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쇼파공장 3화.

눈 밭의 아이

by 선지혜


“또 딸이냐? 필요도 없는 게 나왔어!”
막 탯줄을 자른 갓난아기가 눈밭 위에 내던져졌다.



1964년
눈보라가 마당을 휘몰아치던 날,

새 생명의 울음이 터졌지만 집안의 공기는 매서운 바닷바람처럼 싸늘했다.


인성과는 다른 길 위에 놓인 또 한 아이,

인성이 미군부대를 찾아 먼 길을 떠나던 그 해


바닷가 깡촌의 한 마을에

8남매 막내 애경의 까랑한 울음소리가

소복이 쌓인 눈 위에 스몄다.




“안 돼!”
그때, 일곱째 명심이 달려 나와 작은 두 팔로 아기를 끌어안았다.

명심의 체온은 막 태어난 애경이 느낀 세상의 첫 온기였다.




애경은 부모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한다.
국민학교 입학도 하기 전에 부모님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 빈자리는 공기처럼 늘 애경의 곁을 맴돌았다.


그런 애경에게 스무 살이나 많은 큰오빠와 큰언니는 부모와도 같은 존재였다.
부모의 자리를 온전히 메울 수는 없었지만,
언니와 오빠들이 건넨 사랑만큼은 그 이상의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럼에도 어린 막내의 가슴속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고,

애경은 작은 욕심 하나에도 서러움이 스몄다.


“이놈의 고무신, 왜 이렇게 닳질 않아! 새 신 신고 싶단 말이야.”
설이 다가올수록 애경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설빔이라 해 봐야 고무신 한 켤레가 전부였지만,
그 반짝이는 새 고무신을 받으려면 지금 신고 있는 게 얼른 닳아야 했다

등굣길, 언니 오빠 몰래 돌바닥에 고무신을 벅벅 긁으며 속삭였다.


"징한것! 얼른 닳아 없어져라.”

애경에게는 한 살 더 먹는 것보다 새 신을 받는 일이 더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정작 새 고무신을 손에 넣으면,
닳을까 아까워 고이 싸 두고는 다시 낡은 고무신을 신은 채 학교로 향하곤 했다.





고봉밥


“야야! 오빠 라면 한 개 끓여라!”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 멀리서 언니가 애경을 불렀다.
팔팔 끓는 면발 냄새가 부엌 가득 퍼지고


“나도 배고픈데… 한 가닥만 먹어볼까?”


조심스레 흘러나온 말에 돌아온 건 큰언니의 호된 꾸중뿐이었다.
“욕심부리지 마라! 힘들게 일하는 오래비 몫이여.”


그러던 어느 날, 애경 앞에 고봉밥이 산처럼 쌓였다.
‘오늘은 정말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겠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숟갈 크게 뜨는 순간,

숟가락 끝에 딱딱한 무언가가 걸렸다.

이상해 밥을 뒤적여 보니, 간장 종지가 엎어져 있었다.


“이게 뭐야!”


순간, 애경의 기대는 무너져 내렸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엉엉 우는 막내를 보며 큰언니가 김치 한쪽을 찢어 밥 위에 올려주었다.


“울지 말고 얼른 먹어. 내일은 진짜 고봉밥으로 줄 테니 ”


훌쩍이며 밥을 먹는 애경의 가슴 깊은 곳엔
서러움과 함께 언니오빠의 사랑도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랑만으로는 지켜낼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날, 큰오빠가 밭에서 엽전 한 무더기를 주워 온 것이다.






─ 인성쇼파공장, 그 시절의 기록 ─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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