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청춘
“이것 팔아서 돈 받으면, 네 교복 사주마. 중학교 보내줄게.”
큰오빠가 항아리 가득한 엽전을 내놓으며 말했다.
“서울 자주 가는 춘식이 삼촌한테 부탁하자. 서울에 갖다 팔면 돈이 좀 될 거여.”
마당 구석에 이불로 덮어 둔 항아리를 볼 때마다 애경은 가슴이 뛰었다.
“삼촌 언제 서울 간대요? 나 얼른 교복 맞춰야 되는데.”
며칠 뒤 춘식이 삼촌이 엽전을 차에 싣고 서울로 떠났다. 애경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삼촌! 꼭 잘 팔아 오세요! 저, 중학교 가야 돼요!”
설렘으로 몇 날을 뒤척이던 애경. 그러나 돌아온 삼촌은 빈손이었다.
“돈이 안 된단다. 고물값밖에 안 쳐준다더라. 기름값도 안 나온다. 안쓰러 어쩌냐.”
애경은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산산이 부서진 꿈.
중학교는 그렇게 허망하게 흩어졌다.
국민학교 시절 달리기 잘하던 육상부 애경. 군 대회까지 나가며
“발이 남다르다, 크게 될 거다”는 칭찬을 듣던 유망주였지만,
중학교 진학이 막히자 트랙 위를 달리던 두 다리는 다시 밭두렁을 뛰어야 했다.
친구들은 중학교에 가거나 취업을 하겠다며 도시로 떠났다.
애경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큰오빠 내외를 도우며 밭일을 거들었다. 큰올케는 말했다.
“집안일 거들고 있으면, 내가 시집은 보내줄게.”
그러나 애경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야. 난 도시로 갈 거야.’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지만, 서울에 사는 막내언니 명심이 떠올랐다.
“나도 언니 따라 서울로 가야겠다.”
형편 넉넉지 않은 명심은 망설였지만,
“밥값은 내가 벌겠다”는 애경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애경은 신발 공장에 취직했다.
본드 냄새와 기계 소음 속에서 하루 종일 신발만 바라보며 버텼지만,
여기는 서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트였다.
한강을 건너 출퇴근하는 먼 거리에 갈 곳이라고는 공장과 집 뿐이었지만,
도시 생활이 좋았다.
서울에 적응할 무렵, 어느날 부산에 있는 둘째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애경아, 여기 일자리 많다. 울 집에서 지내다 돈 벌면 나가면 되니 내려올래?”
마침 고향 친구도 부산에 먼저 터를 잡고 있었기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청춘, 부산의 밤
부산에 도착한 애경은 골프장의 캐디로 일하게 됐다.
막 개장한 골프장은 도시의 새로운 유흥이자 신분의 상징이었지만,
캐디 일은 하루 종일 걷고 뛰어야 하는 고된 노동이었다.
땡볕 아래 등에 멘 캐디백이 땀에 젖었고, 팁은 손님 기분에 달려 수입도 일정치 않았다.
돈을 크게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애경에게는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숨통이 트이는 길 같았다.
부자 손님들이 카트를 몰며 여유롭게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애경은 속으로 다짐했다.
‘나도 언젠가 저 자리에 설 거야.’
24시간 잠들지 않는 부산은 희망으로 가득했다.
바닷바람 부는 영도다리, 국제시장의 상인들 고함, 자갈치 시장의 비린내,
부두 노동자들의 외침이 애경의 하루 풍경이 되었다.
주말이면 친구와 시내로 나가 화장품을 고르고, 청바지를 맞췄다.
쓰디쓴 커피를 마시며, 몇시간씩 수다를 떨었고
저녁이면 친구가 손을 잡아끌었다.
“애경아, 오늘 고고장 가자!”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음악이 심장을 울리는 그곳에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뾰족 구두에 청바지를 입은 도시언니 애경이 있었다.
라면 냄새 앞에서 삼킨 눈물, 간장종지에 울던 서러운 날들.
항아리 가득한 엽전도 허망하게 흩어졌지만, 도시의 밤은 그녀에게 새로운 날개였다.
눈밭에 던져진 아이는 꺾이지 않았고, 부산의 청춘은 뜨겁게 타올랐다.
그러나 그렇게 찬란했던 청춘의 밤은, 다가올 인생의 파도를 아직 알지 못했다.