장’ 제의를 받았다. 어릴 적 목수 공장에서 개밥을 주던 꼬마는 이제 온전한 기술자로 성장해, 드디어 누군가의 인정을 받았다. 가구의 나뭇결을 살피는 눈, 망치질과 못질을 대충 하지 않는 습관, 누구보다 성실하게 현장을 지키는 태도가 그를 남다르게 만들었다.


동료들은 “이제 살림살이가 좀 펴겠네.” 하며 부러움 섞인 말을 건넸다.

인성 자신도 뿌듯했다. ‘드디어 나도 여기까지 왔어.’


그러나 그 ‘공장장’이라는 직함은 그의 세상을 바꿔주진 못했다.

세상은 여전히 단단했고, 차가웠다.





-인성쇼파공장, 그 시절의 기록 -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