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공장의 지옥
“맥여주고 재워주마. 청소부터 해라.”
학교를 뒤로하고 먼 길을 달려 인성이 도착한 곳.
삐걱거리는 대문을 넘자 톱밥 먼지와 기계기름 냄새가 콧속 깊숙이 스며들었다.
인성은 잠깐 숨을 멈췄다. 낯선 공장, 낯선 사람들, 그리고 싸늘한 오야지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싸늘하게 등허리를 쓸고 지나갔다.
오야지는 담뱃재를 털며 인성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눈은 왜 그렇게 뜨냐? 어리바리하게.”
인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기술을 배워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인성의 포부는 하루 만에 톱밥가루처럼 쏟아져 내렸다.
시간 맞춰 개밥을 퍼 나르고, 마당을 쓸고, 완성된 가구를 이고 지고 나르며
삼시세끼 얻어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인성은
온갖 허드렛일을 해야 하는 이 목수공장의 꼬마였다.
오야지는 아침저녁 할 것 없이
“버릇을 들여야 한다”는 말로 주먹을 휘둘렀다.
얼굴과 어깨, 복부로 날아드는 매질은 숨을 끊어놓을 듯했지만, 인성은 소리 내지 못했다.
울음은 약함의 증거였고, 소리를 낼수록 매질은 더해갔다.
가슴속엔 설명할 수 없는 서러움이 쌓였다.
개는 그래도 밥이라도 제때 받아먹는다.
인성에게는 그 한 그릇의 밥도 ‘서두르라’는 재촉과 ‘맞을까’ 하는 공포로 가득했다.
“나는 사람이 아닌 건가…”
입술까지 올라온 말은 다시 목구멍으로 삼켰다. 삼킨 말은 위 속에서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이제 겨우 열네 살. 한창 클 나이의 인성은 늘 배가 고팠다.
고된 허드렛일과 매질로 허기는 더 해갔고 밤이면 배가 모든 상상을 지휘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국과 하얀 쌀밥, 자잘한 반찬이 수북한 상을 차려놓고,
그 옆에는 초콜릿과 바삭한 과자 부스러기,
오래전에 단 한 번 입을 데운 라면 국물의 온기까지 머릿속에 한 상을 차렸다.
아침이 오면 상은 사라졌고, 접시에 붙은 마지막 보리밥 알갱이만 남았다.
상상은 달아나고, 허기는 남고, 허기는 분노가 되고, 분노는 다시 절망으로 식었다.
어느 날, 바닥을 청소하다 반짝이는 게 발끝에 걸렸다. 동전 한 닢.
누가 볼 새라 인성은 조심스레 동전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날부터 인성의 머릿속은 온통 마을 어귀에 있는 구멍가게로 가득했다.
“이거면 라면땅 한 봉지 살 수 있겠어.”
그 동전 한 닢을 품에 안은 채, 인성은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다
라면땅 계획을 세웠다.
공장의 인부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인성을 불렀다.
조금이라도 늦게 나타나면, 오야지의 발길질이 날아왔다.
그래서 단 5분의 시간조차 인성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나를 찾지 않게 모든 일을 마쳐 놔야겠어.”
인성은 5분의 시간을 내기 위해, 아무도 자기를 찾지 않도록 눈치를 살폈다.
“이 정도면, 다녀오는 동안은 아무도 날 찾지 않겠지.”
만발의 준비를 마친 인성.
오야지의 눈에 띌까, 시선이 닿지 않는 산등성이를 돌아 가게로 한달음에 뛰어갔다.
주머니 속 동전이 체온에 데워질 만큼 꽉 쥐었다.
도착하자마자, 주인아주머니에게 따끈하게 데워진 동전 한 닢을 건네고
라면땅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돌아오는 길, 발자국마다 심장이 먼저 도착했다.
들키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달콤한 라면땅이 아닌 혹독한 매질이 돌아온다.
인성은 그 라면땅 한 봉지를 조심스레 품에 넣고,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 한 번 더 5분의 시간을 만들어낸 인성은
한여름 찜통 같은 푸세식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문고리를 안에서 움켜쥐고, 봉지를 찢어, 숨을 죽인 채 과자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바삭, 바삭. 그 작은 소리가 온 세상에 들릴 것만 같았다.
물 한 모금 없이 목이 까슬했다.
이글이글 타는 태양밑에, 열심히 끓고 있는 화장실 냄새는 인성에게는 나지 않았다.
그저 라면땅의 고소한 향과, 달콤함만 있었고, 손바닥으로 입과 옷섶을 털었다.
과자가루 흔적을 지우듯, 방금의 행복까지 지워질까 봐 더 세게 문질렀다.
문을 열고 나오자, 공장 마당의 먼지가 다시 제자리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빗자루 손잡이가 인성의 손으로 돌아왔다.
인성의 팔과 다리엔 멍이 겹겹이 들었다.
검푸르던 것이 누렇게 옅어지기도 전에 새 멍이 겹쳤다.
손바닥엔 굳은살이 박여 손금이 흐려졌고, 손톱 밑엔 늘 시커먼 먼지가 깔려 있었다.
아이의 손이 아니었다.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 품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고 싶었다.
그러나 집은 멀었고, 울음은 약함이었다. 약함은 곧 핑곗거리였고, 핑계는 다시 매질이었다.
오야지는 타이어 고무, 가시가 거칠게 드러난 각기목, 손에 닿는 무엇이든 들고
이곳저곳 가릴 것 없이 손이 가는 대로 인성을 때렸다.
소년은 눈치를 배웠다. 오야지 기침은 곧 분노의 예고였고,
걸음의 거칠어지면 욕설이 곧 시작될 신호였다.
개밥그릇이 달각거리는 소리가 커지기 전에 미리 개밥을 퍼 담아야 했고,
숨소리마저 줄여야 매 한 대라도 덜 맞을 수 있었다. 눈치가 기술이 되었고, 기술이 살아남는 법이 되었다.
밤마다 베개가 젖었지만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기술만 배우면… 언젠가 이 지옥을 벗어날 거야.’
매질 속에서도, 굶주림 속에서도, 인성의 눈빛은 매일 조금씩 단단해졌다.
단단해진 눈빛이 그의 살 길이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공장의 하루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이 가슴 안쪽에서만 울렸다.
가슴의 설움이 커지는 만큼 인성도 조금씩 자랐다.
꼬마 딱지를 뗀 인성에게 조금씩 기술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오야지는 정식으로 일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어깨너머로 기술을 알음알음 배웠다.
대패 날이 나무 결을 스칠 때의 소리, 손놀림의 속도, 손목의 각도.
망치질의 박자까지, 낮에 본 것을 밤에 허공으로 되짚었고, 허공이 인성의 연습장이었다.
가슴속 설움이 커져가는 만큼 인성도 어느덧 청년으로 성장했고
공장의 웬만한 일은 인성의 손을 거칠 만큼 기술도 익혔다.
스무 살, 하지만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인지 덩치는 여전히 작은 인성이었다.
그런 인성이 오야지에게는 아직도 그 꼬마였을까. 오야지는 여전히 지독했다.
마무리 대패질이 마음에 안 들었던 오야지는 인성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그 날 인성은 다짐을 했다.
“여길 벗어나자.”
그날부터 자유는 물처럼 목구멍을 타고 마른 곳을 적셨다.
어느 깊은 밤, 인성은 몇 푼 안 되는 비상금과 얇은 옷 몇 벌을 챙겨 숨을 죽였다.
‘잡히면 다시 지옥이고, 매질은 덤이다.’ 심장은 북소리처럼 귀를 때렸다.
인성은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을 앞만 보고 달렸다.
짙은 어둠 속에서 산짐승의 울음이 따라왔다.
공장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가슴이 처음으로 활짝 열렸다.
“다시는 맞지 않아도 된다.” 그 생각이 피처럼 온몸을 돌았다.
하지만 동시에,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이 어둠처럼 발목에 엉겼다.
며칠을 떠돌았다. 집으로 돌아갈까 수없이 망설이다가도
눈앞에 동생들과 부모님의 얼굴이 스치며 정신이 들었다.
‘그것도 못 버티고 나왔냐.’ 장남의 체면을, 책임을 지고 싶었다.
그래서 문을 두드렸다. 이 공장, 저 공장.
“잡일이라도 좋으니 써주세요.” 문전박대가 이어졌다.
“애송이가 뭘 하겠냐.” 비웃음만 돌아왔다.
그래도 발걸음은 물러서지 않았다. 다음 문, 또 다음 문.
마침내, 한 가구 공장이 인성을 받아주었다.
주인은 퉁명스러웠다. 그러나 손찌검은 없었다.
“일한 만큼 밥은 준다. 일 못 하면 나가.”
규칙은 단순했다. 그 단순함이 고마웠다.
새로운 일터에서 인성은 다시 꼬마였지만 달랐다.
욕설 대신 일의 지시가 있었고, 구타는 없었다.
할 수 있는 기술을 묻고, 정식으로 배울 기회도 주어졌다.
이마를 타고,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은 모욕이 아니라 노동의 증거였다.
“이거, 니 몫이다.”
인성의 손에 처음으로 월급봉투가 쥐어졌다.
봉투를 건네는 무뚝뚝한 사장의 손에는 매질도, 조롱도 없었다.
“일 더 배울 거면 남아. 싫으면 나가고.”
인성은 봉투를 두 손으로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봉투를 여는 손이 떨리고 눈앞이 흐려졌다.
“내가 번 돈이야…”
내 손으로, 내 땀으로 얻은 대가.
그 얇은 봉투가 세상 무엇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길을 걸을 때도 손을 떼지 못했다. 바람에 날아갈까, 누가 낚아챌까. 두려움마저 달콤했다.
그 밤, 숙소의 낡은 이불 아래서 인성은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단어의 체온을 느꼈다.
“이제, 나도 사람답게 살 수 있어.”
웃음이 가슴속에서 새처럼 몇 번이고 날아올랐다. 세상이, 처음으로 그를 인정해 주는 것만 같았다.
─ 인성쇼파공장, 그 시절의 기록 ─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