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들다
첫 월급을 받은 인성은 월세방 하나를 얻었다.
골목 끝, 담벼락이 반쯤 무너진 허름한 주택의 방 한칸이었다. 문을 열면 방 하나, 창 하나. 햇빛이 들면 먼지가 일렁였고, 밤이면 쥐들이 천정 위를 밤새 달렸다. 장판 밑 거뭇거뭇 곰팡이가 피어올라도 그래도 인성은 그 방이 좋았다. 살림이라고는 옷가지 몇 벌에 냄비 하나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인성은 벽 한쪽에 거울을 걸고 그 앞에 서서 오래도록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마른 얼굴, 까만 피부, 갈라진 입술, 굳은살 박인 손.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넘겨 보아도 볼품없는 초라한 청년의 모습은 가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거울 속 인성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사람답게 살 수 있어.”
한동안 인성은 악몽에 시달렸다. 오야지가 찾아와, 끔찍했던 그 목수공장으로 끌고 가는 꿈이었다. 식은땀에 젖어 잠에서 깨어나면 낯설 만큼 고요한 방 안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누구의 목소리도누구의 발소리도 닿지 않는 밤. 연탄불 꺼뜨렸다고 맞을까 봐 뜬 눈으로 새야 했던 지난날들과는 다른 밤이었다. 창문을 통해 바람이 들어왔다. 외풍이 아니라, 자유의 바람이었다.
공장 생활은 여전히 고되었다.새벽안개를 헤치고 출근했고, 해가 기울어도 손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이제는 달랐다. 공장장이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보기시작하면서, 작은 기술들을 맡겨 보기 시작한 것이다. 못질 하나에도 인성은 온 신경을 쏟았다. 지금껏무심히 해 오던 망치질을 모두 잊고,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한 번, 한 번 새롭게 다잡았다.
“망치는 손목으로만 치는 게 아니야. 어깨를 써야지.”
기술자의 짧은 가르침을 그는 가슴 깊이 새겼다. 귀는 쫑긋 열려 있었고, 눈은 늘 나무 위에 고정돼 있었다. 어깨너머로 훔쳐보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제대로 배우는 기술은 무게감이 있었다. 종일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인성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출근길이 즐겁다는 게 어떤 건지, 처음 알았다.
해가 바뀌자, 그의 손끝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못은곧고 반듯하게 박혔고, 나무판은 틀어지지 않았다.
기술이 늘어날수록 봉급도 조금씩 올랐다. 주머니 속 동전이 딸랑거릴 때면, 어린 시절 미군이 건네주었던 백 원짜리 한 장이, 화장실에서 숨죽여 털어먹던 그 라면땅이 떠올랐다. 술을 처음 배운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함께 일을 배우던 동료들과 허름한 선술집에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고,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야, 이제 우리도 어른 다 됐다.”
웃음과 한숨이 뒤섞인 술자리는, 가난한 청춘들의 작은 위안이었다. 인성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명심은 옆방 청년 인성을 오래 지켜보았다. 성격이 화려하지도 않고, 말재주도 없었지만 시간을 어기는법이 없는 꾸준함이 있었다. 출근길 작업복은 늘 깨끗했고, 머리도 단정했다. 한결같은 인성의 모습이 명심의 눈에 들어왔다. ’막내한테 저런 사람을 소개해주면 어떨까.‘ 명심은 몇 날 며칠을 망설였다. 명심에게 애경은 늘 애잔한 동생이었다. 밝고 씩씩하지만, 속으로는 허기와 그늘이 많다는 걸 명심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부모 없는 빈자리를 감추듯 웃었고, 철부지 같아 보였지만 마음은 유난히 여렸다. 그런 막내에게는 말보다 손으로 살아온 사람이 필요했다.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 말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같은 속도로 걸어가는 사람.
“애경아, 시간 좀 내봐 “
“왜?”
“옆방 총각이 사람이 참 좋아. 한 번 만나보라고 “
“옆방?”
“그래. 전에 말했잖아. 내가 쭉 지켜봤는데 성실하고 참된 사람이더라 “
마지못한 애경과 달리 명심은 은근히 들떠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인성의 방 문을 두드렸다.
“인성 씨, 안에 있어요? 부탁이 하나 있어요.”
“예.”
“우리 막내한테 전해줘야 할 옷 짐이 있는데, 인성 씨가 부산에 좀 내려가 줄 수 있겠어요?”
“제가요?”
“네. 사실 제 동생을 소개해주고 싶어서요. 인성 씨 참 좋은 사람 같아요. “
“아… 예! 가보겠습니다.”
부탁이라는 말 앞에서, 인성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인성은 시내로 나가 양복을 하나 장만했다. 작업복만 입고 살아온 세월. 목을 죄는 넥타이와 각이 잡힌재킷이 너무 어색했다. 머리를 빗어넘기며 훑어본 거울 속의 인성은 더 이상 초라한 그 꼬마가 아니었다.
“이렇게 차려입으니 나도 꽤 괜찮네”
생전 처음 데이트였다. 인성의 마음이 춤을 추고, 가을바람에 낙엽도 춤을 췄다.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버스 좌석에 짐을 내려놓고도 한동안 손을 떼지 못했다. 옷감에 배어 있는 명심의 손길, 바느질 자국이인성에게 책임감을 더했다. 밤길을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듬성듬성 스쳐 갔다.
“안녕하세요. 애경 씨. 저.. 박인성이라고 합니다. 지금 부산에 도착했는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인성은 애경의 옷 짐이 돈보따리라도 된 냥 품에 꼭 쥐었다.
“택시 타셔서 헤이고고장으로 오시면 그 앞에 제가 서 있을게요 “
평생 ‘놀이’라는 걸 해본 적 없는 인성에게 고고장은낯설고 두려운 단어였다. 택시가 목적지에 가까워 지자 귀를 찢는 듯한 음악이 터져 나왔다. 형형색색의 조명이 간판을 흔들었다. 인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뭐지?’ 새 양복을 빼입고 구두에 광도 냈지만, 휘황한 불빛 아래서 스스로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인성.. 씨?”
뒤에서 누군가 인성을 불렀다. 세련된 청바지와 블라우스를 입고 수줍게 인사하는 애경은 생기가 가득했다. 인성은 허둥지둥 보따리를 내밀었다.
“옷 짐… 갖고 왔습니다.”
애경은 보따리를 건네어받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너무 촌스럽잖아!’
긴장한 인성의 넥타이는 목을 졸라 당겼고, 어색한 가르마사이로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언니는 왜 이런 촌스러운 사람을 소개한 거야?‘ 애경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일단 우리 들어가요”
애경이 이끄는 대로 고고장에 들어가자 인성에게 음악은 더 크게 울렸다. 애경은 물수건으로 손을 닦고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인성도 물수건을 만지작거리다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눈치를 보았다.
“부산은 처음이죠?”
“예.”
“고고장도 처음?”
“예.”
애경은 피식 웃었다. 촌스럽고 어색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어색함 속에 억지스러움은 없었다. 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 온 인성은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애경은 언니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언니! 촌스러워. 마음에 안 들어.”
“한 번 더 만나봐. 성실한 사람이야.”
명심의 성화에 못이겨 두번째 만남은 다방에서 이루어졌다. 갈색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잔, 노란 전구 불빛,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커피… 좋아하세요? “
“저.. 사실 커피맛을 잘 모릅니다. “
애경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인성의 순수한 모습이 애경을 멈칫하게 했다. 세 번째 만남은 국제시장.이리저리 시장을 돌며 구경하던 애경이 블라우스를 집어 들었다. 인성이 그 천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부드러운 실크 블라우스.
“원단이 참 좋아 보이네요 “ 천을 다루는 인성의 손길은 진지했다.
“애경 씨한테 정말 잘 어울려요. 제가 선물해 드릴게요” 애경은 언니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성실, 그거 하나면 된다.”
촌스럽지만 약속을 어기지 않는 사람, 말은 서툴지만 무게 있는 대답을 하는 사람. 굳은살 박인 손과 땀에 젖은 눈빛은 거짓이 아니었다. ‘언니 말이 맞을지도 몰라.’ 그날 이후, 애경의 머릿속엔 인성의 모습이 떠나질 않았다.
- 인성쇼파공장, 그 시절의 기록 -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